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생명존중과 풍수지리 결합…"독특한 문화유산"
[특별기획] 생명존중과 풍수지리 결합…"독특한 문화유산"
굿모닝충청 창간 11주년: "더 나은 내일 향한 동행"
[충남의 태실 문화, 세계유산 꿈꾼다] ① 조선의 태실 문화가 주목받는 이유
  • 김갑수 기자
  • 승인 2023.06.04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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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대표 인터넷신문 굿모닝충청은 오는 7월 1일 창간 11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충남의 태실 문화, 세계유산 꿈꾼다'를 준비했습니다. 충남을 비롯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태실을 점검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독자 및 충청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우리 민족에게 있어 태(胎)는 남다른 가치를 지닌다.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성주군 홈페이지: 세종대왕자 태실/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우리 민족에게 있어 태(胎)는 남다른 가치를 지닌다.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성주군 홈페이지: 세종대왕자 태실/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우리 민족에게 있어 태(胎)는 남다른 가치를 지닌다.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가족 제도’가 유지됐던 시기만 해도 장남 또는 아들의 태를 명산에 묻는 일은 후손들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중요한 의식행사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왕가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잦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 국운(國運)을 지키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이루고자 했던 의지와 염원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유적은 충남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굿모닝충청>이 태실 문화를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선 태실(胎室)이란 왕실에서 왕자·녀가 태어났을 때 뱃속에서 함께 배출된 탯줄을 항아리에 담아 이를 주관하는 기관(태실도감)에서 길지(吉地)로 선정된 곳에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거쳐 석물을 갖춰 봉안한 곳을 말한다.

태실의 종류는 왕자·녀가 태어났을 때 최초로 조성하는 아기 태실과 그 주인공이 왕으로 즉위한 뒤 석물을 갖추어 만든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또 형태로는 2기 이상의 모둠 태실과 개별 태실로 구분된다.

주로 서울‧경기 일부와 함께 ‘하삼도’인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에 조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조선 왕실의 태실에 대해 “동아시아와 한국의 생명존중 사상에서 나온 장태문화를 풍수지리와 결합, 생명력이 부여된 태를 좋은 땅에 묻음으로써 태 주인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독특한 문화유산”(최재헌 건국대 세계유산과 교수)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선 왕실의 태실에 대해 “동아시아와 한국의 생명존중 사상에서 나온 장태문화를 풍수지리와 결합, 생명력이 부여된 태를 좋은 땅에 묻음으로써 태 주인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독특한 문화유산”(최재헌 건국대 세계유산과 교수)으로 평가하고 있다. (성주군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조선 왕실의 태실에 대해 “동아시아와 한국의 생명존중 사상에서 나온 장태문화를 풍수지리와 결합, 생명력이 부여된 태를 좋은 땅에 묻음으로써 태 주인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독특한 문화유산”(최재헌 건국대 세계유산과 교수)으로 평가하고 있다. (성주군 홈페이지)

여기서 ‘장태(藏胎)’란 여성의 출산 후에 배출되는 태(태반과 탯줄을 총칭함)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땅에 묻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일원에는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다. 1430년(조선 세종 20년)에서 1442년(조선 세종 23년) 사이 조성됐다.

지난 2003년 3월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곳에는 진양대군(세조)과 안평대군, 임영대군, 금성대군 등 등 총 19기의 태실이 군집해 있다.

이곳은 태실 조성 방식의 변화와 확대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4기는 조성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왕자들 태실은 일부 파손됐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주목사 유지례가 태산의 나무를 벌목한 것에 대해 죄를 물으라”는 권총의 상소(세종 30년 4월 9일)와 태봉 밑의 민가를 철거하지 말도록 상언(문종 1년 2월 18일)한 박연 등 세종대왕자 태실 관련 총 17건의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성주군은 이곳에 생명문화공원과 태실문화관을 조성해 놓은 상태다. 특히 태실문화관을 통해 조선 왕실의 출산 의례와 태실 조성 등 관련 콘텐츠를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치욕스러운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은 일본 황실에 부속돼 이왕가(李王家)가 됐고, 조선총독부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행정관청을 둬 세입세출 및 의전을 담당케 했는데 1928년쯤부터 전국에 흩어진 태실을 서삼릉(현재 54기)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은 일본 황실에 부속돼 이왕가(李王家)가 됐고, 조선총독부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행정관청을 둬 세입세출 및 의전을 담당케 했는데 1928년쯤부터 전국에 흩어진 태실을 서삼릉(현재 54기)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은 일본 황실에 부속돼 이왕가(李王家)가 됐고, 조선총독부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행정관청을 둬 세입세출 및 의전을 담당케 했는데 1928년쯤부터 전국에 흩어진 태실을 서삼릉(현재 54기)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서울신문> 2019년 2월 20일 자 “국운 짓누른 일제, 조선 왕실 태실 부장품 빼돌리고 집단 이장했다” 기사를 보면 그 일면을 알 수 있다. 

“조선 왕가의 태실 중 54기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이후 서삼릉 경내로 옮겨 집단화됐다. 태조 등 역대 왕의 태실이 22기, 왕자·대군·왕녀·왕비의 태실이 32기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던 태조의 태실을 비롯해 서삼릉역으로 옮겨온 태항아리 등은 시멘트 원통 속에 자갈을 깔고 묻었다. 바깥 가장자리에는 일제를 의미는 ‘일’(日)자형 시멘트 담장을 쌓고 일본식 철 대문으로 걸어 잠갔다. 효율적인 관리와 도굴 방지를 구실로 한곳에 모아놨으나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고 태항아리와 함께 묻었던 부장품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이 보도에서 이은홍 종묘제례보존회 전례이사는 “일본인들이 조선국왕 태실을 훼손한 것은 조선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서였다”고 했고, 고고학 박사인 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 소장은 “죽음을 의미하는 서삼릉에 삶과 미래를 의미하는 태실을 집장한 것은 조선의 국운을 말살하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충남도를 비롯한 3개 광역자치단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충남지역 곳곳에 분포된 태실 유적의 우수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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