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중국과 조선의 경계로 계속해서 역사학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강 이름 중에 난하가 있습니다. 난하는 만리장성 바깥에서 만나는 가장 큰 강입니다. 만리장성을 북쪽 경계로 삼은 나라가 진나라인데,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각축을 벌이던 다른 세력에게 당연히 이 강의 중요성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방어하는 쪽에서는 적의 접근을 막을 조건(해자)이 필요하고, 평상시에는 들판에서 유목이나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다가 외적이 접근하면 그것이 그대로 방어의 중요한 수단이 되니, 강은 옛날 도읍에 꼭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큰 강에는 큰 도시가 발달했고, 사람과 물산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난하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고, 오히려 만리장성 바깥에서 활동하는 민족이나 국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경계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한대에 만리장성 바깥의 난하 유역에 자리 잡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볼 것도 없이 조선이죠. 그래서 기자도 이 만리장성을 나와서 조선의 영역으로 흘러들었고 1,000년 뒤의 위만도 만리장성을 나와서 이 지역 근처로 접근하여 둥지를 튼 것입니다. 그러니 난하는 만리장성 바깥에서 활동하는 모든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근거지 노릇을 하는 강입니다. 이런 강에 그들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은 한자로 기록된 이름만 있지만,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한자로 흡수되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난하(灤河)에 도대체 왜 잘 쓰이지도 않는 한자인 灤(새어 흐를 란) 자가 붙었을까요? 저만 궁금한가요? 灤은 물이 샌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항아리에 금이 가서 물이 슬금슬금 새어 흐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런 이상한 이름을 붙이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난하를 옛날에는 유수(濡水)라고 했답니다. 그러면 더욱 분명해지는 거죠. 濡는 ‘젖을 유’ 자입니다. 물이 새서 젖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이 말과 똑같은 뜻을 지닌 ‘물이 새다’를 뜻하는 灤 자를 쓴 것입니다. 유수는 조선에서, 난하는 중국에서 붙인 말이죠.
우리 속담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물은 밑으로 저절로 새어 어디론가 흐르죠. 이처럼 밑이 빠진 물건(無底物)에 붙이는 낱말이 있습니다. 퉁구스어로는 ‘fodoho’입니다. ‘fodoho’에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즉 동음이의어죠. 다른 뜻은 ‘버들’입니다. 이것‘버들’은 ‘박달’과 같은 뜻입니다. 박달을 평양(平壤)이라고 옮겼는데, 평양을 또 다른 한자표기로 류경(柳京)이라고 합니다. ‘박달’은 원래 ‘밝달’이었기에, 발음에 따라 한자로 ‘박달(平壤), 버들(柳京), 붉달(紅山, 赤峯)’이라고 다양하게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지역에 살던 퉁구스족들(단군조선의 지배층)이 자기네 말(퉁구스어)로 물줄기를 ‘fodoho’라고 했는데, 이것을 들은 중국측 기록자가 동음이의어 중에서 ‘박달수, 발수, 패수’라고 하지 않고, 하필 고약하게도 ‘밑 빠진 물건’이라는 또 다른 동음이의어의 뜻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이 ‘밑 빠진 물건처럼 물이 새는 물길’을 뜻하는 말 유수(濡水)로 번역한 것입니다. ‘유수’는 ‘패수’이고, ‘발수’입니다. 박달족이 사는 고을에 흐르는 물길을 뜻합니다.
그런데 단군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바뀝니다. 기원전 1,122년의 일이죠. 그러자 몽골어를 쓰는 기자조선에서는 같은 강을 달리 부릅니다. ‘fodoho’를 몽골어로는 ‘coqorahai’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뜻이 더욱 또렷해지죠. 퉁구스어를 쓰던 박달족들이 ‘발수, 패수(박달수)’라고 부르던 물줄기 이름을, 몽골어를 쓰는 기자족들은 ‘고코라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고코라’가 뭐겠습니까? ‘고구리, 고구려’입니다.
그리하여 고조선 땅의 한복판을 질러 흐르던 물줄기는 처음에 퉁구스어로 ‘fodoho’라고 불렸다가, 몽골어로 ‘coqorahai’라고 불리고, 이것이 한문으로 오역되어 ‘유수(濡水)’라고 적혔다가, 마침내 ‘난하(灤河)’라고 또 한 번 오역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입니다. ‘패수’라고 적혔던 이름은 말의 주인을 따라서 끝없이 이동하다가 대동강에 다다라서야 고단한 행군을 겨우 멈춥니다.
‘난하’의 어원은 ‘박달수’, ‘고구려하’이고, 원래 그 주인들의 말로는 ‘fodoho’와 ‘coqorahai’입니다. 이것을 조선에서는 ‘패수, 발수’라고 적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등식이 성립합니다.
灤河=濡水=fodoho(퉁구스어)=coqorahai(몽골어)=패수=발수=박달수=버들수
그런데 이 강에 어찌하여 이런 이상한 이름이 붙었을까요? 강의 특성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난하와 바다가 만나는 하류 지역은 거대한 뻘밭입니다.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넓은 퇴적층을 형성하면서 하류에 거대한 진흙을 쌓아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강물이 조금만 많이 흐르면 촉촉하게 젖은 풀밭이 뻘로 변하여 수레바퀴가 푹푹 빠지는 그런 지역입니다. 바로 이런 특징 때문에 ‘새어흐른다’나 ‘젖는다’는 뜻을 지닌 한자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곳에 거대한 콘크리트 교각을 세워 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1970~80년대에 중국에서 난하 상류에 댐을 몇 개 만들어 물을 조절하면서 하류의 그 질퍽질퍽한 땅이 마른 땅으로 변했고, 또 고속도로를 뚫어서 지금은 난(灤)이라는 한자의 표현이 무색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만리장성을 나와서 요동으로 가자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곤란한 지역이었습니다. 고구려를 친 수나라와 당나라의 군대가 끝없이 이어진 뻘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곳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은 이 지역에 살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름을 ‘fodoho(無底物)’라고 붙인 것입니다. 강물에 질퍽질퍽해진 하류의 퇴적층은 ‘밑이 빠진 물건(無底物)’, 물이 줄줄 새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