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아산시 염치읍 방현리 마을 어귀에는 56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있다.
오백 년이 넘는 긴 시간, 마을의 당산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켜왔지만, 엄동설한에 마주한 은행나무의 모습은 그 삶에 비해 무척이나 초라한 행색이다.
나뭇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여실히 드러낸 은행나무에서 당당한 고목의 기색이란 찾아볼 수 없다.
감출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끌어안은 줄기가 모진 세월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 모습에서 ‘불멸의 나무’라는 수식어 새삼 떠 오른다.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음을 뜻하는 단어, 불멸(不滅)
은행나무는 수명이 무한한 나무다. 그래서 불멸의 나무라 불린다.
연구에 의하면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로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제 경기도 양평에는 12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고, 중국 각지에서는 수천 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세월이 가면 노화와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공통된 운명이다.
하지만 이렇듯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은행나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공동연구팀에 의해 은행나무는 노화를 겪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연구진들은 은행나무의 장수 비결을 ‘부름켜’에서 찾았다.
부름켜는 물관부와 체관부 사이에 있는 살아있는 세포층으로 부피 생장이 일어나는 곳이다.
연구자들은 나무의 수령에 따라 변화하는 부름켜의 관찰했는데 나무의 수령과 유전자 활동, 질병 저항 등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수령에 따라 변화하는 건 오로지 나이테의 두께뿐이었다. 그러나 은행나무라 하더라도 온전한 불멸을 꿈꾸지는 못한다.
노화로 인한 죽음은 맞이하지 않지만 불, 질병, 벌목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라지는 은행나무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긴 세월 생을 이어가는 은행나무는 억세게 운이 좋은 나무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국토 개발의 과정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잎마름병 등 질병 때문에 수많은 은행나무가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방현리 은행나무는 용케 더 살아남았다.
마을 어귀까지 공장이 들어서고, 도로가 생기는 중에도 삶터를 잃지 않았고, 스스로 치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때도 사람의 도움으로 일상을 회복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문득, 방현리 은행나무에 주어진 그 억세게 좋은 운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산나무로 마을을 지키며, 마을 주민들의 크고 작은 소원을 들으며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세월이 방현리 은행나무에 여분의 생을 선물한 것은 아닐까?
비록 그 모습이 예전 같지는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분명할 테니 말이다.
방현리 은행나무는 살아있기에 지금, 이 순간 봄을 기다리며 새잎을 준비 중이다.
아산시 염치읍 방현리 53-1 은행나무 561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