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19] 봄을 기다리다…아산시 영인초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19] 봄을 기다리다…아산시 영인초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3.02.13 14: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살려주오,

내겐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처자식이 있소

내가 이리 떠나고 나면

다시 펼칠 수 없을 만큼 구겨진 생을 붙들고

바스러지는 겨울 낙엽처럼 살아갈 가족이 있소

내 살을 베어 내도 좋으니

지워내지 못한 깊고 큰 상처가 남아도 좋으니

부디 나를 살려주시오

살려주오,

며칠 전 몸을 푼 안사람이 며칠째 굶고 있소

어미가 바짝 말라 젖이 돌지 않으니

핏덩이도 같이 시들어가고 있소

우렁차게 울던 그 어린 것이

이제는 고양이 새끼마냥 울어 대는데

그 작은 목구멍 속으로 넣어줄 게 아무것도 없소

부디 우리를 살려주시오

고목 둥치에 손을 가져다 대면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그득 찬 숱한 사연이

옹이를 뚫고 나온다

아물지 못한 상처 위에

시간을 겹겹이 덧입은 나무껍질은

시련 속에서도 새살을 품고

이듬해 피워 낼 새싹을 키워내고 있다.

아산시 영인면에 자리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각기 다른 상처를 품고 있다.

은행나무가 있던 자리는 과거 아산현의 관아로 ‘걸인청’이 세워졌던 곳이다.

‘걸인청’은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위한 규휼 기관으로 단순히 숙식과 의복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습득해 자립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게 도왔다.

다시 말해 걸인청은 하층민이 내일에 대한을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던 곳이다.

아산현의 관아 자리에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는 구한말 청일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이 느티나무에 청군을 묶고 고문을 했다고 한다.

엄혹했던 시대,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나이테 속에 묻고 살아온 것이다.

차디찬 겨울, 잎을 모두 떨어낸 나무를 보며 자신의 상처를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나무와 아픈 역사를 발판 삼아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사람의 생(生)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시달리고, 흔들린 만큼, 그 상처의 크기만큼 우리의 역사를 성장해왔으니 말이다.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420-1 은행나무 441년 (2023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429 느티나무 281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