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위대하고 깊은 전율 "모비딕"
[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위대하고 깊은 전율 "모비딕"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3.05.08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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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Call me Ishmael.)”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되지 않는 고래여! 
그럴지라도 그대를 향해 나는 돌진한다.”

허먼 멜빌
허먼 멜빌

《모비 딕》(Moby Dick)은 미국인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1851년 30대 초반에 발표한 해양 모험소설로 흰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발을 잃은 노(老) 선장 에이허브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여 광기와도 같은 《모비 딕》 사냥을 배경으로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을 상징적으로 그렸습니다.

허먼 멜빌은 20세 되던 해에 당시 기름을 얻기 위하여 머리가 몸 전체의 3분 1을 차지하고 몸통보다 머리에 기름이 많은 향유(香油) 고래를 잡으러 다니는 포경선의 선원으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여러 섬에서 생활합니다. 

모비 딕
모비 딕

이 소설은 작가인 화자(話者) 이스마엘(Ishmael)의 관점에서 자신의 피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백경(白鯨)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었습니다.

레이먼드 위버(Raymond Weaver, 1888-1948)가 허먼 멜빌이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 《모비 딕》을 평론한 이후로 유명해졌습니다. 발표할 당시 독자들은 허구와 사실, 잡다한 지식과 서사적인 이야기들이 마구 뒤섞인 정체불명의 작품으로 혹평을 하였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무명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모비 딕》의 등장인물들은 성서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창세기의 인물로 ‘신은 들으셨다’라는 뜻이고, 선장 에이허브(Ahal)는 구약에 등장하는 ‘아합’의 영어식 발음으로 폭군인 그는 악행을 일삼고 우상숭배에 빠져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린 인물입니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 이스마엘이 최대한 빨리 바다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합니다. 그는 수중에 돈도 떨어지고 뭍에서 별로 흥미로운 일도 없는 우울함을 떨쳐내려고 새로운 삶과 모험이 있는 바다로 나가려고 선원의 자격으로 배에 오르려고 합니다. 

그는 셔츠 두 장을 쑤셔넣은 낡은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자기가 사는 맨해튼을 떠나 뉴베드퍼드에 도착하여 전통적인 고래 사낭터인 낸터킷 섬으로 갑니다. 사실 포경업에 종사하는 고래잡이 사냥꾼은 백정처럼 비웃음을 당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바닷길을 열어주고 미개지의 항구를 드나들게 한 것은 공포와 경이와 맞선 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스마엘은 그곳에서 가장 싼 여관 ‘물보라 여관’에서 남태평양 출신으로 얼굴이 흉한 작살잡이 식인종 퀴퀘그를 한 침대에 두 사람이 자는 인연으로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우정을 쌓고 영혼이 맑은 이교도를 사랑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커피와 따근한 빵대신에 핏물이 흐르는 비프스테이크(beefsteak)만 집중하는 것이 별났으며 예의범절은 몰랐으나 아주 정중하고 사려 깊게 이스마엘을 대했습니다.

퀴퀘그
퀴퀘그

퀴퀘그는 현재 작살잡이로 젊음의 혈기를 만끽하며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코코보코라는 섬의 대 추장으로 왕이었고 그 또한 왕이 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기독교 세계에 대한 남다른 열망과 호기심으로 못 배운 부족들을 계몽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왔으나 일을 하면서 기독교인들조차도 불행하고 사악한 것을 알고 애당초 목표인 기독교도로 살지 않고 이교도로 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승선할 배로 우울한 느낌을 주는 피쿼드호를 선택합니다. 피쿼드호는 세 척의 고래사냥 보트와 보조 보트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은 에이허브이지만 선주는 펠레그 선장과 빌대드 선장으로 승선할 선원과 배당을 결정할 권한과 출항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맡고 있었습니다. 

항해사 3명을 비롯한 선원들은 3년을 계약하고 크리스마스 날 드넓은 대서양을 향해 출항합니다. 준수한 용모의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은 생각이 깊은 신중한 사람이었으며, 이등항해사 스터브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쾌활하고 느긋할 정도로 태평하고, 삼등항해사 플래스크는 고래에 대하여 다분히 호적적으로 고래와 맞설 때의 위험에 대하여도 무심했습니다.

스타벅은 절도 있고 강인한 용기를 가졌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짐승한테 복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모비 딕》은 그냥 맹목적인 본능으로 선장을 공격할 뿐으로 짐승한테 원한을 품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스타벅은 에이허브 선장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유일한 사람이지만 선장과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고 오히려 선장이 신임하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과 가족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모비 딕》 추격을 중단하고 살아서 돌아가길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입니다. 

스타벅은 가장 분명하고 유용한 용기란 위험에 대한 정당한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며 아무런 겁도 없는 사람이 비겁한 사람보다 더 위험한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래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고래잡이배에 태우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스타벅
스타벅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Starbucks)는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스타벅스로 상호를 지은 것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캐릭터일 거라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잔잔한 바다에서 초원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는 것처럼 커피 한 잔이 주는 차분함을 상징하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이 세 항해사들은 각자 자신이 이끄는 소부대의 부대장입니다. 고래잡이 보트 키잡이로 날카로운 창으로 무장한 작살잡이 투창 병들을 지휘합니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자신의 종자(從者)로 퀴퀘그를 선택하였고, 이등항해사 스터브는 순수 혈통의 인디언 타슈테고를, 삼등항해사 플래스크는 흑인 다구가 종자였습니다. 

40년 동안 고래만 잡으러 궁핍과 위험, 폭풍우와 함께 보낸 반백의 에이허브 선장은 바다의 사자처럼 큰 체구로 엄청난 불행을 겪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압도적인 위엄과 강건함이 서려있었습니다. 

한쪽 다리에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한 그는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모비 딕》을 찾아 죽이려 합니다. 그는 미친 악마처럼 지칠 줄 모르는 복수의 일념으로 이상하게 주름잡힌 이마, 눈처럼 하얀 피라미드같이 높이 솟은 혹이 달린 특정한 한 마리의 고래를 찾으러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남태평양을 헤매면서 다른 배들의 선장에게 흰고래를 보았냐고 묻고 다니다가 드디어 《모비 딕》을 만납니다. 

잠잘 시간에도 목표물을 놓지 않은 노인과 마주한 신비로운 《모비 딕》의 등에는 불사의 존재인 양 무수한 작살이 등에 꽂힌 채로 있지만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 인간을 조롱하듯 《모비 딕》은 쉽게 정복되지 않습니다. 

미덕과 양식을 지닌 스타벅 조차도 선장의 편집증적인 흰고래에 대한 복수를 돕기 위하여 선발된 것처럼 늙은 선장의 분노에 열광하여 마치 자신의 원수처럼 흰고래를 악의 화신처럼 돌진합니다.

향유고래
향유고래

에이허브와 《모비 딕》은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처절하게 사투를 벌인 끝에 《모비 딕》을 작살로 명중시키지만 작살에 맞는 순간 《모비 딕》은 앞으로 내달렸고 작살 밧줄에 선장의 목이 걸려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피쿼드호와 보트들도 《모비 딕》에게 들이받히고 세찬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 침몰합니다.

이 소설 화자(話者) 이스마엘의 예언처럼 《모비 딕》에 대한 복수를 맹세한 이교도 혼혈아, 천민, 식인종으로 구성된 20여 명의 선원들은 선장의 비극적인 광기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선장 보트의 마지막 노잡이를 한 이스마엘 혼자만이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만든 퀴퀘그의 관인 구명부표를 타고 하룻낮과 하룻밤을 망망대해를 떠다니다가 아들을 찾기 위하여 떠돌던 레이철호에 구조되어 살아남습니다.

에이허브 선장
에이허브 선장

간밤에는 그가 침대 위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뻣뻣한 편견도, 사랑이 일단 솟아나 그 편견을 구부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부드러워지는가. 지금 나는 퀴케그가 비록 침대 속이라 해도 내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그때 그는 가정의 평온한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모비딕》에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물보라 여관에서 고래잡이 동료 퀴퀘그를 처음 만났지만 만취한 기독교인보다는 정신이 맑은 식인종과 자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고 퀴퀘그와 소중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만난 사람이 아무리 싫어하는 짓을 하더라도, 아무리 견고한 편견도, 사랑 앞에서 누그러지고 사라지는 법입니다.

이소설에서 주목할 대상은 에이허브 선장의 캐릭터입니다. 우리가 집념을 갖고 그 무언가에 몰입을 하여 성취해 본 적이 있다면 이것은 아름다운 승리로 갈채를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집념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집념의 패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미쳐버린 광기다. 그 사나운 광기는 자신을 이해할 때에만 잠잠해진다. 나는 팔다리를 잘릴 거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리고 아아! 나는 다리를 잃었다. 이제 나는 내 다리를 자른 놈의 몸을 잘라버릴 거라고 예언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예언자이자 그 실행자가 된다. 

그것은 위대한 신들 이상이다. 위대한 신들도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 나와라. 나와서 에이허브의 인사를 받아라. 이리 와서 네가 내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 보라. 내 방향을 바꾼다고? 너는 내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너나 네 방향을 바꿔라. 그 점에서는 인간이 이겼다. 

선장은 자신이 택한 길이 죽음과 파멸의 구렁텅이인 줄 알고도 복수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운명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았고 승리냐 패배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 길이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그 길을 가면서 최선을 다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했었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에이허브 선장의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꺽이지 않은 마음.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 정도로 몰입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다만 에이허브 선장처럼 목숨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걸 정도로 덤벼들을 일은 아주 많지만 세상에 목숨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모비 딕》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모비 딕》 흰고래가 한 가지만을 상징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모비 딕》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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