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29]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공주시 유구읍 구계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29]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공주시 유구읍 구계리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3.05.03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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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원상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봄 햇살이 단단히 여물었다. 덩달아 농사를 짓는 이들의 움직임도 분주한 5월, 공주시 유구읍 구계리 느티나무 보호수를 만나러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홉 내[川]가 합쳐지는 곳이라 구계(九溪)리라 불리는 마을이다.

이곳 주민들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데 소하천 주변으로는 벼농사를, 산기슭에는 밭농사를 짓는다. 사방이 논밭이다 보니 구계리의 봄은 유난히 푸르다.

봄볕 아래 녹음을 더해가는 구계리 느티나무까지 더해져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구계리는 해발 200~500m의 산간마을로 땅을 일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업을 찾을 수 없는 마을이었다.

땅이 유일한 삶의 터전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산비탈을 개간해 밭을 일구고,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 논을 만들었다.

땅은 정직하기에 어스름한 새벽부터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갈 때까지 허리 펼 사이도 없이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다.

농작물을 더 많이 수확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쉬는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산간마을의 고단한 삶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그런 마을 주민들에게 느티나무는 유일한 휴식처였고, 따가운 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었다.

손바닥만 한 그늘이 간절해지는 한 여름에는 느티나무가 논밭 사잇길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다행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느티나무의 존재를 잊고 산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일부러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데다 계절의 변화도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손이 가지 않는 나무라서 더욱 무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을 그 시간에도 느티나무는 곧은 가지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삶의 무게만큼 뜨겁던 햇살을 커다란 그늘에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직은 여린, 그래서 조금은 성근 나무 그늘에 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햇빛을 받은 나뭇잎은 반짝였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어 눈이 부셨다.

문득 느티나무가 내게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하고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일하는 건 배웠지만 쉬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마치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하루를 살아냈다.

새해가 시작되고 마흔 중반이 되고 보니 마음이 더욱 급해졌던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내게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느티나무 그늘과 함께 드리워졌다. 비단 이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에게도 잠시 쉬어갈 느티나무 그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느티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위해 더 넓은 그늘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공주시 유구읍 구계리 736 느티나무 342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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