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백 만평] 어느 만화가의 죽음에 부쳐 
[서라백 만평] 어느 만화가의 죽음에 부쳐 
  • 서라백 작가
  • 승인 2023.03.13 10:4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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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서라백] 지난 일요일 오전 '검정 고무신' 이우영 작가가 타계했다는 갑작스런 비보가 전해졌다. 향년 51세,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도 이른 나이다. 강화도에 마련된 빈소 분위기는 참담했다. 동생 우진 씨는 전후상황을 대변할 기력조차 잃은 듯 했다. 눈물을 삼키며 말을 아끼는 그의 얼굴엔 슬픔보다 분노가 가득했다. 

작가는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만화잡지 공모전에서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스토리 작가(도레미, 필명)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검정 고무신' 연재를 시작한다. 독자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작가의 군 입대 기간 동생 우진 씨가 작화를 대신해 연재를 지속할 정도였다. 우영·우진은 그렇게 나란히 형제 만화가가 됐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저작권을 선점한 출판사(저작권 대행사)의 2차 저작물 사업이 진행되면서 작가는 법적 다툼에 인생의 상당 부분을 소비해야 했다. 자신이 그린 캐릭터가 본인 의중과 상관없이 신규 제작 애니메이션으로, 피규어로, 어린이 색칠놀이책으로, 학습만화로, 인형탈을 뒤집어 쓴 연극으로, 대형 유통업체의 판촉 기획상품로 소비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작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믿기지 않겠지만 해당 콘텐츠과 관련해 작가가 몇 년사이 벌어들인 수익은 불과 몇 만원에 불과하다. 이같은 사연을 작가는 최근까지도 자신을 초청한 유튜브 채널에서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대행사가 작가의 소송에 대항하기 위해 변호를 의뢰한 곳은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로펌이라고 한다. 만화계 협회단체가 함께 나서도 승소를 장담하기 힘든 버거운 싸움, 소송에서 질 경우 소송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저작권 전문 변호사까지 나서 작가를 도왔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다.

빈소에서 만난 지인에 따르면 작가는 '검정 고무신' 새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애초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전작에 이어, 자신의 유년 시절인 70년대를 반영한 온전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이다. 의욕을 불태우던 작가는 하지만 저작권에 발목을 잡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고, 결국 기운을 상실하고 삶을 내려놓았다. 그 원통함은 혈육과의 이별마저 감수할 정도로 깊고 컸다. 아내는 물론, 이제 곧 사회 초년생이 될 두 아들과 재롱을 떨던 막내딸과도 헤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작중 캐릭터 '기영·기철'를 끝까지 가슴에 품었다.  

새학기를 맞은 시기 스승을 잃은 제자들(용인예술과학대 웹툰만화과)의 충격 또한 말할 것 없다. 조문을 함께한 관련 학회 교수에 따르면, 몇 년 전 임용이 확정된 후 관련 분야 교수를 일일히 방문해가며 강의 자료를 수집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웹툰 교육 커리큘럼을 짜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학교 안팎에 충분히 공유됐는지는 알 수 없다. 

故 이우영 작가가 보내온 굿모닝충청 창간 10주년 축하만평(2022년 6월) 

고인은 또한 수줍은 성격 탓에 굳이 정치색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줄곧 진보적 입장을 견지했다. 모 지자체가 진행한 독립운동가 웹툰 시리즈에 참여하거나, 작가들이 나선 참여행동을 응원하고 기꺼이 이름을 보탰다. 굿모닝충청 창간 1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직접 그린 축전을 실어 보낸 바 있다. 

경악스러운 것은 발인이 채 치러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인을 능욕하는 패륜을 쏟아내는 부류다. 극우·친일 성향으로 알려진 윤서인 작가는 부고가 전해진 당일 자신의 SNS에 "공산주의 만화를 그리시는 분 답게 자신의 사유재산인 저작권도 남들에게 평등하게 다 나눠주신 거 아닐까"라고 비아냥거렸다. 몇 해 전 진보성향 매체에서의 인문·역사 기획물에 참여한 '공산당선언'을 걸고 넘어진 것인데, 어찌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가 있을까.  

우리는 선인(善人)의 죽음을 조롱하는 악마들의 말잔치를 지겹도록 봤다. 이태원 골목에서 쓰러진 청년들을 조롱하는 뱀들의 혓바닥,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과거 비서실장의 죽음에 음모론을 대입하는 방약무인을 목격했다. 언론은 유족이 공개를 원하지 않은 유서를 모호한 출처를 인용해 나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한 언론이 정작 자국민을 학살로 내몰았던 독재자의 죽음에는 '서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극정성한 예의를 다한다.     

지쳐 떠나는 망자의 옷자락를 붙들어 봤자 어차피 소용없음을 우리는 안다. 다만 저 세상에서의 안식과 평안을 기원드릴 뿐이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계약서의 모호한 구절 하나 때문에 작가의 창작물이 갈취당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무수히 많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작가의 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적 관심이 재차 환기될 필요성이 대두된다. 작가단체는 물론, 관련 기관의 법적 자문과 지원이 엄밀하게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삼가 故 이우영 작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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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월 2023-03-13 11:16:37
이 나라에서 판검사들을 ai바꿔야 하는 이유가 지금 현재 젠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막을수 없다는게 너무 화가 나고 어이없다.

시민 2023-03-13 12:07:57
요즘 우리아이들이 하루에도 몇시간씩 웹툰을 보는데 윤서인같은 망나니의 만화를 보고 있을까 걱정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자 2023-03-13 13:59:04
참담한 세월을 살아가는 요즘..
작가님의 부고가 너무 슬픕니다.ㅜ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나는미르 2023-03-13 16:26:10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만화를 그리셨는데 안타깝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혜정 2023-03-14 07:03:34
51살이면 인생 반이나 남았는데 너무 안타까워요.부디 좋은곳으로가셔서 남은 가족들 잘살펴봐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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