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한사군의 이름 1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한사군의 이름 1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39-한사군의 이름 1’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6.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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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흥서국에서 출판한 <사기>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기』를 읽다 보니, 또 한 번 문학도의 상상력이 빠작! 하고 불꽃을 튀깁니다. ‘진번’ 문제입니다. 『사기』 조선 열전 본문을 보면, 일찍이 연나라가 진번 조선을 공격하여 연나라에 귀속시켰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진번’은 한사군의 한 군인 그 진번이 아닙니다. 한사군은 이 말이 나온 한참 뒤에 설치되기 때문입니다. 한사군의 ‘진번’이라는 이름도 이 진번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낙랑군이 ‘박달(평양)’의 몽골어 표기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그곳에서 불리던 이름을 ‘군’에다가 붙여서 재활용한 것이죠.

따라서 연나라가 진번을 공격하여 귀속시켰는데, 한나라에서 설치한 진번은 연나라의 그 진번이 있던 그 지역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나라 때 공격받은 진번 사람들은 거기에 그대로 있었ᅌᅳᆯ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공격받아서 연나라에 귀속되었지만, 연나라의 통치를 거부한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거기서 다시 ‘진번’이라는 이름을 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번’이라는 말을 기록할 때는 연나라의 진번과 본래의 진번이 나뉘게 되죠. 아마도 한나라는 연나라에 귀속된 진번을 ‘군’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자리를 옮긴 진번 사람들은 진번이라는 말을 쓰다가 나중에는 다른 이름으로 바꿨을 것입니다.

이런 위치 이동은 북부여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주몽은 북부여 출신인데, 원래 부여에 살던 아란불의 꿈에 신이 나타나서 동쪽으로 옮겨가라고 했고, 그대로 옮겨간 나라가 동부여입니다. 부여가 꿈에 나타난 신을 매개로 하여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지휘부가 동쪽으로 옮겨가려고 하자, 그에 반발하여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생긴 것이고, 그것이 북부여이며, 주몽은 이 북부여에서 나와서 따로 ‘졸본부여’를 세웁니다. 그것이 고구려죠. 제가 보기에는, 이 ‘진번’이 부여의 이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나라나 한나라와 맞닿은 동이족 조선의 구성원은 예맥족이니 말이죠. 예맥족은 진번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 ‘진번’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상상력이 불꽃을 튀깁니다. 후대의 역사서에서는 이 대목을 표기할 때 반드시 ‘예맥 조선’이라고 나옵니다. 『사기』에 나오는 진번이 후대에서는 ‘예맥’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진번이 예맥이라는 뜻입니다. 예맥이라는 말은 뒤에서도 계속 쓰이는데, 진번은 더 이상 쓰이지 않습니다. 연나라에 진번을 빼앗긴 예맥족이 장소를 이동하면서 그 뒤로 다른 이름을 썼을 거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습니다.

흉노 열전에서 흉노와 동호 사이에는 1,000여 리 빈 땅이 있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흉노의 동쪽에는 동호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흉노는 예맥과도 접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흉노는 동쪽과 동남쪽으로 두 부족과 닿아있었는데, 동호와 싸우고 예맥과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동호는 흉노의 바로 옆 동쪽이었지만, 예맥은 좀 더 남쪽이면서 중국 접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흉노의 동쪽 땅에 동호가 있고, 동호와 중국 사이에 예맥이 있었던 겁니다. 흉노는 동호를 쳤으나 예맥을 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흉노의 적은 중국인데, 예맥도 중국과 국경을 맞대어 중국과 싸우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흉노로서는 적의 적이기에 예맥이 우리 편인 셈입니다.

그런데 진번이라는 이름은, 『사기』와 한사군 이후에 역사에서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한사군에 붙은 이름이면 꽤나 이름이 났을 텐데, 이상합니다. 게다가 그 지역 이름이거나 그 지역을 지배한 부족 이름이었을 것 같은데,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이 ‘진번’은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었으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진번’의 번(番)은 지킴이 또는 방패막이라는 뜻입니다. ‘진번’이란 ‘진’이라는 이름을 지닌 호위병의 뜻입니다. 누굴 호위한다는 뜻일까요? 설마 중국을 호위하진 않았을 겁니다. 『사기』에서 연나라의 공격을 받은 대상이라고 적었는데, 중국의 번국일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조선의 번국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조선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얘기했을까요? 조선을 닮았는데, 완전히 조선에 포함되지도 않는 아주 특이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째서 그럴까요? 조선에 예속되기는 했지만, 조선과는 따로 움직일 만큼 독자성이 있는 세력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 관계가 기존의 역사학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알딸딸하겠지만, 지금까지 저의 글을 성실하게 읽어온 독자라면 탁! 하고 무릎을 치실 겁니다. 조선이 복판 기자라면, 진번은 ‘서기자’ 아니겠어요? 조선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느슨한 종속관계 때문에 전쟁을 할 때는 사실상 독자 세력으로 혼자서 움직이는 존재죠. 이런 존재가 누가 있을까요?

‘진’은 소리를 적은 말일 겁니다. 그러면 이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정치 세력이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진, 신, 손’쯤으로 소리 나는 어떤 세력이라? 저는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소노(순노)’입니다. 순노(順奴, jïuəno)는 몽골어에 ‘jegün’이 있는데, 이게 ‘왼쪽, 동쪽’을 뜻하는 ‘jün’이고, 만주어로는 ‘왼쪽’을 뜻하는 ‘jun’이 됩니다. ‘진(眞)’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주몽부터 왕을 배출한 것은 계루부이고, 그 전에는 소노부에서 왕이 나왔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나중에 고구려라고 불리는 이 겨레는 그 전부터 국가의 노릇을 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계루부가 왕을 배출한 뒤에도 왕실의 제사를 그대로 이어서 지낸다고 한 것입니다. 그 민족은 예맥족이고, 중국의 동북방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중국 항쟁을 해오던 세력입니다. 따라서 문학도의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보면 진번은, 고구려가 되기 이전의 소노부 세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이 서쪽에서 우기자의 노릇을 할 때 이름이 ‘진번’이었던 것입니다. ‘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서쪽 조선으로서 중국과 싸울 때 복판 조선의 방패막이 노릇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겁니다. 아마도 고조선의 정치체제에서 이런 구도가 익숙했기에, 위만조선이 접근하여 방패막이 노릇을 하겠다고 할 때 기자조선의 준 왕은 얼른 그러라고 허락했을 것입니다.

고조선의 슬하에 있던 수많은 민족이 각자도생하게 된 것은, 난하나 대릉하 언저리에 있던 평양이 한나라 군대에 점령당하면서 갑자기 일어난 변화일 것입니다. 이후, 동쪽 지역에는 우두머리가 없어지고, 한사군만 형식으로 남아서 통치하는 듯하다가, 각자도생하여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겨레들이 나라를 만들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삼국시대의 초기 상황입니다. 

난하 대릉하 요녕에서 흩어진 부족들은 저절로 더 먼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곳은 바로 만주 지역입니다. 대동강에 평양이 있게 된 것은, 우거 때문이 아니라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 때문입니다. 준이 남쪽으로 도망쳐서 삼한을 세웠고, 그때 마한의 도읍으로 대동강을 정하고 거기 이름을, 그들이 부르던 전통에 따라 ‘평양(박달)’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이 이동과 변화의 시기가 불과 100년 안팎입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요녕에서 평양으로 이름이 옮겨오다 보니, 그 후의 역사가들은 평양을 요녕이 아니라 지금의 평양으로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한서』를 지은 반고나, 『후한서』를 지은 범엽은 이 짧은 기간 이후에 태어나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마천의 살아생전 기록보다는 자신들이 마주친 현실의 상황을 더욱 믿게 되었을 것이고, 그대로 역사를 기록했을 것이며, 그 와중에 평양은 대동강의 그곳으로 확정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 와중에 가장 고단한 행군을 한 것은 예맥족입니다. 원래 황하의 동쪽과 중국의 동북부 만리장성 밖에서 흩어져 살다가 뜻밖에 중국의 외연 확장으로 흉노와 함께 가장 먼저 공격을 받는 민족이 되었고,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면서 끝없이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송화강까지 밀려와서 더는 갈 곳이 없자 스스로 일어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고구려가 일어서기 전의 과정을 이끈 세력이 소노(순노)이고, 이것이 그대로 ‘진(眞)’이며, 조선 쪽의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자처한 상황이기에 ‘번(지킴이)’이 붙어서 ‘진번’이 된 것입니다. 주몽이라는 전대미문의 영웅이 출현하고, 그의 지도력으로 소노부의 진번이 환골탈태하여 고구려가 됩니다.

이것이 문학도가 내린 결론이니 역사학도들께서는 마음껏 비웃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비웃은 뒤에 ‘진번’에 관해 저보다 더 정확한 사실을 밝혀주십시오. 저의 이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을 꾸짖을 당당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주십시오. 그러지 못하다면 여러분은 저를 비웃을 자격이 없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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