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올곧게 뻗은 소나무는 환경에 굴하지 않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꼽힌다.
대쪽 같은 선비정신의 표상이 곧게 자라난 소나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소나무는 휘어진 채 자란다.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 소나무 또한 예외는 아니다.

산자락 끝에 매달리듯 자라난 봉소리 소나무는 마치 쏟아질 듯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을 뿐 아니라 무게를 이기려는 듯 휘어져 자랐다.
나무의 수형은 종에 따른 특징도 있지만 때때로 생(生)의 기록이 된다.
어쩌다 보니 산자락에 뿌리를 내리게 된 나무는 시간이 갈수록 위태로웠을 것이다.
안간힘을 쓰며 뿌리로 땅을 붙잡고 있지만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가고 잎이 무성해질수록 제 몸 하나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겨울이면 눈이 퍼붓고, 여름이면 폭우에 태풍까지 더해졌을 테니 소나무가 버텨야 했던 삶을 절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소나무는 줄기를 이리저리 비틀며 그 세월이 고스란히 수형에 새겼다. 그래서인지 봉소리 소나무 앞에서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봉소리 소나무는 멀리서 보면 우산의 형상이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스듬히 쓴 우산 같다.

함께 우산을 받쳐 쓰고 걸어가는 이의 어깨가 젖지 않을까 염려해 우산을 비스듬히 씌워주는 것 같다고 할까?
길을 온전히 덮은 소나무 그늘은 무척이나 넓어서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제격이었다.
그리고 소나무 아래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 문득 정호승 시인의 시 <손에 대한 예의> 첫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올려다본 소나무에서 나는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할머니의 손을 보았다.
하루 종일 몸의 일부인 양 쥐고 있었던 호미 때문에 완전히 펴지지 않던 할머니의 손은 마디가 유난히 굵었다.

가죽밖에 남지 않았던 깡마른 손은 유독 혈관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제멋대로 휘고, 붉은 소나무의 가지가 딱 할머니의 손등 같았다.
입을 맞추고 싶은 그리운 손등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와 할머니는 참 많이 닮았다.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것도, 함께 걸어가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희생을 참아낸 것도, 그 존재의 의미를 찾아주는 이가 없으면 잊히는 것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 51-6 소나무 442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