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33] 내가 황도리의 당나무요…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회화나무 2그루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33] 내가 황도리의 당나무요…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회화나무 2그루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3.05.19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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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먼 길 오셨소. 길 찾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는지요?

여기가 바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황도붕기풍어제(黃島鵬旗豊漁祭)를 지내는 당집이라오.

그리고 나는 이곳의 당나무인 331년생 회화나무요.

아, 당나무가 뭐냐고? 민속에서는 신성한 나무에 신령이 머물러 있다고 믿는데 신이 머무는 나무를 신목(神木)이라 하고, 이를 수호신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는 나무를 당나무라고 한다오.

즉, 내가 황도리의 수호신이라는 말이오.

나를 아래, 위로 훑는 걸 보니 내 말이 뭔가 좀 미심쩍나 보구려. 지금이야 지지대에 의존하는, 상처 많은 고목이지만 한때 나도 태가 나던 시절이 있었소.

오래전 어느 날, 벼락을 맞아 지금은 볼썽사나운 몰골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곳 황도리 사람들에겐 귀한 나무라오.

내가 당나무가 된 건 아주 오래전의 일 때문이오.

이곳 황도리는 예부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어촌마을이었소. 바다 밭을 일구고 산다는 건 늘 위험과 함께한다는 말이지.

그날도 만선의 꿈을 안고 나갔던 이들이 안개 때문에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지, 뭐요.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는다는 건 참으로 막막한 일이라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어 바다를 표류하게 되는 거니까. 어쨌든 그때 내가 그들에게 빛을 비춰 주었소.

그동안 나는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지아비를 위해 기도하는 아낙을 수없이 보았고, 얼굴도 모르는 아비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숱하게 전해 들었거든.

그런 내가 어찌 표류하는 뱃사람들은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소?

어찌 됐든 그렇게 해서 길을 잃은 배는 무사히 뭍으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 뱃사람들은 이곳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오. 그게 바로 ‘황도붕기풍어제’요.

바다는 이곳 사람들에게 삶의 텃밭이지만 가장 두려운 대상이라오.

바다를 일궈 먹고 살기도 하지만 거친 파도와 바람은 바다 사람들을 집어삼키기도 하니까. 그래서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에 제물을 바치고 안녕을 빈다오.

황도붕기풍어제는 음력 1월 2일과 3일 이틀간 열리는데 이 마을 가장 큰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마을 주민 모두 무탈하고, 생업이 번성하게 해달라고 비는 제(祭)인 동시에 온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시간이라오.

요즘은 태안 군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커다란 축제가 되어 찾는 이가 더 많아졌소.

시간이 되시거든 제가 열릴 때 한 번 다녀가시게나. 내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이 가슴 깊이 품은 소원 하나쯤은 들어 드리리다.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2 회화나무 2그루 331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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