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과거 독재정권들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들의 뜻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 세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사기관을 자신의 수족(手足)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모두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현 분단 상황을 악용해 정적들을 모두 빨갱이로 뒤집어 씌우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곽영주를 위시로 한 경찰이 있었고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김형욱, 이후락 등을 위시로 한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안기부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던 독재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모습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수족 노릇을 하는 기관은 대통령의 출신 배경인 검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검찰을 움직이는 수장은 바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의 혁신 기구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에서도 한동훈 장관을 곽영주, 김형욱, 이후락 등 과거 독재정권의 주구(走狗)들과 같은 인물이라 직격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개혁 대상으로 꼽혔던 검찰이었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들이받았던 ‘윤석열의 난’과 당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이낙연 지도부 더불어민주당 덕에 기득권을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윤석열이란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들을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 등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독재정권의 빨갱이 타령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수사기관을 앞세워 야당 탄압에 나서는 행태 또한 일치한다. 윤석열 정부를 두고 ‘검찰 독재정권’이라 하는 것은 달리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0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정권에 맞서 23일 간 단식 투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당시 안기부 직원들은 단식 투쟁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병실 앞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등 저질스럽고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윤석열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란 사람은 “누가 단식 투쟁을 하라고 했나?”고 비아냥거리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이재명 대표의 단식 투쟁을 가리켜 ‘자해’라고 하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다시 날뛰기 시작한 댓글부대들의 이런 망언을 향한 일방적인 찬양이 포털 사이트 뉴스와 유튜브 등지에 달렸다.
그리고 이재명 대표가 끝내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이송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윤석열 정부의 인식에서 야당이란 그저 ‘쳐부수어 없애야 할 적’에 불과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만일 이재명 대표가 정말로 검찰 측의 주장대로 중대한 범죄 혐의를 안고 있는 인물이라면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고 요란하게 언론을 통해 ‘428억 약정설’을 떠들었으면서도 정작 7개월 전에 처음 영장을 청구했을 때나 지금이나 ‘뇌물죄’는 걸지도 못했고 엉뚱한 ‘배임죄’를 걸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것이 윤석열 정부와 정치 검찰은 무엇을 믿고 이렇게 막무가내 불도저로 이재명 대표 옥죄기에 집중하는 것이냐다. 그것은 바로 더불어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들이라는게 중론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정권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총재이자 두 차례 진산파동의 주인공 유진산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유진산은 박정희 정권과 타협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지역구 나눠먹기 등을 하는 모습을 보여 ‘사쿠라’란 별명으로 통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여당인 공화당 총재 이효상이 “신민당 총재 유진산은 우리 사쿠라”라고 비웃었을까?
그 때 유진산이란 인물이 있었다면 지금 윤석열 정부엔 비명계 ‘수박’들이 있는 것 같다. 소위 ‘수박’이라 불리는 비명계 의원들은 대체로 민주당 우세 지역인 황금 지역구 출신들이 많아 공천만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정권을 뺏겨 야당이 되더라도 국회의원 당선엔 아무 문제 없으니 투쟁심이란 것이 없다.
박정희 정권이 왕사쿠라 유진산을 믿고 야당을 무시한 채 멋대로 독재정치를 할 수 있었듯이 윤석열 정부 또한 이 들을 믿고 막 나가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추측이 된다.
하지만 결국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은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이승만 정권 때 아부 기술 하나로 권력자가 되었던 부패 경찰 곽영주는 결국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후 처참하게 몰락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벌어진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날으는 돈까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박정희 정권의 충직한 주구 노릇을 하며 야당 탄압, 민주화운동 탄압에 앞장섰다. 그러나 1969년 3선 개헌이 성공한 이후 김형욱은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했다. 이후 김형욱은 미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고 다니다 실종되었다.
그는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시신조차도 발견된 바가 없다. 일설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의 한 양계장에서 살해된 후 그 시신이 해머밀(닭 모이 제조를 위한 분쇄기)에 모조리 갈려나간 뒤 닭 모이로 공급되는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는 말까지 있다. 그만큼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중정부장 김형욱의 최후는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김형욱의 후임자였던 이후락 역시 마찬가지다. 이후락도 중정부장으로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움켜쥐었지만 결국 1973년 지나친 충성 경쟁으로 희대의 무리수인 김대중 납치 사건을 일으키면서 역시 전임자 김형욱과 마찬가지로 박정희에게 쓸쓸하게 버려졌다.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후락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당시 금액으로 194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몰수당했다. 울산의 명문고등학교인 학성고등학교 역시 본래 이후락의 소유였으나 그 때 같이 몰수당하며 국공립 고등학교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말년엔 치매로 고생을 하다가 2009년에 죽었다.
이렇게 독재정권의 주구 노릇을 했던 이들의 말로는 대체로 비참했고 그들의 뒤를 받쳐주었던 독재정권이 몰락한 뒤의 모습은 그야말로 연약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것 또한 윤석열 정부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비호가 사라지면 세상 연약한 집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금 계속해서 이들이 잇달아 무리수를 두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 또한 심리적으로 조급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화면접 조사를 하는 한국갤럽과 NBS를 제외한 대다수의 여론조사 기관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에 10%p 이상의 격차로 뒤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한국갤럽마저도 내년 총선 프레임 조사에선 정권심판론이 언제나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 독재정권 당시 수사기관들이 느닷없이 ‘빨갱이 때려잡기 쇼’를 벌이며 준동했던 때가 대개 선거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