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신라 2 횡성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신라 2 횡성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56-신라2'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10.0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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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단풍 활쏘기 한 마당.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2022년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단풍 활쏘기 한 마당.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강원도 횡성에 갔다가 뜻밖에 박혁거세의 설화가 있는 것을 알고 입맛이 확 돌았습니다.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김정래(독일 덕화대 사백) 접장이 온깍지동문회 모임을 한 번 하자고 해서 2022년에 ‘임인년 단풍 활쏘기 한마당’을 열었고, 덕분에 갈 일이 없던 횡성까지 발걸음했습니다.

장소는 갑천면 어답산의 한 골짜기였는데, 거기서 각궁을 만들며 사는 최상배 궁장한테서 아주 재미있는 지역 설화를 들었습니다.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과 신라의 왕 박혁거세가 배수진을 치고 싸운 곳이 이곳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임금이 밟은 산이라는 뜻으로 어답산(御踏山)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진한의 마지막 임금 태기왕이 졌고, 박혁거세가 이김으로써 신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답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는 모두 셋입니다. 곧은골, 샘골, 장승골입니다. 곧은 골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겨울에 물이 꽁꽁 얼어서 병사들이 밥을 해먹을 수가 없는데 한 곳의 샘만이 얼지 않아서 거기서 물을 떠다가 밥을 했고, 그래서 샘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궁지에 몰린 태기왕이 병사의 숫자가 모자라서 장승을 많이 세워서 위장을 했다고 해서 장승골이 되었답니다. 이 전투가 얼마나 심했는지, 많은 병사가 냇가에서 갑옷에 묻은 피를 닦아내니, 냇물이 핏물로 붉게 젖었다고 하여 ‘갑천’이라고 하는데, 어답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런 설화는 당연히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인데, 너무 지명에 매여서 상상력을 풀다 보니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암시하는 내용이 있어서 저로서는 범상치 않다 느꼈습니다. 특히 강원도와 경상도는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서 박혁거세의 자취를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설화가 박혁거세의 이동 경로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는 원래 발해만 언저리에 있다가 서서히 이동하여 평양 구월산을 거쳐 경주에 다다릅니다. 박혁거세가 어떻게 어떤 경로를 거쳐서 경주에 이르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경주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평양과 경주를 잇는 중간 지점 횡성에서 박혁거세의 자취를 설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직감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진한의 마지막 왕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신라 초기에는 진한의 세력이 훨씬 더 컸습니다. 신라의 부족장을 진한의 왕이 죽이고 갔는데도 신라는 항의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석탈해가 신라로 들어오고 점차 신라가 강해지면서 진한의 세력이 졸아들죠. 나중에는 진한 세력이 완전히 신라에 복속됩니다. 이곳 설화의 주인공이 박혁거세인지 아니면 그 후손인지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런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설화임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역사학자들께서 좀 더 연구해주시기 바랍니다.

횡성은 말 그대로 ‘가로재’라는 말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니, 고구려 때 횡천(橫川)이라고 했고, 다른 말로 어사매(於斯買)라고도 했다네요. 이것이 신라 때에는 삭주(朔州) 소속의 황천(潢川)으로 바뀌었다가, 고려 때에 횡성으로 바꿉니다. 川이 城으로 바뀌었습니다.

川과 買는 같은 말입니다. 고구려어로 ‘ᄆᆡ’는 물을 뜻하죠. 그래서 川으로 옮긴 겁니다. 그런데 발음을 들어보면 ‘뫼’와 ‘ᄆᆡ’는 구분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산을 뜻하는 ‘뫼’를 川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횡천을 나중에 횡성으로 바꾼 것은 아마도 이런 결과일 것입니다. 城이 ‘재’이니, 높은 언덕을 가리킨 말로 옮겼을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고봉 준령이 연달아 있는 것이 횡성 지역입니다.

‘어사매’는 신라의 지명일 겁니다. 신라의 지배층은 터키어를 썼고, 터키어로 물웅덩이(潢)나 소(潭)는 ‘azmak’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 ‘於斯(az)+買(mak)’이고, 한자로 황천(潢川)이라고 옮긴 것입니다. 이것이 고구려 지배층이 쓴 몽골어와 뜻이 통하니 그렇게 썼을 것입니다. 몽골어로 물웅덩이는 ‘gub’이라고 하거든요. ‘gub’은 갑(甲, gab)과 같습니다. 몽골어로 표기하면 ‘갈뫼(갑천, 횡천)’이고, 터키어로 표기하면 ‘어사매’가 되는 겁니다. 이 지역이 신라와 고구려의 분쟁 지역이기 때문에 지명도 왔다 갔다 했을 겁니다.

횡성은 ‘가로재, 갈재’인데, 이것은 한자의 뜻대로 가로 누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갈’의 2음절이 ‘가로’이고, ‘갈’은 ‘ᄀᆞᆯ’로 골짝도 뜻하지만 높다는 뜻도 있고 가운데라는 뜻도 있습니다. 갈라지는 곳이 가운데이기 때문이죠. 골짜기는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호수 이름 ‘홉스굴(몽골), 바이칼(러시아), 이식쿨(키르기스스탄), 투다쿨(우즈베키스탄), 카라쿨(타지키스탄), 알라콜(카자흐스탄)’에 보이는 몽골어 ‘굴(gool), 갈’이 바로 우리말의 ‘골’짜기이고, ‘개울’입니다. 알타이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골짜기 이름이 ‘차강골’인데, 몽골어로 ‘차강’은 희다는 뜻이고, ‘골’은 강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말과 똑같습니다.

우리말에서 중앙을 뜻하는 말의 표기는 ‘ᄀᆞᆸ’과 ‘ᄀᆞᆯ’ 두 가지 꼴로 나타납니다. ‘ᄀᆞᆸ’은 ‘가운데’라는 말에 살아있습니다. ‘가운데’는 ‘ᄀᆞᆸᄋᆞᆫᄃᆡ’인데, ‘ᄀᆞᆸᄋᆞᆫᄃᆡ>ᄀᆞᄇᆞᆫᄃᆡ>ᄀᆞᄫᆞᆫᄃᆡ>가운데’의 음운변화를 거쳤습니다. 비읍이 ‘ㅜ’로 변하는 것은 순경음화(ㅸ)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ᄀᆞᆯ’은 앞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갈라지다, 갈래기, 갈래, 가람’ 같은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횡성 관련어 갑천(甲川)은 비읍이 살아난 것이고, 갈재(橫城)는 리을이 살아난 것입니다. 둘 다 중심이나 높다는 뜻을 지닌 우리말의 향찰 표기입니다.

‘ᄀᆞᆯ’이 용을 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가리’의 ‘가리’가 바로 그것인데, 횡성에 청룡(靑龍)이라는 지명이 있어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 지역의 태기왕 신화가 근거 없는 것이라면, 이 용의 이미지 때문에 생긴 설화일 것입니다.

어답산(御踏山)산은 ‘얻+압+산’의 짜임인데, ‘압’은 ‘오지랍’ 같은 말에서 보이는 명사화 접미사입니다. 어답산이 임금 설화에서 나온 말이라면 ‘얻’은 ‘ᄀᆞᆯ, ᄀᆞᆸ’의 변형일 것입니다. ‘갈’이 우리말에서 용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기역이 탈락하면 ‘알, 압, 엇, 얻’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임금 설화와 관련이 없는 말이라면, 이 분석은 물려야 합니다.

어답산 밑 골짜기 마을이 병지방(兵之坊)인데, 아마도 이 때문에 두 임금의 전쟁 설화가 생긴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반대일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땅이었습니다. 몽골어로 ‘kure’가 군대를 가리키는데, 갈재(橫城)의 ‘ᄀᆞᆯ’과 비슷한 소리가 납니다. ‘갈’이 ‘kure’와 비슷해서 군대라는 말이 쓰였고, ‘재’와 결합하면 ‘병지(兵之)’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병지’는 ‘kure-tï’로 표기할 수 있는데, 향찰 표기에서 ‘子, 之’는 ‘tï’를 적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병지(兵之)’와 ‘갈재(橫城)’는 같은 말을 적은 향찰 표기입니다. ‘병지방’은 ‘갈재골, 갈재마을’이 되겠죠.

정리합니다. 높은 산줄기들이 서로 뒤엉킨 땅의 모습을 보고 이곳에 살던 토박이들이 ‘ᄀᆞᆲ뫼(並山, 疊疊山)’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고구려 지배층이 이곳에 와서 토박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갈미<갈ᄆᆡ’로 들려, 자기들이 인식한 대로 횡천(橫川)이라고 표기합니다. 뒤에 신라의 지배층이 와서 보니 고구려 사람들이 몽골어로 ‘gub(ᄀᆞᆸ, 물웅덩이)’이라고 한다고 여겨서, 이 말을 자신들의 말인 터키어(azmak, 潢, 물웅덩이)로 이해하여 옮긴 것이 황천(潢川)입니다. 황천은 뜻을 옮긴 것이고, 어사매(於斯買, azmak)는 소리를 적은 것입니다. 될수록 고구려 지명과 비슷하게 작명했다는 게 보이지요? 이것을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자부한 고려에서 ‘횡성’으로 확정하였고, 오늘날에 이르죠. ‘뫼(山)’나 ‘재(城)’나 같은 말입니다. 

제가 활을 쏘는 사람이다 보니, 활에 관한 지명이 눈에 잘 띄는데요, 횡성에 궁천리(弓川里)리라는 마을이 보입니다. 당연히 개울이 활처럼 굽었다고 해서 붙이는 이름입니다. 횡성군청의 홈페이지 안내를 보니 원래 지명이 ‘활아지’입니다. ‘아지’는 작은 것에 붙이는 축소사입니다. 망아지, 강아지, 송아지, 바가지, 싸가지, 모가지.

앞서 말한 ‘온깍지’가 궁금하시죠? 우리 활의 전통 사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활에서는 양궁과 달리 시위 잡은 손을 발시와 동시에 활짝 펼칩니다. 양궁은 뒷손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죠. 이렇게 깍짓손이 발시 후에도 그대로 멈춘 것을 ‘반깍지’라고 하여,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일종의 활병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양궁이 도입된 1960년대 이후 국궁계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양궁을 닮은 반깍지 동작이 대세가 되었고, 전통 사법 온깍지 동작으로 쏘는 사람들은 가물에 콩 나듯 한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국궁 인구 15,000명 중에서 전통 사법 온깍지로 쏘는 사람은 100명이 채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온깍지 활량들이 병신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안 되겠다 싶어 2001년에 온깍지궁사회를 출범시켜 7년간 활동했고, 그 결과 국궁계에서는 온깍지가 전통 사법을 뜻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온깍지활쏘기학교를 만들어서 전통 사법과 사풍을 제대로 보존하자는 활동을 하는 중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의 모임이 온깍지동문회입니다. 횡성에서 전통 활 각궁을 만드는 최상배 궁장의 초청으로 궁방이 있는 어답산 병지방리에서 한 번 모임을 한 것이고, 그곳에서 태기왕과 박혁거세의 설화를 듣게 된 것입니다.

2023년 3월 25일에는 온깍지협회가 출범하여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활동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횡성 활쏘기 모임 ‘계묘년 단풍 활쏘기 한 마당’을 같은 곳에서 열었습니다. 이 날은 심지어 떡메로 쳐서 인절미를 만들어 먹는 행사도 했습니다. 모두 최상배 궁장과 그곳 농업법인인 ‘만인당’ 분들의 배려로 생긴 일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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