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희귀고서 & 영화자료 한데 모은 ‘노마만리’ 
전국 유일, 희귀고서 & 영화자료 한데 모은 ‘노마만리’ 
고서·영화 관한 방대한 지식과 경험 나누는 한상언 대표
  • 노준희 작가
  • 승인 2023.04.03 10: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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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일본 문단 뒤흔든 김사량의 노마만리 양서각판 진본 등 희귀고서 소장
매주 금요일 밤 영화 상영, 4월~5월 ‘봉준호 전작전’ 열어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신개념 복합문화공간을 만났다. 천안시 직산읍 마정저수지에 있는 3층 건물 ‘노마만리’다. 미니 분수를 갖춘 중정을 품고 있는 데다 마정저수지 호수 뷰를 독차지하고 있어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며 책 읽기 딱 좋은 장소다. 

그런데 이곳의 기능은 이게 다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마무시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천안시 직산읍 마정저수지에 있는 희귀고서 영화 전문 도서관 카페. 주차장 쪽에서 본 노마만리 전경 (사진= 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천안시 직산읍 마정저수지에 있는 희귀고서 영화 전문 도서관 카페. 주차장 쪽에서 본 노마만리 전경 (사진= 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보도듣도 못한 희귀고서들이 이곳에! 

이곳의 독특함은 1층부터 시작한다. 한눈에 봐도 세월의 더께가 쌓인 희귀한 고서들이 즐비했다. 일반인의 안목에도 귀한 책임엔 분명해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누런 책 앞에서 공간의 비밀을 풀어줄 주인장 한상언 노마만리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상언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서화가들을 자세히 기록한 인명사전”이라며 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이어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인 오세창 선생이 엮은 책”이라며 “오세창 선생은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소장한 자료 자체도 희귀하지만, 저자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이었다. 국립전시관이 아닌 개인의 공간에서 이런 책을 만나다니 놀라웠다. 

김사량 작품을 전시한 2층 전시관. 김사량은 일본 문단에 충격을 던져준 대작가이지며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 있던 작가였지만 월북했다. 그가 남긴 유일무이한 작품들을 한상언 대표가 소장하고 있다. (사진=한상언 대표 제공/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김사량 작품을 전시한 2층 전시관. 김사량은 일본 문단에 충격을 던져준 대작가이지며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 있던 작가였지만 월북했다. 그가 남긴 유일무이한 작품들을 한상언 대표가 소장하고 있다. (사진=한상언 대표 제공/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이번엔 ‘노마만리(駑馬萬里)’라는 작품을 꺼내 들었다. 김사량의 첫 번째 기행문이다. 카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 ‘둔한 말이 만 리를 간다’는 뜻이랬다. 

“김사량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문단에 충격을 주고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에도 오른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 대표는 김사량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당시 작품과 관련해 놀라운 뒷얘기를 자세하게 풀어주었다. 

특히, 누구도 보지 못했고 말로만 듣던 노마만리 양서각판 초판 진본이 그의 손에 있다는 사실! 고서 감정가들이 진본임을 인정한, 세계 유일 희귀고서다. 한 대표는 노마만리 내재지에 있는 낙타 그림을 이곳 마크로 사용할 정도로 노마만리 작품에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러시아 대문호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 영문번역원서 초판도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보기 드문 북한 관련 책이 많았다. 4월부턴 새로운 고서로 서가를 꾸민다고 했다. 

2층 벽에 가득 진열된 영화전문잡지. 일본 최고 권위 영화잡지 '키네마준보'가 전시돼있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2층 벽에 가득 진열된 영화전문잡지. 일본 최고 권위 영화잡지 '키네마준보'가 전시돼있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영화 관련물과 고서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무궁무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벽 전체를 덮은 책장이 있는데 영화잡지 시리즈가 빼곡히 놓여있다. 한 대표는 “1919년 창간 이래 지금까지 일본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전문잡지 일본 키네마준보 시리즈”라고 소개했다. 

2층에 들어서면 특별하고도 조그만 공간을 만난다. 한상언 대표가 존경하는 인물의 관련 소품들을 전시한 곳이다. 지난달까지는 김종원 원로 영화평론가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다. 

김종원 원로 영화평론가가 애장한 희귀자료들. 한상언 대표는 김종원 선생을 존경하는 뜻에서 2층 입구에 작은 기념공간을 운영하기도 했다. (사진=한상언 대표 제공/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김종원 원로 영화평론가가 애장한 희귀자료들. 한상언 대표는 김종원 선생을 존경하는 뜻에서 2층 입구에 작은 기념공간을 운영하기도 했다. (사진=한상언 대표 제공/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김종원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선구자적인 평론가다. 예전엔 TV를 켜면 영화 평론에 관해선 어김없이 그가 나왔다. 

한 대표가 김종원 작품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그 뒤에 숨은 일화를 얘기할 땐 그곳에 온 모든 방문객이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방문객들은 자주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이런 공간에 온 것도, 이런 작품들을 만난 것도,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정말 즐겁고 귀한 경험이라며.

다양한 작품에 얽힌 일화도 재밌지만 한 대표의 지식 방출은 근거 있게 정돈돼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고 보니 그는 한양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상언 영화연구소를 운영하는 전문영화인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영화사를 전공했으며 1970년대 이전 북한 책 연구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상언 영화연구소’를 운영하는 전문영화인이다 보니 영화 이야기든 고서 이야기든 술술 나올 수밖에. 

4월 10일부턴 ‘이길성과 친구들’이라는 테마로 추모관을 오픈한다. 노마만리는 한상언 대표의 소장품이 매우 많은데 한 대표는 “이곳의 절반 이상은 이길성 선생님이 기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를 기념하고 감사를 전하는 뜻에서 특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이길성에 관한 이야기는 한상언 대표에게서 직접 들어야 더 재밌을 듯하다. 

특히 2층 전체를 눈여겨보자. 김사량의 희귀작품들은 물론, 김종원 선생의 애장 자료인 ‘한국영화사’ 외 다수의 작품이 전시돼있다. 

한 대표는 “김종원 선생과 함께 1960년 창립된 영화비평가협회의 발기인인 노만 선생이 쓴 책이다. 전국의 배우 지망생들의 영화교재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학원을 찾아가 질문하거나, 전화나 우편으로 지도받으며 사용하던 책”이라며 한국영화사 원본을 소개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귀한 책이다. 

노마만리는 마정저수지 호수 전체를 조망하는 뷰를 갖고 있다. 3층 건물이므로 층마다 호수 뷰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노마만리는 마정저수지 호수 전체를 조망하는 뷰를 갖고 있다. 3층 건물이므로 층마다 호수 뷰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봉준호 전작 감상하며 같은 취향인 만나기, 노마만리에서 

게다가 3층에선 매주 금 오후 9시에 영화를 상영한다. 한 대표는 “같은 영화라도 다양한 각자의 시각을 발견할 수 있어 나도 배우고 친구도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박해일 회고전을 열었고 4월과 5월엔 봉준호 감독 전작전을 진행한다.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4월 5월 금요일 밤을 기억해두길. 8시까지 오면 참석자들과 수다도 떨고 한상언 대표의 전문강좌도 들을 수 있다. 

평소엔 입장료 7,000원을 받고 음료를 무한리필 해주지만 영화 보러 오는 사람에겐 입장료를 5,000원만 받고 영화도 보여주고 음료도 무한리필 해준다. 

말도 안 되는 이 셈법은 한상언 대표의 영화 사랑 대중화를 위한 특별한 애정 표현이다. 

천안시로부터 작은도서관 인증도 받았다. ‘김종원영화도서관’이란 이름으로 노마만리는 이제 명실공히 희귀고서를 가득 소장한 영화 전문도서관이 되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 개소 5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생겼다. 

노마만리 3층  다양한 책과 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금요일마다 영화관람공간으로 변신한다. 반대편 공간은한눈에 펼쳐지는 호수 뷰를 갖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노마만리 3층 다양한 책과 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금요일마다 영화관람공간으로 변신한다. 반대편 공간은한눈에 펼쳐지는 호수 뷰를 갖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영화연구자로서 지역과 호흡할 방법 찾아” 

한 대표는 2018년 서울도서관에서 ‘평양책방’이란 이름으로 북한 책을 전시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제도권 연구자에서 개인 연구자로 행보를 바꿨다. 특히 1970년대 이전 출간된 북한 문학예술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가진 자료는 방대하다. “1970년 이전 북한자료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다. 특수자료 취급인가를 갖고 있어 비열람자료는 웬만한 대학도서관보다 질적으로 뛰어난 자료가 많다”고 밝혔다. 

통일부 북한자료실 신설이 1989년이었고 북한 연구자들이 대부분 있는 자료를 연구하다 보니 북한 연구가 70대 이후로 한정돼있다. 그는 “70년대 이전 북한을 연구해 아카이빙하고 있다. 문학 정치 사회 등 대상을 넓혀서 북한 문예 연구자들이 질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관련 저서도 지속해서 저술하고 있다. 

노마만리를 열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컬렉터로서 나만의 독특한 장소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것과 “문자로 이해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말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는 것. 

책으로 발표해 문자에서 끝나는 연구논문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 자료를 통해 지식의 대중적 확산에 기여하고 싶은 한 대표의 숙원이었다. 

“영화연구자로서 지역과 호흡할 방법을 찾았죠. 사회자처럼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게 지역사회 공헌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장인들이 퇴근 후 영화를 통해 주말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게 금요일 밤 강좌를 계속 운영할 겁니다. 영화모임 자체는 저의 재능기부라 생각하시고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일제강점기와 북한 문학, 영화 전문가인 한상언 대표. 그가 엄청난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영화 사랑을 널리 나누고자 천안에 노마만리를 열었다. 전국에 유일하다시피 한 영화·고서 복합문화공간, 노마만리에는 색다른 지식과 문화교류의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한상언 노마만리 대표. 한상언 대표는 희귀고서와 영화 전문가로서 그동안 소장한 소장품을 노마만리에서 교체 전시한다. 영화 강좌와 영화모임도 진행하며 대중에게 색다른 지식과 경험을 전하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한상언 노마만리 대표. 한상언 대표는 희귀고서와 영화 전문가로서 그동안 소장한 소장품을 노마만리에서 교체 전시한다. 영화 강좌와 영화모임도 진행하며 대중에게 색다른 지식과 경험을 전하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노준희 기자)

<봉준호 전작전 상영 일정>

4월 7일 : 플란다스의 개 
4월 14일 : 살인의 추억 
4월 21일 : 괴물
4월 28일 : 마더
5월 12일 : 설국열차
5월 19일 : 옥자
5월 26일 :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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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픈뫼 2023-04-03 13:52:55
다가오는 세상, 문화는 서울이니 중앙이니 하는 특정세력이나 특정 지역 아닌 지방 특색과 지역시민들이
일궈내는 일상 중심, 미시사성 기록물과 활동이 자리잡으며 꽃피겠지요. 한 대표님 같은 분들의 뜻과 활동 이를 지지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충청 천안 지방 문화 특성을 가꿔나감, 그 즐거움이 자체 문화 사랑이고 문화 줄기 세우기가 아닌가 합니다. 노기자님이 발굴했달까 주목하는 분들과 그들의 활동 기사! 다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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