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위략』의 진개 2,000리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위략』의 진개 2,000리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46-『위략』의 진개 2,000리’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7.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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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의 '조선시대 표준자'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본론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일인데, 하도 논란이 많아서 저도 한 마디 던져봅니다. 거리 문제입니다. 『후한서』에 인용된 글 중에 『위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고대사에 중요한 언급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 진개라는 연나라 장수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입니다. 

연나라에는 진개라는 현명한 장군이 있었다. 호(胡)에 볼모가 되었는데, 호가 그를 매우 믿었다. (연으로) 돌아오고 동호를 격파해, (동호가) 1,000여 리나 물러났다. 형가와 함께 진나라의 왕을 암살하러 떠났던 진무양이 바로 진개의 손자였다. 연나라는 또한 장성을 조양에서 양평까지 쌓았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을 두어 호를 막았다. 이 무렵 의관과 속대를 할 줄 아는 곳이 전국(시대)에 일곱이었는데, 그중 셋이 흉노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그(조선왕)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나라는 이에 장수 진개를 보내어 그(고조선의) 서방을 공격하여 땅 2,000여 리를 취하고, 만번한에 이르러 이를 경계로 삼았다. 이에 조선이 약해졌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진개가 과연 2,000리를 갔다느니, 2,000리는 셈법의 오류라느니, 하며 말이죠. 이것은 거리를 셈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사실 이 거리를 셈하려면 골치 아픕니다. 제가 조선시대 각궁의 길이를 알아보려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니 도량형에 관한 연구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시중에 나오는 대옥편 부록에 보면 목수들이 쓰는 영조척의 경우 중국은 31.1cm이고, 일본은 30.3cm입니다. 자는 영조척만 있는 게 아니라 포목점에서 쓰는 포백척, 논밭의 길이를 재는 주척(주척도 2가지), 왕실의 의례에 쓰는 조례기척처럼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게 영조척이죠. 그런데 중국의 영조척과 일본의 영조척 길이는 앞선 사전에 버젓이 있는데, 조선의 영조척 길이는 알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습관처럼 1자를 30.3cm로 쓰죠. 즉 일본 자를 쓰는 겁니다. 그러면 조선과 일본이 같은 자를 썼다는 말인가요? 그럴 리가요!

조선은 조선만의 자가 있었습니다. 중국과도 달랐습니다. 당연히 왜와도 달랐죠. 세종 때 황해도 해주에서 나는 기장의 열매 중 중간치 크기 1개를 1푼으로 하고 그것을 10개 쌓아 올려 1촌 길이로 정한 조선만의 자를 만들어 썼습니다. 기장을 100개 쌓아 올려 음률의 기준이 되는 황종척 1자의 길이로 정합니다. 그렇게 해서 조례기척을 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조선의 모든 제도(五禮)를 정비한 것입니다. 이게 고종 때 나라가 망하면서 도량형 제도도 일본의 것으로 적용되죠.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30.3cm입니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우리 안의 식민 잔재죠. 우리는 도량형에서 여전히 일본 자를 쓰고 있습니다. 

해방 전에 활터에서 활을 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녁 거리가 150m였답니다. 이것을 환산하여 영조척을 알아보면 대체로 30.8cm가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경복궁을 뜯어고치다가 마루 밑에서 영조 때 만든 구리자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문화재청에서 정밀 조사해보니, 영조척 1자가 30.8cm 정도 나왔습니다. 그게 2000년의 일입니다. 그 자로 과녁 거리를 정확히 따져보니, 149.466cm가 나왔습니다.(『온깍지 활 공부』) 해방 전 과녁 거리를 150m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던 활터 노인들의 기억이 아주 정확했음을 알 수 있죠. 현재의 과녁 거리는 145미터입니다. 조선 자 30.8cm를 적용한 게 아니라 일본자 30.3cm를 적용하여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 국궁에서는 일본 자로 환산한 거리에 과녁을 두고 활쏘기를 하는 중입니다. ‘전통’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진개가 진격했다는 2,000리를 정확히 셈하려면 이런 식으로 중국의 도량형 역사를 샅샅이 뒤져서 과연 그 기록을 한 때와 실제 사건이 벌어진 때의 자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한 학문 분야 전체가 들썩거려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자를 알아낸다고 해도, 과연 그게 제대로 적용됐을까 하는 사실 여부를 또 가려야죠. 산 넘어 산이라는 뜻입니다.

문학도인 저로서는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죠. 문학에서는 ‘태도’를 중시하는데, 그런 방법으로도 대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진개 2,000리를 말한 사람들의 태도를 판단해보면 그들이 그 거리를 통해서 말하고자 한 의도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진개 2,000리는 중국인들이 한 말이니, 그 당시 중국인들이 거리를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인들이 말하는 거리의 개념을 『관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자』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한 장의 표범 가죽(豹皮)이라도 천금의 값으로 계산해준다면, 팔천 리 떨어진 발조선(發朝鮮)도 조관(朝觀)을 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자』 경중갑(輕重甲) 편.

이 말은 산동 반도에 있던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에서 환공과 관중이 나눈 대화입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임치로부터 8,000리 거리에 조선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옛날 거리를 가늠할 때 우리에게 익숙한 한반도 길이 삼천리와 비교해보면 편합니다. 8,000리면 삼천리의 약 2.6배입니다. 임치로부터 삼천리의 2.6배 거리를 동북쪽으로 대충 가늠해보면, 흑룡강성을 지나 러시아 오호츠크해 옆 하바롭스크까지 갑니다. 조선이 거기에 있었다는 겁니다. 서쪽으로 이 거리를 가늠하면 중국을 관통하여 신장위구르 접경까지 갑니다. 남쪽으로 가면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하와이가 코앞인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입니다. 그러니 환공과 관자가 말한 8,000리는 실제 거리라기보다는 중국인들이 누리는 마음의 거리죠. 그렇다면 8,000리의 실제 거리는 얼마일까요?

당시 조선의 중심은 난하에서 대릉하에 걸쳐 있었습니다. 임치에서 가장 먼 대릉하까지 손가락으로 뼘어보면 그 길이는 한반도의 평양과 부산을 잰 길이와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관자』에서 말한 8,000리는 평양과 부산 사이에 해당하는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등비로 셈해보면 중국인들이 말하는 8,000리란. 오늘날의 600~700km를 말합니다. 셈하기 편하게 800km쯤으로 잡겠습니다. 따라서 이를 기준으로 셈하면 진개가 공격한 조선 땅 2,000리는 200km를 말합니다. 『관자』의 거리를 조금 더 크게 쳐줄까요? 8,000리를 1,000km라고 한다면 2,000리는 300km쯤입니다. 뭐, 얼마나 더 봐 드릴까요? 아무리 후하게 쳐주어도, 진개는 갈석산 근처의 만리장성에서 동쪽으로 300km쯤 되는 곳까지 쳐들어간 겁니다.

구글 지도를 펴놓고서 그곳 언저리의 도시 이름을 보니, 차오양(朝陽) 시와 후루다오(葫蘆島, 錦西) 시가 보이네요. ‘조양’이라는 이름은 낯익네요. 조선(朝鮮)과 같은 말이죠. 옛날에 단군이 붙였음 직한 이름입니다. 진개가 거기까지 가서 그대로 눌러앉았을까요? 사방이 예맥족으로 에워싸인 그곳에서 계속 통치했을까요? 그건 어렵습니다. 아마도 조선의 코빼기를 납작하게 해주고 철수했을 겁니다.

교과서 학자들은 요동반도에 있던 진개가 2,000리를 쳐들어가는 바람에 고조선의 강역이 압록강과 대동강 유역으로 졸아들었다고 설명합니다. 요동반도에서 대동강까지가 2,000리라고 합니다. 이 거리 감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진개의 출발지가 요동반도였다면, 진개는 부산까지도 점령했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가늠 앞에서 우리의 청춘이 덧없이 흘러갑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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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준 2023-07-27 10:41:36
고대 사서에 나오는 거리는 직선거리가 아니라 노정을 따라가면서 잰 거리입니다. 그걸 잊으시면 안 돼요. 그리고 진개가 차지했다는 영토는 위략엔 2000리, 사기엔 1000리로 나옵니다. 그리고 진개는 열전도 없어요. 결국 이건 진개가 차지한 영토 면적을 뻥튀기했다는 뜻이죠. 그리고 진개가 조선을 공격해서 만번한까지 영토를 넓힌 후에 양평에서 조양까지 장성을 쌓는데 두 곳 모두 북경 북쪽 지역에 있는 지명들입니다. 본래 연나라는 산서성 동부, 하북성 서부에 있었고 이 때 북경까지 영토를 넓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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