[아리랑칼럼] 삼랑도
[아리랑칼럼] 삼랑도
  • 소설가 김종보
  • 승인 2023.01.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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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소설가 김종보
굿모닝충청 소설가 김종보

[굿모닝충청 소설가 김종보] 지난해 어느 여름날이었다. 오랜만에 마음도 환기 시킬 겸 지방 여행을 떠났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거리는 시끌벅적 했다. 그중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 곳은 대장간이었다.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주인은 그 유명한 ‘다마스커스’ 칼을 제작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들고 있었다. 방송매체에서만 보던 그 장면이었다. 그는 큰 자부심을 갖고 검을 만들고 있었다. 망치를 두드리는 과정에서 화려한 문양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마스커스' 검은 원래 무기였다. 과거 이슬람에서 쓰던 칼이었다. 이것은 십자군전쟁을 치르면서 유럽으로 전래되었다. 적을 응징하기위한 살생의 도구였다. 또한, 도적의 칼이었고 영토를 빼앗는 욕망의 무기였다. 

반면에 우리 민족에게는 위대하고 찬란히 빛나는 칼이 있다. 그것은 가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식도다. 식도의 기능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예리한 칼날은 자르는 기능이다. 칼등은 단단한 물체를 두드려 깨트린다. 그런가하면 손잡이의 방방이는 다지는 도구다. 이 세 가지 기능을 합쳐 ‘삼랑도’(三郞刀)다. 

이렇듯 우리의 삼랑도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석삼조’의 기능을 한다. 음식은 가족 공동체 화목을 이루는 매개체다. 밖에 나가서도 그렇다. 어떤 목적을 위한 융화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역할은 어울림의 환경을 조성해준다. 양자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의 결속이다. 이렇듯 우리의 식도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성분들을 한데 섞어 하나가 되게 한다. 이 말은 각 개성의 순화를 통한, 융화적인 조화의 결속을 말한다. 그래서 너랑 나랑 ‘우리랑’의 ‘삼랑도’다.

이 삼랑도가 지닌 정신을 살펴보자. 그것은 음과 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칼과 도마의 화음은 밝고 맑은 삶의 소리를 낸다. 하모니적인 조화의 산실이다. 그 조화의 소리는 하루의 삶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원동력이다. 그 선율이 퍼져나갈 때마다 가족들은 힘을 얻는다.

그 소리는 이웃까지 퍼져 나간다. 이처럼 과거 우리의 아침소리는 평화로웠다. 그래서 고결한 삶의 원형이다. 즉, 화합을 실체를 말한다. 이 모습이 바로 융화의 표상이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민족들에게는 또 다른 아침 풍경이 있다. 그것은 인사다. 서양 사람들은 아침인사를 단순한 표현인 ‘굿모닝’으로 한다.

반면에 우리 민족의 인사는 그 자체가 안부다. 즉, 물음을 통한 간밤의 근황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 확인이 바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다.

과거 시절에는 그랬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길을 가다가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를 했다. 

이렇게 안녕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궁극적으로 안녕의 본질은 신뢰와 믿음이다. 인사의 예절은 또 다른 융화의 매개체다. 아울러 공동체의식의 이탈을 막는 울타리다. 이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우리’ 의식의 원형이다. 즉, 상생과 공존을 위한 덕목의 핵심이다. 

본래 상생의 생명은 질서다. 더 나아가 모든 조화의 근본이다. 조화의 본질은 평화를 조성하는 씨앗이다. 다시 말해 모순되거나 부정적이지 않아야 한다. 혼돈의 사회일수록 평화가 조성돼야 안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랑도의 본질은 우리 의식이기도 하다. 그 의로운 뜻을 인격화 해보면 이렇다. 자르는 기능은 부정부패를 파쇄 하는 기능을 한다. 칼등의 두드림은 각종 비리와 불공정을 무너트리는 역할이다. 갈 자루 끝의 방망이는 온갖 오염된 ‘이성’을 무너트리는 쇄신의 기능이다.

여기서의 이성은 사회적 도덕성을 말한다. 이렇듯 삼랑도의 정신은 또 다른 우리의 혼불이다. 암흑의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다. 곳곳의 불협화음을 조율해주는 소통의 무기다. 복합적인 환경조성의 원천이다. 이 밖에 원칙과 기본 의식을 가르치는 또 다른 삶의 스승이다.

상식과 개념의 정신을 보호해주는 파수꾼이다. 정의와 공정을 보존유지해 주는 보루다. 더 나아가 차별을 없애는 평등의 어머니다. 상반된 의견들을 한 데 모아 주는 협치의 아버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존을 위한 질서의식이다. 질서가 공동체융화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 질서는 통치력을 말한다.

이 법도의 정신은 서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진실 된 ‘참’ 만을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존엄한 우리 의식을 말한다. 우리 의식은 고조선 때부터 시작되었다. 외세 침략으로부터 살아남아 남기 위해 생겨났다.

때문에 국난을 이겨내는 또 다른 정신의 덕목이었다. 그래서 삼랑은 위대하다. 거룩하다. 찬란한 민족의 이정표다. 이 정신을 오늘 날 혼돈의 사회에 바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 겨레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국민 통합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랑도에는 또 다른 융화의 실체가 되는 ‘도의’(道義)가 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참’ 의 완성이다. 이 참됨은 건강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말한다. 더 나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바름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이 정신을 상실했다. 조화로운 환경조성의 인자인 근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 같은 사랑을 요구 한다. 어머니의 마음은 포용력이 생명이다. 포용은 어울림의 완성이다. 또 다른 융화의 산실이다. 다시 말해 조율을 통한, 조성의 문화가 통합을 이루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 환경은 모든 집단의 불협화음의 배격을 말한다.

이럴 때 우리의식의 정신적 보존유지가 이루어진다. 아울러 삼랑도의 생명을 지켜내는 덕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삼랑도의 빛깔은 다마스커스의 문양보다 더 화려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빛을 상실했다. 이타문양이 녹슬었다. 그 이타심이 ‘우리’의식의 참 다운 본질이다. 그래서 오염된 삼랑도의 혼불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 찬란했던 이타의 문양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것이 현실 인식이다.

이 빛나는 ‘얼’ 이 유구한 역사와 함께 흘러온 동방의 혼불이다. 이 문양의 빛이 바로 우리 의식의 등불인 것이다. 유구한 역사의 문양이다. 이 정신이 새롭게 복원되어야 하는 이유다.

궁극적으로 이 정체성의 문양은 인간 ‘다움’ 의 표양을 말한다. 결국 인품을 말하는 ‘다움’이란, 공동체의 생명인 너랑 나랑 ‘우리랑’ 삼랑의 실체다. 때문에 삼랑도의 무늬는 민족의 영원불멸한 ‘얼’이다.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한국인의 참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모습도 상실했다. 그 위대했던 동방의 이름도 상실했다. 지금 도처에서 정의와 도덕성이 무너진 현장들이 그렇다. 상식과 개념이 붕괴된 현실들이 그렇다. 부정과 불공정이 만연하고 있는 현상들이 그렇다.

우리는 지난 한해 혼돈의 일 년을 보냈다. 무질서가 난무한 한해를 보냈다. 증오의 검은 삼랑도의 정신이 아니다. 분노의 칼은 삼랑의 실체가 아니다. 다만, 정의로운 원칙과 개념을 지켜내는 표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평등과 공정함의 진검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보편적인 상식을 지켜내는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불신을 초래 하지 않고 부정 없는 ‘참’이어야 한다.

이렇게 국민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옳고 바름의 표상이 이 시대 삼랑도의 정신이다. 이처럼 변화된 융화의 문양이 복원되어야 한다. 대립은 국민에게 불안을 안겨주는 파멸의 도화선이다.

마지막으로 ‘다마스커스’ 검에는 향기가 없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삼랑도에는 고고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무궁화의 향기다. 이 향기가 바로 우리가 상실한 한민족의 혼불이다. 참다운 인간미의 복원이다. 이 모습이 ‘우리’라는 융화의식이며 ‘얼’의 향기다. 때문에 이것이 상생과 공존의 원형이다. 이 정신이 근본적인 섬김이 되어야 한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삼랑도’의 향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아리랑 민족이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총체적으로 묻는 질문이다.

올해는 진정한 민족의 문양인 파란 융화의 물결을 보고 싶다. 저, 어두운 거리에 삼랑도의 깃발이 펄럭이는 아리랑의 노래를 듣고 싶다.

메마른 도랑마다 촉촉이 젖어 드는 동방의 맑은 물소리도 듣고 싶다. 탁류의 도랑을 정화시켜 주는 푸른 역동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렇게 새해에는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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