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진번’ 고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진번’ 고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53-진번’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9.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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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흥서국에서 나온 사기 조선열전 부분 영인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앞서 진번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앞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설명을 덧붙여보겠습니다. 저는 역사 자료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고대사의 언어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이 참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에 나타난 상황만을 설명할 것입니다.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① 방향으로 보는 경우

앞서 잠깐 얘기한 것입니다. 진번(眞蕃)을 ‘진’과 ‘번’으로 나눠서 보고, ‘진’을 몽골어로 동쪽을 뜻하는 ‘jegün>jün’의 표기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번’은 저절로 중앙을 뜻하는 몽골어 ‘biyan’의 표기가 됩니다.

기자조선의 지배층은 몽골어를 썼고, 흉노를 비롯한 동북방의 유목민들은 모두 나라를 셋을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흉노의 경우는 왕을 중심으로 좌현왕과 우현왕을 두어 양 날개로 삼았죠. 이런 구도는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이 위만에게 쫓겨서 바다로 들어가 나라를 다시 세웠는데, 그게 삼한이었고, 삼한은 마현 변한 진한 세 한이었죠. 이 세 한이 모두 몽골어입니다. 이렇게 위만에게 밀려나기 전의 통치 방식을 ‘진번’은 보여줍니다.

② 겨레 명으로 보는 경우

반면에 진번을 겨레의 명칭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진(眞)은 부리야트의 세 종족 중에서 ‘발구진’으로, 악센트를 맨 뒤에 두었을 때 ‘진’의 음을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번’은 ‘蕃’으로 적었는데, 番이나 藩과 혼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蕃’은 우거질 번 자인데, 우거지다는 말뜻이 암시하는 바가 없어서 다른 말의 대용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番으로 통용된다면 이 뜻은 ‘번들다, 번갈아들다’여서, 부리야트의 세 종족 발구진, 구다라, 코리 중에서 ‘다라’에 해당합니다. 番을 ‘다라, 들’의 표기로 보는 것이죠.

진번과 예맥은 같은 말인데, ‘진:맥, 번:예’의 대조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몽골어를 쓰는 부리야트의 한 부족 명을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③ 번국으로 보는 경우

사마천의 『사기』 조선 열전에는 조선의 통치 영역에 있는 부족 명칭이 모두 셋 나옵니다. 동호(東胡), 예맥, 진번입니다. 동호는 흉노 묵돌 선우에게 호되게 당한 부족입니다. 후대에 선비 오환으로 나타나죠. 예맥은 부족 명칭을 뜻하는 말로, 나중에 이들이 고구려를 세웁니다. 진번은, 조선이 망한 뒤에 생긴 한사군 중의 진번과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이 진번이 누구일까 하는 것입니다.

‘번’은 큰 나라에 소속된 작은 나라를 뜻하는 ‘번국’을 뜻합니다. 문제는 ‘진’입니다. 앞선 설명대로 몽골어 ‘제즌’의 소리를 적은 ‘眞’으로 볼 수 있어서 조선의 서쪽에 있는 번국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기자조선 때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자조선은 부리야트 기지족이 단군을 밀어내고 세운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자에게 밀려난 단군은 어디로 갔을까요? 중국과 국경을 맞댄 기자조선의 동쪽에 있었고, 대인이 사는 나라라는 뜻으로 ‘진국(辰國)’이라 불렸습니다. 한자는 다른데 소리가 같습니다. 眞과 辰.

진국은 진한과는 다릅니다. 진한은 3한 중의 한 소국입니다. 변국 마국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봐도 진한과 진국은 다른 나라입니다. 3한의 진국은 경상도에 있었지만, 여기서 말하는 진국은 기자조선의 동쪽에 있는 나라였습니다.(『고조선 연구』) 위치로 치면 동쪽과 서쪽의 사이인 복판 기자에 해당하는 자리죠.

기자조선은 예맥조선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진번조선이 예맥조선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앞서서는 같은 것이라고 봤는데, 진국의 존재가 또렷하게 드러날수록 진번이 진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진국은 단군조선입니다. 그래서 대인국이라고도 한 것입니다. 대중국 항쟁에서 주도권은 기자조선에게 내주었지만, 명목상 어른 노릇을 하는 나라였죠. 기자조선이 맹주가 되면서, 원래 맹주였던 단군조선은 번국으로 위치가 낮아진 것이고, 그래서 이름도 조선이 아니라 ‘진국’으로 바뀐 것입니다.

辰은 ‘별 진’ 자입니다. 진국은 ‘별나라’죠. 별의 옛 표기는 ‘빌’입니다. ‘빛’과 같은 말이죠. ‘빗, 빛, 빋, 빚, 빌, 밝’으로 변용됩니다. 진국은 ‘빛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조선(朝鮮)입니다. 만주어로 별은 ‘usiha’이고, 해는 ‘xun’이기도 해서 각기 ‘아사’, ‘辰’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기자에게 ‘조선’이라는 말을 넘겨주고 기자조선의 번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진국’이라고 하게 된 것이고, 이것을 번국이라는 뜻으로 ‘진번’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신채호는 ‘진’을 ‘신’으로 보고 그대로 읽었습니다. 개연성이 충분한 발상입니다. 금(金)이 가야어로는 ‘친, 신(čin)’쯤으로 발음됩니다. 요동에 있던 이 진국이 조선이 망하고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진한과 겹치는 진국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따라서 진번조선의 ‘진번’은 원래 단군조선이 기자조선에게 통치권을 빼앗기면서 조선을 구성하는 한 번국으로 지위가 낮아졌고, 그런 존재로 중국 측에 인지되면서 사마천의 붓끝에서 진번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조선이 망한 뒤에 한 지역을 차지했던 진번 조선의 이름을 따서 한사군의 한 이름을 진번이라고 합니다.

이 ‘진, 친’의 존재는 퉁구스족입니다. 퉁구스족은 나중에 여진족으로 불리다가 중국의 북방 민족 중에서 금(金)나라를 세웁니다. 누르하치도 처음에는 후금이라고 나라 이름을 정했습니다. 앞선 금원시대의 제국 금나라의 후신이라는 뜻이죠. 이들은 스스로를 황금 부족이라고 여겨서 金을 자신의 성씨로 삼았습니다. 만주어로 황금은 ‘아신’입니다. 청의 마지막 황제 ‘아신자로 푸이’에서 그 자취를 볼 수 있죠.

『대청풍운』 중국 역사 드라마를 보면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등장인물들이 김(金) 씨를 ‘친’이라고 부릅니다. 금나라는 ‘친’나라인 셈입니다. 나중에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는데, ‘金[čīn]’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한자를 고른 결과입니다. 청의 현대중국어 발음은 ‘淸[qīng]’입니다. 뜻은 다르지만 같은 소리가 나는 한자 중에서 고른 것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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