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3.05.26 09: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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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한 산림 올 이 없어
늘상 옷을 벗고 사네

부서진 집 바퀴벌레
밭두둑엔 팥꽃 남아

병이 많아 잠은 줄고
책쓰느라 근심잊네

오랜 비 괴롭잖네

장마 때였을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연일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유배지 강진에서 홀로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한 줄의 시로 표현합니다. 

세상에서 잊혀진 그를 누가 찾아줄 리 없고, 그렇다 보니 자연히 의관을 차려입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비 새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것은 바퀴벌레이고 그래도 고맙게 팥꽃이 피어있고 몸은 병들어가고 이런저런 근심 잊으려고 책 짓는데 몰두합니다

유배지에 오랫동안 가 있는 다산은 여느 아버지와 같습니다. 몰락해가는 집안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자식 학연(學淵) 학유(學遊) 두 아들때문에 조바심 내는 아버지입니다. 박석무 님이 다산의 편지를 편집해서 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자식에 대한 마음을 구구절절 표현합니다.

[사진제공: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사진제공: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우리는 폐족이다.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느냐? 폐족이라 벼슬 못하지만 성인이야 못되겠냐? 문장가가 못되겠냐? 폐족으로 잘 처신하는 것은 독서밖에 없다. 폐족이라 과거 공부 안 하고 학문 다운 학문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사람은 인간성에 바탕을 둘 때 비로소 목표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이일을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지 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우러날 때 갈 길의 방향이 정해진다. 이 동생이 저렇게 잘하니 나도 잘 해야지하는 생각을 지닐 때 오로지 정진할 수 있다”

그는 책을 읽는 순서도 말합니다. 처음에는 경서(經書)를 읽어 자기를 수양하고 다음 이를 바탕으로 치인(治人) 또는 안인(安人)에 해당하는 역사와 국방, 정치에 관한 것들로 외연을 확장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자식에게 권하는 일상생활을 이렇게 적어 보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서재에 3~4천 권의 책을 서가에 진열하여 경사를 연구하고, 일 년동안 양식 걱정 안 하면서 과일나무와 채마·화훼·약초들을 무성하게 심어 잘 어울리게 하고, 마루나 방에는 거문고 하나와 주안상 차려있어서 마침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 닭 한 마리에 생선회 안주 삼아 탁주 한 사발에 풋나물로 즐겁게 먹으며 고금의 일을 논의하고 흥겹게 산다면 비록 폐족이라도 안목있는 사람들은 부러워할 거다.”

다산의 유배가 한참이 되어서 조정에서도 공격이 무디게 되었을 때 유배에 앞장선 조정 관료들에게 해배(解配)를 간청하는 것이 어떠냐는 큰아들의 편지에 그가 생각하는 삶의 기준을 말합니다.

[사진제공: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사진제공: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 해를 입는 경우이고, 세번 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오,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에서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 번째 등급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하다.” 
다산은 날카로운 칼로 내려치듯이 아들 제의를 거절합니다.

다산은 정조의 사랑을 훔뻑 받고 벼슬살이한 자기 행동에 대한 회한을 떨어 놓습니다.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임금의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 다산은 정말 인생을 잘 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인생에서 비참할 정도로 아픔이나 좌절이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인생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열정을 바치며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다산은 두 아들에게 이렇게 다독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난을 당했다 하여 청운(靑雲)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서도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늘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다산의 한마디는 국회의원 선거에 낙방하여 아버지 무덤에 찾아간 아들인 나에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려주는 걱정 어린 위로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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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원 2023-05-26 16:07:05
늘 임영호는 존재한다 !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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