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고려 2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고려 2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33-고려 2’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4.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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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유사 고려방언 연구' 성균관대출판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제 책꽂이에는 40년 전인 대학 때 사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계림유사 「고려방언」 연구』라는 강신항 교수의 책입니다. 이 연재 글을 쓰느라고 서긍의 책 『고려도경』을 주마간산 격으로 뒤져보다가, 우리나라에 온 송나라 사신이 서긍만이 아니라 손목도 있다는 생각이 나서 책꽂이를 뒤적거린 것입니다. 손목(孫穆)은 1103년(고려 숙종 8년)에 송나라 사신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하고 돌아가 자신이 본 고려의 여러 가지 풍속을 글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중에 국어과 학생인 저의 눈길을 잡아끈 것이 고려 방언인데, 손목은 약 360 나문 개 낱말을 채록하여 자신의 책에 남겨놓았습니다. 그래서 국어사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의 우리 언어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 여깁니다.

이번에 심심풀이로 뒤적이다 보니, 눈이 번쩍 띄는 낱말이 하나 있습니다. 서긍은 고려에서 용(龍)을 ‘칭(稱)’이라고 했다고 적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용은 ‘미르’나 ‘용가리’인데, 이건 정말 뜬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한 5초 뒤, 머릿속에서 번갯불이 번쩍 스쳤습니다.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저의 글을 지금까지 성심껏 읽어온 분이라면, 저와 동시에 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계림유사』의 판본은, 모두 3가지입니다. 이름이 아주 복잡해서 전문가들이나 알 책 이름은 생략하고, 출판 연도만 밝혀서 세 판본을 구분해보겠습니다. 1647년 청나라, 1926년 상해, 1927년 상해.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여기서는 서지학을 연구하자는 게 아니니, 그냥 연도만 표시하는 것으로 구분하겠습니다.

1647년과 1926년 판에서는 ‘龍曰稱’이라고 하여 용(龍)을 고려에서는 ‘칭’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27년 판에서는 ‘龍曰稱’이 아니라, ‘龍曰珍’으로 나옵니다. ‘칭’과 ‘진’, 어느 쪽이 맞을까요? 결론은 둘 다 맞습니다. 稱이나 珍은 뜻이 아니라 소리를 적은 것입니다. ‘칭’과 ‘진’은 비슷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원으로 상고사를 탐구하며 지긋지긋하게 봐온 바로 그 발음 ‘čin’입니다.

‘čin’은 황금을 뜻하는 말로 혈통에서는 한 나라를 창업한 왕족, 즉 황금 겨레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북방에서는 ‘친’이라고 하고, 우리말에서는 ‘금, 김’이라고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용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용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미르, 가리’입니다. 그런데 ‘čin’이라니요? 따라서 이 ‘čin’은 실제 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왕족이나 왕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왕건을 비롯하여 고려 왕족인 왕 씨들을 만나보고 그들을 가리키는 말(용안, 용상, 용포, 용종)이 용의 계통이어서 이렇게 적었을 것입니다.

왕건의 아버지는 용건이고, 할아버지는 작제건입니다. ‘作帝=龍=王’의 등식을 확인할 수 있죠. 『계림유사』에 나온 고려 방언에 따르면 여기에 ‘칭’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作帝=龍=čin(稱)=珍=金=王’이 되죠. 이 고리를 따라가면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작제건의 설화에서 용이 등장하는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여우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용왕을 구해주고 용왕의 맏딸과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왕건의 조상이 용왕의 일족이었음을 뜻합니다. 여우(狐)는 무엇일까요? 호(狐)는 호(胡)와 음이 같습니다. 발해 왕실을 위협하는 외부세력을 나타낸 것이었을 것입니다. 왕건의 할아버지 무렵에 발해를 괴롭힌 오랑캐라면 거란이 아닐까요? 나중에 요나라로 발전하여 발해를 멸망하게 만든 그 겨레일 것입니다. 발해와 대립각을 세웠던 당나라도 오랑캐로 볼 수 있는데, 왕건의 조상이 당나라 귀족이라고 했으니, 제 조상을 오랑캐로 설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거란과 발해의 갈등 속에서 왕건의 할아버지는 발해에 도움이 되는 어떤 행위를 했ᅌᅳᆯ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대한 보상이 발해 왕족과 결혼하는 것이겠죠. 아마도 요나라와 싸우는 전쟁에서 군대에 동원되어 꽤 그럴 듯한 전공을 세운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도 아니라면 당나라에 사신으로 오가며 거란이 일으킨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앞서 설화에서 알아본 대로 여기서 용왕은 발해의 왕족을 뜻하므로, 왕건의 할아버지는 발해의 왕녀와 결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황금 겨레로 합류한 것이죠. 그래서 작제(作帝)의 아들은 그 어머니 때문에 저절로 용(龍)의 혈통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계림유사』 고려 방언에 나온 ‘龍曰稱’의 뜻이 비로소 또렷해집니다. ‘龍曰稱’이고 ‘稱曰王’입니다. 발해 왕족의 혈통을 이었기에 성을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후삼국 시대의 혼란기에 자신의 성을 왕이라고 할 수 없느니, ‘용’으로 간접 표현을 한 것이고, 그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 ‘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은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 집으로 데려오지만, 아내를 훔쳐보면 안 된다는 약속을 어기고 침실 밖 우물을 통해 용궁으로 오가는 아내를 몰래 들여다봅니다. 그것을 안 용녀는 남편을 버리고 용궁으로 돌아가죠. 작제건은 속리산 장갑사에 들어가 불경을 읽다가 세상을 마칩니다.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왕건의 조상이 한때 발해 왕실과 관계를 맺었다가 어떤 이유로 멀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쉽게 말해 왕건은 발해 왕실과 혼인으로 맺어진 인연의 고리가 몇 세대 흐른 뒤 흐지부지된 몰락 왕족 출신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후삼국이라는 어지러운 시대를 만나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왕의 자리까지 등극하게 된 것이죠.

이런 점은 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출신도 고구려 왕실과 연관을 맺고 있죠. 발해를 세운 걸걸중상과 대조영의 이름을 보면 ‘걸’이라는 말을 확인할 수 있고, 고려에서도 왕을 ‘기장’이라고 하여 같은 맥락으로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와 발해가 다른 이름을 쓴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 황금을 뜻하는 ‘čin’으로 자신들을 나타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왕실이 발해로 이어지고, 발해의 왕실이 다시 고구려로 이어져, 고려는 결국 고구려의 혈통과 계보를 이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龍이 ‘čin’이므로, 용건(龍建)은 ‘čin-khan’이고, ‘čin’을 무엇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제건(帝建), 왕건(王建), 김건(金建), 칭건(稱建), 진건(珍建), 진건(辰王), 걸건(乞建), 대건(大建), 한건(韓建)’처럼 다양한 이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용건’은 그런 표현 중의 하나일 뿐이죠.

고려 창업 신화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입니다. 

     선종은 한 달 동안 머무르다가 진의가 임신하자 아들에게 전하라고 하며 활과 화살을 주고       당으로 돌아갔다. 뒤에 아들을 낳아서 작제건이라 하였다. 작제건은 총명하고 용맹하였으며       서예와 활쏘기에 뛰어났다. 5, 6세 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당나라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       으며, 16세에 아버지가 남겨 준 활과 화살을 받고서 기뻐하며 이를 쏘니 백발백중인지라 사       람들이 신궁이라 하였다.

사람의 이름을 빼고 전체의 줄거리만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설화 아닌가요? 어디서 보았을까요? 주몽 설화와 똑같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들이 뛰어난 활쏘기 실력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왜 이렇게 똑같은 설화가 만들어졌을까요? 이 설화를 만든 주체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몽 신화를 만든 그 사람들이 1,000년 세월 뒤에 다시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신화를 만든 것입니다. 그 신화의 주인공이 이번에는 ‘고구려’가 아닌 ‘고려’를 세운 것일 뿐입니다. 이 신화를 만든 사람들은 2,500년 전에 서언왕 신화를 만들었고, 2,000년 전에 동명 신화를 만들었고, 고구려 건국 때 주몽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신화의 구도는 고려의 창업자들이 신라계가 아니라 고구려와 발해의 계통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역사학도들께서는 못마땅하시겠으나, 문학을 전공한 저의 눈에는 이보다 더 또렷한 증거도 없어 보입니다. 억울하시면 주변의 문학도들에게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신화는 계통이 있어서 국문학계에는 그에 관한 연구도 꽤 많이 그리고 깊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저의 주장을 검토해보라고 하십시오. 저는 검증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역사학도 여러분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자신이 있습니다.

완안부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는 조상 함보가 고려 김 씨 출신이라서 나라 이름을 ‘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金’을 우리는 ‘금’이라고 읽는데, 정작 나라를 세운 아골타는 뭐라고 읽었을까요? 만주에서 여진족과 함께 살던 그가 오늘날의 우리처럼 ‘금’이라고 읽지는 않았ᅌᅳᆯ 것입니다. 이런 의문이 『계림유사』를 읽어보면 눈 녹듯이 풀립니다. 고려에서는 황금 혈통인 왕족을 ‘칭’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고려 출신을 조상으로 둔 아골타는 ‘金’을 ‘칭(稱)’이라고 읽었을 것이고, 이 ‘칭’은 ‘čin’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추정대로 뒷날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들은 ‘金’을 ‘qing’이라고 발음합니다. 그들의 나라 이름 청(淸[qīng])도 여기서 온 말입니다. 진시황의 대진(大秦)도 ‘따친’이고, 아골타의 대금(大金)도 ‘따친’이고, 누루하치의 대청(大淸)도 ‘따친’입니다.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세운 위대한 황금 겨레’를 뜻하는 말입니다. 『계림유사』에 따르면, 고려도 따친(大稱)입니다. 大秦=大金=大淸=大稱=čin.

여기서 조금 더 거슬러 가면 위만에게 왕궁을 빼앗기고 바다를 건너가서 스스로 한왕이라고 한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이름이 준(準)인데, 지금 살펴보니 이것도 용을 뜻하는 ‘čin’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소학당 사이트에서 알려주는 ‘準’의 상고음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čin’과 비슷한 소리가 납니다. ‘ȶi̯wən, ȶiwən, ȶjuən, tjiwən, tjənx’이어서, 중고음 ‘tɕi̯uĕn’을 거쳐, 현대음 ‘zhǔn(tʂuən)’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니까 ‘준’은 이름이 아니라 조선에서 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죠.

손목이 쓴 책의 이름에 들어간 ‘계림’은 원래 신라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신라가 통일함으로써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어 쓰였습니다. 계림은 신라의 수도 금성의 서쪽에 있는 지명인데, 시림(始林)이라고도 합니다. 김알지의 등장 신화와 관련이 있는 곳이죠. 닭이 울어서 가보니 황금 궤가 나무에 걸려있고 그것을 열어보니 거기서 아기가 나옵니다. 그가 김알지죠. 닭이 울었다고 해서 계림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계(鷄)와 시(始)는 같은 말을 적은 표기일 것입니다. 鷄는 뜻이 닭이지만 닭이 새여서 ‘새’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새(鷄)’와 ‘시(始)’는 같은 소리를 표기한 말이죠. 林은 ‘수불’이니, 계림은 ‘ᄉᆡ벌, 서라벌’을 적은 향찰 표기입니다. 뒤집어보면 김알지 때문에 지명이 붙은 게 아니라, 지명 때문에 김알지 신화라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신화와 사실은 이렇게 선후 관계가 뒤집히기도 합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고려시대의 말 몇 가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계림유사』에서 ‘100’은 ‘온(醞)’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말이지만, 이때만 해도 ‘백’이라는 말보다 ‘온’을 더 많이 썼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온’은 몽골어에서 온 말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활쏘기의 나침반』)

금(金)은 ‘나론의(那論義)’라고 적었는데, 강신항은 이것을 ‘누른쇠’로 재구성하였습니다. 義를 歲의 오자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원래 ‘čin’이 황금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고려 때에 이르면 ‘čin’은 왕족인 ‘용’을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고, 황금은 ‘누런 쇠’로 표현한 모양입니다. 은(銀)은 ‘한세(漢歲)’라고 적었는데, 이건 한 눈에 보기에도 ‘흰 쇠’를 적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철(鐵)은 당연히 ‘세(歲)’라고 적어서, ‘쇠’를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적을 수 있게 된 것은, 조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입니다. 그래서 그 전의 자료는 모두 한자로 표기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 말에 대한 자료가 드물어서 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애를 많이 먹습니다. 그런 가운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말이나 우리 풍속을 한자로 표기한 사례는 많지 않아서 『고려도경』이나 『계림유사』 같은 책은 국어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 취급합니다. 신라시대의 언어와 조선 시대 이후의 언어를 매개해주는 것이 고려의 언어인데, 우리 말의 중요한 음운 변화를 확인시켜주는 것이 손목의 『계림유사』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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