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⑭
[연재소설] 설화(雪花) ⑭
  • 유석
  • 승인 2015.06.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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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어느 날 두 아이들 편애 문제로 밤새 싸우고 출근 할 때였다.
“너는, 옛날 네 마누라가 진 빚 갚는다고 돈 벌러 나가고 너하고 밤새 싸우느라 망가진 내 보상은 어디서 받아 이 새끼야!”
그녀의 걸핏하면 내 뱉는 습관은 두고 봐도 변함이 없었다. 

툭 하면 그 소리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으면 직장까지 쫓아가 괴롭히는 바람에 그 꼴을 보다 못한 직장에서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헤프닝까지 빚어진 날도 있었다.

화실에 들어 갈 때마다 환쟁이라며 인격을 무시하는 소리도 듣지 않아 좋았고 말끝마다 신경질 부리며 대드는 악마 같은 그 모습도 보지 않아 좋았다. 저절로 흥이 났다. 비록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이지만 단 5분만이라도 꿈같은 행복의 순간을 바랐던 그에게 말 그대로 현실은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주어진 운명과 화해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승리감에 모처럼 안도의 한 숨까지 나왔다.
한 동안의 휴식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날들이 그렇게 행복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운명이 그에게 잠시 행복감을 내려준 것은 분명했지만 한편으로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아니면 다를까. 막간에 찾아온 그 행복의 맛은 너무나 짧게 끝나가고 있었다. 긴장의 회오리를 팔짱에 끼고 되돌아온 모진 운명은 악처를 통해 그를 다시 시련의 도가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고통의 끄나풀은 더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때를 같이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바뀌다보니 집안에도 이상신호가 걸렸다. 날마다 두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대는가 하면 어쩌다 미란이 집에 있는 날에 누리가 다희를 제치고 엄마를 독차지 할 때마다 난처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두 아이의 싸움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녀가 결국 폭언을 해댔다. 그때마다 교육상 누리를 혼내기라도 하면 곧바로 미란에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또 다른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토록 시련의 수레바퀴는 그를 더 괴롭혀댔다. 어느 날 거리를 지나다 모텔 앞을 지나갔을 때였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세대의 남자가 한 여자를 끼고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세상이 이러한데 자신은 무엇 때문에 아직도 캄캄한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지 그 답답함에 스스로 한 숨까지 내 쉬었다.

지금 집 밖에 나오면 다른 여자의 남자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버린 세상이거늘 오로지 한 여자한테만 행복은커녕 속을 썩여가며 살고 있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지자 둥지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 결 같이 내일은 없다며 오늘을 살고 있는데 자신은 무엇 때문에 끝까지 내일을 믿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내 놓으라하는 사람들이 세상은 이렇게 사는 것이고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연일 매체마다 대서득필 경쟁감을 만들어주고 있는 세상을 보아도 그런데 무엇 때문에 자신은 답답하게 살고 있는지 또 다시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들도 잘도 따라하는 세태마저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어 주변사람들로부터 돌연변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누구 말대로 내가 지금 병신처럼 살고 있는지도 몰라. 휴… 그렇지.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떻하겠어. 어린 딸을 내 칠 수도 없고…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건 그렇다 치고 과연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며 훗날에 떳떳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건 아니야.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미란 같은 년을 내가 뭐가 무서워서 못 떼어버리고 이토록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모르겠어.

지금 세상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인생은 오늘 뿐이라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내일을 바라보며 바보천지처럼 살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설령 먼 훗날에 내가 인생역전을 이룬다 해도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부모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거부하면 부모를 죽이고 재산을 몽땅 빼앗고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 해서 이혼을 밥 먹듯이 하고 버젓이 가정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배우자를 만나고 하는 그런 세상인데… 그러기를 몇 번씩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 부러져 있는데 나는 정말 바보구나. 도대체 그 이유가 뭐란 말이냐. 답이 없다 답이 없어…’

그는 한동안 넋이 빠져 있었다. 어제의 짧은 행복감에 젖었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천대받는 외로움을 채우지 못한 괴로움만이 밀려들고 있자 모든 게 속은 게임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허탈한 심정을 가눌 수 없자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핫트’를 꺼내 들었다.

갑자기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그동안 차가운 둥지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다 떨어진 증오의 딱지들이 지나온 뒤안길에 산처럼 쌓여 있다보니 그 누가 분노의 뇌관이라도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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