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요수’고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요수’고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48-‘요수’고’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8.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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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당 요 음.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소학당의 요 음 해설.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요하는 패수를 따라서 동쪽으로 옮겨갑니다. 그러다가 현재의 자리에 뿌리내리죠. 그것이 요하입니다. 요하는 거기서 멈추었는데, 패수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가 대동강에 이릅니다. 역사학자들이 이렇게 강 이름을 옮겨도 강은 옮겨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자취를 말에 남기죠. 요하(遼河)라는 말의 뜻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하는 중국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정확히 동쪽으로 흘러가다가, 요동에 와서 기역 자로 꺾여 남쪽으로 흐릅니다. 이 기역자의 첫 획, 즉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시라무렌’이라고 합니다. 몽골어로 ‘시라’는 노랑이고, 무렌은 ‘물’입니다. 따라서 시라무렌을 중국인들은 황수(黃水)라고 적었습니다.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몽골어 ‘무렌’은 우리말 ‘물’과 뿌리가 같습니다. 같은 알타이 말붙이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황색은 땅이나 강물 빛깔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오방색에서 노랑은 중앙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황수 즉 시라무렌은 그럴 자격이 차고도 넘칩니다. 그곳에서 유목민족들이 일어나서 거대한 왕국을 끝없이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강물 줄기를 꺾인 지점을 기준으로 이름을 달리 붙였습니다. 가로로 흐르는 강 이름은 황수, 세로로 흘러 발해로 들어가는 강 이름은 요하. 같은 물줄기인데, 흐르는 방향 때문에 이름이 달라진 것입니다. 과연 달라졌을까요? 혹시 황수와 요하가 같은 말이 아닐까요? 어원을 공부하는 제 눈에는 똑같은 말로 보입니다.

‘遼’는 ‘멀 요[liau>lieu>liáo]’입니다. ‘멀’과 ‘물’은 발음이 거의 같습니다. 시라무렌(黃水)의 ‘시라’가 떨어져나간 모습과 같습니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시라’를 떼어 버리고 ‘무렌’만 남은 것입니다. 그것이 요하입니다. ‘무렌’의 어근 ‘물’의 소리를 ‘멀’이라고 듣고 그 뜻(멀다:遼)을 취하여 ‘요하’라고 적은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음입니다. ‘요[liau]’는 용을 뜻하는 몽골어 ‘luo’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노룡현을 말할 때 알아본 것처럼 만리장성의 시작점인 노룡현의 ‘노룡’은 ‘로+룡’의 짜임인데, ‘盧’의 현대어 발음이 [lú]여서 ‘노’와 ‘룡’은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단군과 기자 2’ 참조)

이상을 보면 강물 이름에 붙은 ‘遼’자는 여러 뜻이 겹겹이 쌓인 문제의 언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최춘태 박사는 갑골문을 설명하는 유튜브 강의에서 또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보십시오. 여기서 따로 다룰 겨를이 없습니다. 이 시라무렌 지역에서 일어난 나라는 여럿이지만, 그 중에 거란은 나라 이름을 아예 ‘요’ 나라라고 했습니다. 제 나라 이름을 지을 때 ‘멀다’는 뜻으로 붙일 리는 없습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붙이죠. 따라서 이 때의 요나라는 중국에서 먼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뜻일 것입니다.

‘요’나라를 소리로 본다면 시라무렌에서 일어난 나라를 뜻합니다. ‘무렌’의 소리와 비슷한 ‘물, 말, 멀’을 취한 것인데, 이때의 ‘물, 말’은 크다는 뜻입니다. ‘말갈’의 ‘말’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거란과 같은 뜻입니다. 거란은 서양 표기는 ‘키타이’인데, ‘크다’는 뜻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니 ‘크다’와 ‘말’은 같은 뜻입니다. 결국 ‘요’는 큰 나라라는 뜻이고 거란의 속뜻을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거란도 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시라무렌의 ‘무렌’은 물을 뜻하는 몽골어이지만, 어근 ‘물’은 여러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우리말 ‘미르’에서 보듯이 용을 뜻하기도 합니다. 물줄기를 용으로 표현하는 버릇은 알타이 제어에서 두루 나타납니다. 앞서 노룡현에서도 용의 이미지를 썼고, ‘노’도 용을 뜻하는 몽골어의 소리를 적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면 ‘노룡’과 ‘요’의 중국어 발음은 ‘낙랑(樂浪)’과도 비슷합니다. ‘낙랑’은 퉁구스어 ‘박달’을 몽골어로 적은 것이라고 앞서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만리장성의 노룡에서 낙랑 요하에 이르는 일련의 상관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하는 요동 지역을 기역 자로 휘감아 도는 강물입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유목민이 일어났고, 유목민들이 중국과 자웅을 겨루는 가장 중요한 근거지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심이 되는 어떤 이름이 붙어 쓰이다가 그 소리를 중국어 ‘요’로 적었고, 중국 측에서는 ‘멀다’라는 뜻으로 확정되어 변방의 물줄기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을 중심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의 말에는 ‘복판, 크다’를 뜻하는 말이 살아있고, 거기서 파생한 말들이 ‘말갈, 거란, 노룡, 낙랑’ 같은 것들입니다. 몽골어 ‘시라무렌’은 세상의 중심을 흐르는 물줄기를 뜻하고, 그 세상의 중심에서 여러 나라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요하는 고조선 시대는 물론 삼국 시대 내내 고구려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황하를 중심으로 문명을 펼쳤고, 그 한계 영역에 장성을 쌓아서 1만 리에 이르도록 구획을 그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제국을 자랑했죠. 만리장성 바깥의 중심은 어디일까요?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시리무렌, 황수(黃水)입니다. 만리장성 안쪽의 왕국은 황하를 중심으로 일어섰고, 만리장성 바깥의 왕국은 시라무렌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만리장성 안쪽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봐왔습니다.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 바깥의 또 다른 세상을 ‘오랑캐’ 세상으로 보고,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역사를 배우고 커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역사의 속살을 파고들어서 살피면 어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만리장성 바깥의 사람들은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시라무렌이라는 강물 이름이 그 증거입니다.

만리장성 안쪽의 문명은 은나라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전의 하나라는 전설상의 나라일 뿐, 실제 유물이 발굴되는 문명은 은허입니다. 그런데 만리장성 바깥쪽의 문명은 무려 15,000년 전부터 유물이 발굴됩니다. 홍산 문명 요하문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만리장성 안의 문명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왜곡된 시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만리장성 바깥의 문명이 중심이고, 그 문명이 만리장성 안쪽으로 흘러들어가서 중국의 문명을 일구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문명의 중심이 이동한 셈이죠.

이런 중심이동이 이상할 것 없습니다. 영원한 문명은 없습니다. 문명은 흥했다가 망했다가 되풀이되죠. 문제는 그런 문명의 어느 하나에 생각이 꽂혀 다른 문명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만리장성 바깥의 문명입니다. 유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언어의 뿌리, 즉 어원을 통해서 그 양상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어느 한쪽의 시각으로 볼 게 아니라,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겁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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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준 2023-08-10 11:53:11
습수는 북경 서북쪽을 흐르는 상건하라는 강입니다. 중국 고지도 우적도에 보면 상건하에 습수가 표기된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건하는 양하와 모여서 영정하가 됩니다. 이로 볼 때 산수는 양하, 열수는 영정하가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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