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준의 직설]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조하준의 직설]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미국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윤석열식 외교에 대한 비판
  • 조하준 기자
  • 승인 2023.05.2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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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맹목적인 친미 외교를 비판, 풍자한 본지 서라백 작가의 만평.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기사의 제목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73년 9월 11일에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자행된 군부의 만행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당시 라디오 방송의 멘션이다. 쿠데타와 관련된 언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앵커는 저 멘션만 계속해서 내보내야 했다고 한다.

좁고 긴 국토로 유명한 남미의 칠레는 굉장히 건조한 기후를 자랑한다. 그래서 포도가 잘 자라 와인의 주산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건조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릴 정도로 슬픈 날이었고 실제로 그 날 이후 민주화가 다시 이뤄지기까지 칠레 국민들은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50년 전 칠레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철학에는 오로지 선악 이분법적 구도 뿐이다. 그가 23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신의 외교 철학을 직접 밝힌 바 있었다. 그는 “외교 행위는 자유와 법치라는 보편적인 가치와 국제규범에 기반해야 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기반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연대해 우크라이나의 평화 구축과 경제 재건을 위해 가능한 지원을 최대한 펴나갈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어서 외교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는 절대 선이요, 그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는 절대 악이나 다름 없다.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는 해바라기처럼 맹종하다시피 하고 북한,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는 노골적으로 사갈시(蛇蝎視)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저러한 본인만의 고집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오직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만이 정의롭고 선한 나라이다.

하지만 외교는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다. 선악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나라를 말아먹은 장본인이 딱 400년 전에 있었다. 바로 조선의 인조다. 한족 국가인 명나라는 부모의 나라이고 문명의 나라이니 섬겨야 하고 만주족 국가인 청나라는 오랑캐 국가이니 배척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을 마냥 ‘정의로운 나라’라고 철석 같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정말 그렇게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나라’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50년 전 칠레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미국이 윤 대통령의 생각처럼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나라’였던 건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함이다.

1970년에 칠레 제3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의사 출신의 살바도르 아옌데. 그는 의사 출신의 사회주의 개혁가 대통령이었다.(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1970년에 칠레 제3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의사 출신의 살바도르 아옌데. 그는 의사 출신의 사회주의 개혁가 대통령이었다.(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1970년에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의사 출신의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는 사회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고 대선 때에도 사회주의 개혁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이룰 것임을 칠레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칠레 경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바로 광업이다. 칠레는 구리가 많이 나는 나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당시 칠레의 구리 광산은 대부분 미국 중심의 다국적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1970년 당시 칠레의 1인당 국민소득은 954달러로 중진국 수준이었지만 실제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이와는 영 딴판이었다. 우선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부의 대다수를 소수의 부유층이 점유하고 있고, 농토의 대부분도 독점하고 있었으며 중산층의 비율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인구의 대다수는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게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으며 빈곤층으로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것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이러한 극악한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이 소유한 탄광, 구리광산들과 대형 은행들의 자산을 강탈해 국유화했고, 빈곤층의 비율이 높아서 영양 부족으로 유아사망률이 심했던 칠레의 상황을 고려해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우유를 배급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다른 한편으로 다국적 기업과 미국, 부유층의 대토지 소유를 규제하고자 사유지의 4분의 1 내지 5분의 1을 국유화하는 토지개혁도 추진했다. 또한 컴퓨터를 계획경제에 활용한 사이버신 계획이라는 것도 수립되었다. 국회에서 우파세력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서도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런 사회주의 개혁의 성과로 칠레의 연평균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을 8% 이상까지 치솟게 했다.

또한 물가인상률은 37%에서 15% 이하로 떨어졌으며, 8.3%에 달했던 실업률도 4.8%로 낮아졌다. 산업 생산과 광산ㆍ농업 생산량도 모두 성장세를 보였다. 이렇게 칠레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수많은 이들이 전보다 나은 식품과 소비재를 향유하고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인민연합 집권 이후 처음 실시된 1971년 4월 지방선거에서 칠레 국민은 좌파 정부인 아옌데 정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보수 언론과 기독민주당 등 야권 후보에 대한 미국의 재정 지원에도 굴하지 않고 이뤄낸 전례 없는 성과였다. 칠레 정치에서 집권당이 임기 중 지지율이 상승한 것 또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아옌데 대통령은 여러 개혁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를 미국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미는 미국의 앞마당인 곳으로 온갖 이권이 잔뜩 걸린 곳이었다. 안 그래도 바로 밑에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 체면이 구겨진 와중에 칠레까지 돌아서게 되면 냉전시대에서 미국의 위상은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닉슨 정부는 철저하게 칠레를 고립시키고 말려죽이기 작전에 돌입했다. 즉, 일부러 칠레를 옥죄어서 아옌데 정권의 전복을 기도했던 것이다.

1970년 아옌데가 당선되었을 때 리처드 닉슨은 이 선거 결과를 존중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일 뿐이었다. 1970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을 겨냥한 흑색선전에 80만~100만 달러가량의 자금을 쏟아부었던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되자 CIA를 이용하여 칠레에서 군사 쿠데타를 준비했고 이들에게 부역하는 세력은 칠레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대형 슈퍼마켓과 증권거래소, TV 방송국과 철도, 공항 유류 저장 시설로 폭탄이 날아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테러 행위를 일삼는 세력에게 막대한 자금을 댄 것은 역시 닉슨 정부와 CIA였다. 이런 행위에는 당시 칠레에 진출해 있던 미국계 초국적 기업도 자금을 보탰고, 거짓 선동이 '적색 공포'를 불렀다. 심지어 눈을 가린 죄수들이 총살당하는 장면이나 소련의 탱크가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진주하는 모습 등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언론을 통해 전파됐다.

물론 이렇게 조작된 거짓 선동이 아옌데의 당선을 막지는 못했지만, 사회를 극단적인 분열 상태로 몰아가며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지게 만드는 목적에는 성공적이었다. 또 칠레 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리 수출을 통한 수입을 감소시키기 위해 비축해둔 구리를 대대적으로 풀어 구리 가격을 떨어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칠레의 군부를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부추긴 미국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 그의 별명은 '기소되지 못한 전범'이다.(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칠레의 군부를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부추긴 미국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 그의 별명은 '기소되지 못한 전범'이다.(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또한 미국은 칠레의 최대 신문사인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를 매수해 아옌데 정권에 부정적인 기사와 사설을 대대적으로 쏟아내게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칠레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생필품은 동나고 물가는 치솟았다. 그 결과 칠레의 경제는 아옌데가 당선된지 2년 만에 물가가 5배 이상 상승하면서 경제 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닉슨정부가 원했던 것과는 달리 아옌데 정권은 좌파진영의 내분과 보수진영, 미국의 노골적인 압박 속에서도 최소한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1973년 총선에서 대통령 불신임을 여유있게 막아낼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상원 50석 중 20석, 하원 150석 중 62석).

물론 표면적으로는 기독교민주당을 비롯한 우파세력들이 득표율 57%를 차지했던지라 1975년 대선을 노릴 수 있었지만 우파진영에서는 아옌데 정부 지지율 하락세를 보며 개헌선 확보를 목표로 잡았기 때문에 보수파는 충격을 받았고, 내분에 휩싸였다. 구리값 하락과 미국의 경제 제재로 물가상승률이 급속히 오르고 있는 중임에도 의석이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즉 아옌데의 지지율을 급격히 하락시키고자 했던 미국의 방해공작과 정책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여기서 미국이 꺼내든 카드는 바로 보수 군인을 앞세운 쿠데타였다. 당시 칠레 신임 육군참모총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아옌데 대통령과 달리 미국에 고분고분한 인물이었다. 미국은 이 점을 노려 피노체트를 사주해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기로 했다. 이 안을 밀어붙인 인물은 ‘기소되지 못한 전범’이라 불리는 미국의 악명 높은 외교관 헨리 키신저였다.

닉슨 대통령은 당시 CIA 국장 리처드 헬름스를 통해 칠레 쿠데타에 1,000만 달러를 지원했는데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 세력은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비용으로 각종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했고, 궁극적으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최후를 직감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마지막 연설을 남기고 대통령궁에서 끝까지 싸우다 결국 1973년 9월 11일에 향년 65세를 일기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73년 9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후 1990년까지 칠레의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그는 칠레 국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하며 폭압적으로 통치했던 악독한 인간 말종 독재자였다.(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6년 동안 칠레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온갖 폭압적인 독재정치를 자행하였다. 박정희 시기 대한민국에서 인민혁명당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는 이유로 조지 오글(George E. Ogle, 1929~2020) 신부와 함께 추방되었던 제임스 시노트(James P. Sinnott, 1929~2014) 신부가 한 말이 있다.

그는 피노체트 정권을 가리켜 “(국가)폭력 면에서 (박정희 시기 대한민국과 피노체트 시기 칠레) 두 나라를 비교하면 한국은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에서는 미국 신부로서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칠레는 말하는 것조차 위험한 일이었다.”고 했다. 한국의 유신독재 정권이 ‘유치원 수준’이라 평할 만큼 피노체트 정권의 악독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1990년에 권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칠레 국민들은 극도로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고 억압된 채로 암흑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 진영의 리더이자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나라’라고 철석 같이 믿는 미국이 반세기 전에 저지른 짓이 이러했다. 왜 그러했겠는가? 순전히 자국의 이익 때문이다. 그만큼 외교무대가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하며 추악한 것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울러 미국이 생각만큼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의 국민들 자유가 억압되는 것조차 묵인, 방조할 만큼 비열한 면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이런 나쁜 나라이니 이제부터 ‘반미’ 노선을 걸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미국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그런 사고를 버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생각만큼 그렇게 정의로운 나라도 아니고 아름다운 나라도 아니다. 외교는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선악의 시각으로 움직여선 안 된다.

그렇게 윤석열 대통령이 알아서 미국에 짝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미국이 감동을 받아서 호응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만만하게 보고 실컷 털어먹으려 할 뿐이다. 지금은 냉전시대도 아니고 다극화 시대이기에 마냥 일방적인 외교가 불가능하다. 다원적인 국제질서가 통용되는 시대에 왜 윤석열 대통령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시절 외교를 고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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