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5월 28일 라이딩 첫날입니다. 우리는 800킬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10일 동안 하루 70~80킬로 라이딩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동틀 무렵이라 파란 하늘은 잿빛으로 섞여 있고 희끄무레하게 느껴집니다.


날씨에 대한 걱정이 앞에 보고 있는 존재를 잊게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잠이 오지 않기에 주변을 여기저기 가보았습니다. 아직 어두웠지만 소수민족 바스크족 주민들은 새벽시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공예품이나 농산물을 팔기 위함입니다.
한 가지 느낀 것은 여기도 역시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입니다. 외침에 대한 대비가 철저한 것 같습니다.



첫 페달을 밟았습니다. 철도에 애착이 많은 이 처장의 안내로 생장 역을 출발 전 먼저 보기로 하였습니다. 숙소에서 5분가량 내려가니 아주 작은 무인역이었습니다.
일본 영화 《철도원》에 나오는 홋카이도 무인(無人) 역처럼 열차가 도착할 때만 문을 개방하는 역입니다. 지금 한참 서울에서 전시중인 유명한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철길의 석양》이 떠오릅니다. 아마 생장역에 어스름이 덮치면 이처럼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진=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br>](/news/photo/202309/295642_328162_465.jpg)
첫날부터 70km를 계획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무리였습니다. 고난도 코스입니다. 고도 146m에서 1,440m를 계속 올라가는 코스입니다. 무려 15km 이상을 계속 위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이 길을 프랑스 길이라고 합니다. 나폴레옹 부대가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언뜻 보니 다들 겁이 잔뜩 난 표정입니다. 나는 임 주임과 유 주임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촌 동네 지날 때 어디냐고 물으면 촌부들은 대부분 바로 저기라고 말합니다. 역시 저도 조금만 가서 모퉁이만 돌면 고생 끝이라고 달랬습니다. 올라가면서 산맥 중턱에 있는 오리 손(Orisson) 산장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바게트와 커피, 우유 등 여러 가지 메뉴를 선택했지만 힘들어서인지 입맛은 없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풍광만큼은 고생 이상으로 환상적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제가 본 알프스 풍경을 능가합니다. 풍경의 힘은 인간에게 위협이 될 만한 힘을 보여 줄 때만 웅장합니다.
시인 에머슨이 말처럼 자연의 고귀한 직무는 신의 유령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산등성이 목초지에는 양들이 듬성듬성 풀을 뜯고 있었고, 말들도 잔뜩 경계를 하지만 나름대로 자연을 유유자적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여행은 머릿속에 그리는 것과
눈앞에 보이는 것 사이에 미묘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합니다.
멈칫 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받아 술술 풀려갑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살던 곳에서 갈망했지만 얻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풍경으로부터 무엇을 끌어내려면 좀 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요구들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바로 마음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매혹적인 풍광일지라도 인간의 감정이 자연을 즐기려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할 가장 좋은 장소도 여기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인생 수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돈키호테》에서 종자(從子) 산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게.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도록 노력하게.
이것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지식일세.
스스로 자네를 알게 되면
황소와 같아지고 싶었던 개구리처럼
몸을 부풀리는 일은 없을 거야.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형태로 방향을 안내합니다. 순례길에 무덤도 보이고 천막으로 된 간이 카페도 보입니다.

15km 이상을 올라가다가 이제 내려가는 길입니다. 싱글 라이딩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모든 것이 겁부터 납니다. 손목이 아플 정도로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순례객들은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 내려와서 옹기종기 햇볕 사이로 모여 맥주를 마시면서 해냈다는 안도의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순례길 내내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납니다. 인생살이처럼······

이 맥줏집에 숙소도 있습니다. ‘알베르게’(Albergue)라고 합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함께 쓰고 개인 침대를 할당받는 스타일입니다. 공적인 시설도 있고 개인이나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공립은 사립보다 2유로 정도 싼 편입니다.
우리 넷은 가급적 한방에 자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코를 심하게 고는 두 사람이 있기 때문에 피곤한 순례자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그중 코골이 한 사람입니다. 다른 두 명은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처럼, 예수의 부름을 받은 베드로처럼 함께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겼습니다.

작고 오래된 도시 수비리(Zubiri)를 지나 농로 따라 하천 따라 가보니 나바라 지방의 작은 도시 팜프로나(Pamplona)였습니다. 몸은 지치고 식사 때를 놓치고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점심한 끼를 때우며 팜프로나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수비리가 아니면 론세스바예스에서 자야 했어야 합니다. 첫날 욕심을 조금 냈습니다. 종일 비가 올 것 같았으나 도착하자마자 참았던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체크인하고 외국에서 맞는 첫 주일이라 임 주임의 성화로 성당을 찾았습니다.
오는 비를 기쁘게 맞으면서 가까운 한 성당을 가보니 그곳은 주일 미사가 없었습니다. 그 성당에서 잠깐 기도를 하고 숙소근처 초밥가게에서 초밥을 사 가지고 와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저녁 한 끼를 때웠습니다. 참 고단한 하루였습니다.
마치 제가 하고있는듯...
푹~ 빠져들어 따라가다보니
벌써 다음회...
기대 만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