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신라 1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신라 1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55-신라1’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9.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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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본기(대제각) 영인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이번에는 신라를 한 번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앞서 우리말의 뿌리를 더듬다 보니, 동북아시아의 2,000년 전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고, 한 무제에게 공격 당한 흉노족의 대이동으로 유럽에서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진행되어 로마제국의 해체를 불러왔고, 동쪽으로는 고대국가의 발생이 연쇄반응처럼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동양에서 그 상황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나라가 신라입니다.

신라는 박 석 김 세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했습니다. 이건 2가지를 얘기합니다. 단일통치체제가 아니라 연합체였다는 것입니다. 왕까지 교대로 해야 할 만큼 서로 다른 부족들이 뭉친 나라라는 뜻이죠. 왜 이렇게 서로 뭉치지 못했을까요? 민족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한 눈에 봐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죠.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혈통이 서로 협력과 경쟁을 하다가 후기로 가면 김 씨가 대대로 왕을 합니다.

박혁거세로 대표되는 박 씨 왕조는 퉁구스어를 썼고, 김알지로 대표되는 김 씨 왕조는 터키어를 썼습니다. 석탈해로 대표되는 석 씨 왕조는 터키어 중에서도 스키타이계 어를 썼습니다. 심지어 ‘석탈해’는 ‘스키탈(방랑자) 크랄(왕)’을 그대로 적은 말입니다. 이들은 북방에서 내려온 집단으로 우연히 경주에서 함께 집단을 이루면서 협조를 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 모두 달랐습니다. 쓰는 말이 서로 다르니 이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바대로 거서간, 차차웅, 니사금, 마립간이라고 해서 왕마다 붙이는 칭호가 달랐습니다. 이렇게 성씨가 다른 사람들이 왕을 하면서 이어가다가 17대 내물 마립간부터 이후 김 씨가 왕을 이어갑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라에서는 ‘골품제’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골품제는 ‘골’에 따라서 품을 나누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은 아무리 똑똑해도 6두품이 상한선이죠.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습니다. 품계가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큰 공을 세운 천재인데도 신라도 돌아와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은 바로 이 골품제 때문입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주로 길략이나 아이누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6두품 이상은 꿈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골품은 혈통과 문화와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유일하게 신라에서 여왕이 나온 것도 바로 순수 혈통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신라 사회의 이런 특성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역사학에서 언어가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는 이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역사학이 스스로 담을 높이 쌓아올 릴 때가 아닙니다.

신라는 22대 지증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합니다. 임금에 대한 호칭도 ‘니사금’에서 ‘왕’으로 바꾸죠. 나라가 생긴 지 500년도 더 지나서 겨우 나라 이름을 정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왕이 바뀌면 각기 자기네 말로 나라를 불러서 생긴 일입니다. 만약에 박 씨 쪽에서 나라 이름을 ‘사로’라고 하면, 김 씨 쪽에서는 ‘신라’라고 하자고 하는 시비가 계속 생기죠. 결국 박(퉁구스) 씨와 석(스키타이계) 씨가 이의 제기를 할 수 없을 만큼 김(터키) 씨의 힘이 커진 뒤에 나라 이름을 정하고 공표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올해가 2022년입니다. 이 글을 쓰느라고 인터넷에서 거서간, 마립간 같은 신라 초기 왕명을 검색하여 어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개똥철학에 주먹구구식 해석만이 가득 떠오르더군요. 이 어리석은 백성과 저만 잘난 교수 나부랭이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백성들은 전문 정보를 접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연구만 하는 교수들은 왜 끝까지 침묵하는 걸까요? 강길운(충남대 국어학) 교수가 1990년에 한국 고대사를 비교 언어학으로 연구하여 단행본까지 냈는데, 정말 동종업계에 근무하는 국어학자들이 그의 책을 안 읽어보았다는 뜻일까요? 중앙지 신문에도 우리 말에 관해 수없이 연재하며 아는 체하던 그 전문학자들은 어째서 한결같이 강길운의 업적을 모르는 체하는 것일까요? 설마 정말로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설마 국어학자들이 2010년에 나온 강길운의 어원사전을 모를까요? 그럴 리는 없을 듯합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토록 완전하게 강길운의 업적이 인터넷에서 그림자도 비치지 않을까요? 도서관에서 찾아본 고대사 책 몇 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 글을 씁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신라는 터키어, 퉁구스어를 쓰는 사람들이 왕을 번갈아 했습니다. 피지배층은 아이누어와 길략어를 썼죠. 여기에 나중에 가락국의 드라비다어가 합류합니다. 그렇다면 왕을 지칭하는 ‘거서간, 차차웅, 니사금, 마립간’이란 말도 이들의 언어라고 추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러면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에서 이 말과 비슷한 말을 비교하여 찾아보면 되는 겁니다. 전문 국어학자들이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불구내 왕 박혁거세가 쓴 ‘거서간’은 퉁구스어입니다. 만주어로 ‘하늘’은 ‘*kese’이고, ‘임금, 우두머리’는 ‘han, khan’입니다. ‘거서간’은 하늘이 내린 왕을 뜻하는 퉁구스어입니다. 이름은 박혁거세인데, 그것을‘弗矩內(ᄇᆞᆰᄋᆞᆫ뉘)’라고 했습니다.

뒤이어 혁거세의 맏아들이 왕이 되는데, 이 이가 남해차차웅입니다. ‘차차웅(次次雄)’은 ‘자충(慈充)’이라고 하는데, 신라 사람 김대문은 이것이 무당을 뜻하고, 사람들이 무당을 존경하므로 ‘존장자’의 뜻으로 쓰인다고 토를 달았습니다. 만주어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은 ‘čačun’입니다. ‘자충(慈充)’은 ‘cïcuŋ’을 적은 것입니다. 혁거세는 임금을 뜻하는 말로 썼고, 그 아들은 무당을 뜻하는 말로 썼습니다. 둘 다 퉁구스족이기에 아들이 아버지의 권위를 허물지 않으려고 제정일치 시대에 통치자 왕이 아니라 제사장의 존호를 택하여 쓴 것입니다. 이것이 ‘스승’이나 ‘중’, 심지어 ‘제웅’을 뜻한다고 풀이한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과연 1990년에 발간된 책에 나오는 이 내용을, 2010년에 발간된 어원사전 책에 나오는 이 내용을, 어원에 관해 중앙지에 연재하는 분들이 몰랐을까요? 저는 이게 더 놀랍습니다. 만약에 알고도 학설이 달라 소개를 안 했다면, 그건 더 분통 터질 일입니다. 강길운 교수가 도대체 학계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이토록 철저하게 외면당한 걸까요? 저는 이 이상한 현상의 내막과 뒷이야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신라 초기 왕들의 이름 중에서 ‘거서간’과 ‘차차웅’의 어원은 앞서 말씀드렸으니, 이번에는 나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니사금’과 ‘마립간’. ‘니사금’은 3대왕 유리부터 21대 소지까지 불린 이름입니다. 22대가 지증왕인데, 이 왕은 신라의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옛 호칭을 버리고 스스로 왕으로 바꾸었습니다. 거서간과 차차웅은, 한 임금만 정식 호칭으로 썼는데, 니사금은 아주 오래 정식 호칭으로 불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힘이 떠받쳤다는 뜻이지요.

아이누어로 ‘하늘’은 ‘niš’이고, ‘신, 왕’은 ‘kamui’입니다. 우리말로 ‘신’은 ‘ᄀᆞᆷ’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보이네요. 반도 남쪽의 바닷가에 흩어져 살던 토박이 종족 아이누 사람들은 임금이나 제사장을 ‘니쉬가무이’쯤으로 부른 것입니다. 이게 ‘니사금’으로 적힌 것이죠.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의문이 풀립니다. 북방에서 내려온 박 석 김 세 씨족은 토박이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적은 숫자였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들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왕 노릇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백성들에게 익숙한 호칭이 그토록 오래 쓰인 것입니다. 이 백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왕권이 강화된 때가 바로 지증왕 무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마립간’이라는 말은 왜 안 쓰였는지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마립간(麻立干)은 지배층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터키어로 ‘왕’은 ‘melik’입니다. 여기에 ‘간’이 붙은 것이죠.

4대 왕 석탈해는 2대 남해차차웅의 사위입니다. 석 씨의 시조인데, 이름이 묘합니다. 사람 이름이 아니라, 부족 이름입니다. 기원전 6~3세기 무렵에 남러시아의 카르파티아산맥과 돈강 사이의 일대를 지배했던 이란계 유목민족이 있습니다. 북방계 청동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는 그 사람들입니다. 바로 스키타이인이죠. 러시아어로 ‘방랑하다’는 ‘skitatisya’이고, 남자 방랑자는 ‘skitalec’이고 여자 방랑자는 ‘skitalica’입니다. 여기에 왕을 뜻하는 터키어 ‘kïral’이 붙으면 뭔가를 닮았죠! ‘skital(유목민)+kïral(왕)’=석탈해(昔脫解). 석탈해는 스키타이 부족을 이끌고 한반도를 관통하여 경상도 내륙까지 단숨에 달려온 인솔자입니다. 스키타이 일파의 작은 왕이었겠죠. 처음엔 신라 왕실에 붙어서 무언가를 도모하지만, 뜻이 여의치 않자 가락국의 김수로왕을 찾아가서 도전장을 내밀죠. 수로왕과 한 판 붙습니다. 그 장면을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합니다.

이때 갑자기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이 임신하여 달이 차서 알을 낳았고, 그 알이 화하여 사람이 되어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하였다. 탈해가 바다를 따라 가락국에 왔다. 키가 3척이고 머리둘레가 1척이었다. 기꺼이 대궐로 나가서 왕에게 말하기를,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고자 왔다”라고 하니 왕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니,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 왕위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또한 우리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 탈해가 말하기를 “그러면 술법으로 겨루어 보겠는가?”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잠깐 사이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었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변해서 새매가 되었다. 이때에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탈해가 본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전 모양이 되었다. 탈해가 이에 엎드려 항복하고 말하기를, “내가 술법을 겨루는 곳에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하였는데, 이는 대개 성인이 죽이기를 미워하는 어진 마음을 가져서 그러한 것입니다. 내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툼은 진실로 어렵습니다.” 곧 왕에게 절을 하고 하직하고 나가서 이웃 교외의 나루에 이르러 중국 배가 오가는 물길을 따라서 나갔다. 왕은 마음속으로 탈해가 머물러 난을 꾀할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 500척을 보내서 쫓게 하니 탈해가 계림의 국경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삼국유사』 권2 기이 '가락국기'조-

가락국을 떠나서 신라에 온 석탈해는 어떻게 했을까요? 잔꾀로 남의 집을 빼앗습니다. 그 장면도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칠일 동안 머물렀다. 성안에 살 만한 곳을 살펴보니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머물 만한 땅이었다. 이내 내려와 그곳을 찾으니 바로 호공 (瓠公)의 집이었다. 이에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놓고 (다음 날) 새벽 아침에 문 앞에 가서 “이 집은 조상 때부터 우리 집입니다.”라고 말했다. 호공이 “그렇지 않다.” 하여 서로 다투었으나 시비를 가리지 못하였다. 이에 관가에 고하자 관가에서 묻기를 “그 집이 너의 집임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하자 (동자가)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 전 이웃 고을에 간 사이에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말대로 따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이에 그 집을 취하여 살게 하였다.

호공이 바보가 아닌 한 이런 식으로 순순히 집을 내주었ᅌᅳᆯ 리 없습니다. 혁거세 거서간이 그랬고, 자신이 그랬듯이 북방 초원지대에서 멀리 내려온 이민족이었기에, 나중에 합류하는 세력에게 그럴 듯한 빌미를 제공하느라고 이런 연극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에 김알지도 갑자기 나타나는데, 이들을 거두는 것도 석탈해입니다.

이렇게 신라에 안착한 석탈해는 남해차차웅의 사위가 되었다가 마침내 신라의 왕이 됩니다. 북방의 초원지대를 떠돌다가 부족을 이끌고 남하하여 자리 잡을 곳을 찾아 헤매던 유목민의 고단한 삶이 환히 보입니다. 강길운은, 이 때 바닷가에 널리 퍼져 살던 아이누인을 스키타이족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고단한 이동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 사건에는 이들이 남긴 언어가 있습니다. 그 언어를 따라가면 이런 이야기들이 완전히 새롭게 들립니다. 벌써 그런 내용이 책으로 나왔죠. 이런 주장이 지난 30년 동안 인터넷에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을 만큼 이상한 궤변인가요? 인터넷에 소개가 안 되었다면, 정식 학계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까요? 정말 통탄할 일입니다. 한 학자의 고집스럽고 위대한 성과를, 30년 뒤에 이름 없는 촌뜨기 하나가 소개하는 이 순간이 정말 참담합니다. 30년 전에 제가 안 내용을, 끝내 모른 체할까 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아는 체를 하고 맙니다. 이제쯤이면 어디선가 작은 메아리라도 울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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