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춘추] 나를 울렸던 제자들
[교단춘추] 나를 울렸던 제자들
  • 박계순 교장
  • 승인 2015.06.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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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계순 교장 (대전문화여자중학교)

[굿모닝충청 박계순 대전문화여자중학교 교장] 교직에 들어온 이후 학생들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며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갖는 교사로 성장시킨 커다란 계기는 유성농고(현 유성생명과고) 학생들을 만나면서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울려버린 유성농고 밴드부 제자들. 당시는 고등학교 입시가 있어서 3학년을 맡았던 음악교사들이 주당 시수가 적은 탓에 거의가 목에 무리가 왔고 나도 성대 결절로 중학교에서 보충수업까지 하기엔 너무나 힘이 들어 고등학교 전출을 희망했다.

그런데 더 힘이 들것 같은 유성농고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유성농고에 밴드부까지 지도해야하는 상황을 아는 음악교사들은 많은 걱정을 했다. 나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관악기에 대해서 아는 것은 관현악법 시간에 배운 정도이고 특히 관악기로만 구성된 브라스밴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유성농고의 전임 음악교사들은 관악기를 전공하시거나 군악대를 거치신 남자 선생님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성악을 전공한 여교사가 왔으니 매우 난감해하시면서도 밴드부 없어도 좋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위로해 주시었다.

그러나 있던 밴드부를 없앨 수도 없고, 밴드부는 학교에서 제일 지도하기 힘든 친구들만 모인다는 소문과는 다르게 하나같이 공손하고 악기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며 내가 악기를 잘 모른다고 하니까 더 똘똘 뭉치고 오히려 악기에 대하여 학생들이 나를 가르치고 나는 배우면서 밴드부를 운영해 나갔다.

지금도 잊지 못할 기억 하나는 2월달에 겨울방학을 끝나고 출근해보니 8월에 정년이신 성선재교장선생님께서 갑자기 2월말로 퇴임을 하신다는 소식에 정년 퇴임에 걸맞는 음악을 준비해야 할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2주만에 밴드부 말고도 갑자기 합창부를 만들어 합창곡 “선구자”와 몇 곡을 준비하고 각자 집에 있는 한복(여학생)과 양복(남학생)을 준비하게 하여 퇴임식을 치루었다.

퇴임식후 교장선생님과 그 가족분들만이 아니라 학교선생님들께서도 “아 음악이 이렇게 좋구나 행사의 꽃이네” 하며 밴드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자발적으로 열흘 정도 매일 연습하고 한복과 양복을 입었던 학생들에 대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밴드부를 운영하고 일년쯤 지나자 밴드부에 모인 학생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인성이 좋은 학생들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등학교를 못 다닐 줄 알았는데 밴드부에 들어와서 학교를 잘 다닌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셨던 어머님들의 응원에 그동안 교내행사 정도로만 만족하던 밴드부들이 음악경연대회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 성취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사실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당시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 밴드부의 실력들이 전국적으로 최상위권이었다. 대전고 보문고, 대전상고(현 우송고) 동아공고(현 동아마이스터고)는 전국에서 유명한 팀들이었다.

그래서 밴드부 학생들하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기존에 있었던 밴드부의 장점을 살리되 고쳐야 할 부분 다시 말하면 담배 피우지 않기, 수업시간 꼭 들어가기, 후배들 구타하지 않기, 욕설하지 않기 등을 실천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다른 학교에 비하면 아주 미비하지만 그나마 악기 구색이 갖추어지고 이렇게 새 악기가 들어오면서 우리 학생들은 더 신명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고 고마운 것은 그만 연습을 끝내려 해도 학생들이 “한번만 더해요. 한번만 더해요 이번에 진짜 잘 할 수 있어요” 하면서 계속 연습을 했다. 그런데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한때 교복이 자율화되었다가 대전시내 다른 학교는 모두다 교복 착용을 하였는데 유성농고만이 교복이 없었고 자유복이었다.

나는 우리 밴드부원들에게 경연대회날 시각적인 면도 중요하니까 아래는 검정이나 감색을 입고 위에는 흰색으로만 통일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예선대회 날! 우리학생들이 결국 나를 울려 버렸다.
경연대회 날 음악실에 들어간 순간 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깜작 놀랐다. 아래에는 진한 감색 바지와 치마 그리고 위에는 흰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자기들이 알바를 하여서 구입한 단복이었는데 내가 걱정할까봐 대회 날까지 비밀로 했던 것이다. 알바를 못한 친구들은 서로 서로 십시일반 옷값을 공동으로 대주어 단복을 마련했던 것이다. 마지막 연습 지휘를 하는데 눈물을 감추느라 정말 힘이 들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경연대회장에 시간을 착각하여 시작 전에 겨우 시간을 맞추어 도착했다. 나는 소리의 울림 때문에 불안하여 리허설을 한번만 해보자고 부탁하고 모두 다 숨죽이고 기다리는데 너무나 미안해 악보 없이 소리의 울림만 들어보자고 하니까 “선생님 우리 다 외워요!” 하는 게 아닌가? 악보도 보지 않고 얼마나 자신있게 연주하는지 그때 밴드부원들의 빛나던 눈! 자신있던 표정! 나는 나의 눈과 귀를 의심하면서 또 눈물이 나왔다. 

우리는 예선 본선에서 금상을 수상하였고 다음해에도 연속하여 계속 금상을 수상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전시교육청 둔산 이전 기념 축하식에 초중고 무용과 음악을 합하여 5학교 팀만 참여하였는데 그때에도 유성농고 학생들이 출전하였고 그 후 웬만한 행사는 우리학생들이 거의 다 도맡아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피곤할 법도한데 자존감과 성취감에 연주하는 것을 매우 행복해 했다.
하루는 경연대회 우수팀 연주가 끝난 후에 대학 선배 음악선생님이 “자기가 중학교에서 가르치던 학생이 3년 동안 음악 실기시험도 안보고 말도 못하여 자기는 그 아이가 바보인줄 알았는데 그 학생이 유성농고밴드부에서 너무나 자신있고 행복하게 악기 연주를 하는 모습에 너무나 놀랍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연주 내내 혼돈이었고 자신이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며 열심히 지도한다고 자부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여야겠다”고 말씀했다. 그 선배의 말은 그 후에 나도 학생들을 대하는 큰 지침이 되었고 편견없이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인정하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헌신적으로 매우 열심히 하였다고 자부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어루만져주질 못했던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로 돌아만 갈수 있다면 나는 정말 그 학생들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악기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밴드부의 지존이라고 불러주며 유성농고 밴드부들을 다시 한 번 지도하여 금상을 찾아오라고 하던 우리 제자들을 다 불러 모아 그 옛날 그 추억들을 다시 펼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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