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주변이 온통 사과밭인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에는 459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다.
사과밭 한 가운데 우뚝 선 느티나무는 그 수령에 걸맞은 웅장함을 지녔음에도 때때로 사람들의 시선 밖에 놓인다.
하얀 사과꽃이 눈 내리듯 나리는 봄과 붉은 사과가 탐스럽게 열리는 가을이면 시선이 사과밭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느티나무는 사과밭의 오랜 풍경이 된다. 초록빛 그득한 느티나무 덕에 사과나무의 빛나는 한철이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느티나무도 사과나무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느티나무는 봄빛이 완연해지는 늦은 봄, 작고 여린 잎을 틔운다.
‘느티나무’라는 이름 또한 늦게 잎을 틔워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잎을 늦게 틔운다고 해서 느티나무를 생장이 더딘 나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나무보다 늦게 새잎을 틔운 느티나무는 이내 부지런히 꽃을 피워 낸다.
잎이 뾰족이 솟아난 줄기에 딱 달라붙어서 피는 느티나무꽃은 그 크기도 작고, 연두색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다는 것을 모를 정도다.
그렇게 꽃이 피고 또 지고 나면 그때부터 느티나무는 열매를 키워낸다.
여름 햇살이 나뭇가지를 파고들기 시작할 때 여물기 시작하는 느티나무 열매는 작은 데다 연둣빛이다. 열매 또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없다.
그래서인지 느티나무를 볼 때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에 있는 소소한 행복을 무심하게 지나치며 산다.
때때로 그 무심함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게 만든다는 사실까지도 까마득히 잊고 사는 것이다.
이른 봄, 앙상한 나뭇가지에 살짝이 돋아난 어린 새잎,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피어난 이름 모를 꽃처럼 대수롭지 않지만, 가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생명이 우리 곳곳에 움트고 있다.
봄빛이 완연한 4월, 앞만 보고 내달릴 게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생을 이어가는 자연으로 시선을 돌려볼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도 좋지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느티나무꽃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여유로운 봄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 176 느티나무 459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