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기] 6월 2일, 고지대의 황톳길에서 레온 대성당을 만났습니다.
[임영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기] 6월 2일, 고지대의 황톳길에서 레온 대성당을 만났습니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3.10.1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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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6월 2일, 이제 아스토르가(Astorga)로 갑니다. 뮤라스는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어제 묵은 알베르게는 순례객이 많이 모여드는 관계로 심심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스페인은 순례길 덕분에 빈집이 즐비한 지역 공동화 현상을 조금 덜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나는 습관처럼 일찍 숙소에서 나와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침 기온을 체크합니다. 숙소 아래 신발장에는 땀 냄새가 진동합니다. 다른 장소에서 이 냄새를 맡았으면 역겨웠을 텐데 오히려 순례자들이 몹시 고생한다는 한 가닥 동정의 마음만 일어납니다. 

긴 황톳길은 사막 같은 길이라서 아침식사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 갔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국인을 만났는데 아버지와 딸 일행입니다. 엄마와 딸은 상상이 되지만 아버지와 딸은 드문 경우입니다. 

임영웅이 부른 《아버지와 딸》의 가사에서 자식들이 태어나서 두 번째로 배운 이름이 아버지라고 합니다. 사실은 모든 아버지들은 딸 바보입니다. 세상 아버지는 딸만 보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갈 때 섭섭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부럽기도 신기하기도 한 이들이 어떻게 왔을까? 누가 먼저 가자고 했을까? 엄마는 안 계신가? 순간 궁금한 것들이 한꺼 번에 스쳐갑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직 고지대의 황톳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거친 길에서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사람에게 눈길이 갑니다. 일부러 신체의 고통을 통하여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레온(Leon)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구 14만의 제법 큰 도시입니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 7군단(legio)의 주둔지로 레온이란 지역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레온 대성당은 웅장도 하지만 아기자기한 모습도 보여주는 아름다운 바로코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중세가 끝나가는 16세기 후반 과테말라의 건축가 에스키멜(Diego José de Porres Esquivel)이 설계한 것으로 자연 채광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로마네스크 후기부터 고딕 시대에 걸쳐 많이 사용되었는데 온갖 색면을 통하여 내려오는 색색의  빛깔이 신비감과 경건함을 자아내게 하여 사람들의 신앙심을 고취시켰습니다. 성당의 십자가상 앞에 서게 되면 자비로운 엄마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처럼 무엇인가 말하게 됩니다. 

삶의 답답함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찾아보았지만 풀리지 않습니다. 
순수한 믿음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겼습니다.

우리는 혹시 점심시간에도 미사가 있나 알아보았지만 저녁 미사만 있었습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황톳길은 계속됩니다. 길가의 밀은 늦은 봄볕 더운 기운에 익어갑니다. 하늘에 아무렇게나 걸쳐있는 구름은 나무들과 어우러져 아름답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하면서 포장도로와 황톳길, 자갈길이 반복됩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고원지대라 먹는 물이 부족한 탓인지 옛날 우리 시골에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았을 때 만들었던 마을 높은 곳에 위치한 간이 상수도 시설같이 높은 전망대 모습의 급수탑이 보입니다.

정오 가까이에 점심을 먹기 위하여 그때쯤 지나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스낵바를 찾았으나 문 연 곳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골목을 누비다 보니 눈에 띄는 벽화가 보입니다. 이 마을 홍보용 사진인지, 영화 포스터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간판 속에서 Diputacion이란 지명을 읽었습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여기는 900m 이상 되는 고원지대의 산간지역으로 굉장히 삭막합니다. 그러나 노는 땅은 거의 찾기 어렵고, 많은 밭에는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우리 밭에 심은 옥수수가 갑자기 그리워졌습니다.

금년 이른 봄 어느 날 아침, 농부들이 지붕의 하얀 서리를 보고 기겁을 하였습니다. 된서리가 그것도 싹이 난 봄에 우리 옥수수도 얼어 죽어서 다시 모종을 구하여 심었습니다. 가끔 집에 전화할 때 농작물이 얼마나 자랐나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옥수수를 보고서 우리 밭 옥수수를 그리워하는 것을 그들도 알지 모릅니다. 그토록 소중한 것은 아마도 그들을 위하여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일 것입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이제 300km 남았습니다. 우리는 멋있게 그 표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평균 하루 70km 라이딩한다면, 사흘 치입니다. 다시 밀밭이 나오고, 식수탑을 지나서 오리비고(Oribigo)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하게 표기하면 오스피탈 네 오리비고(Hosspital de Oribigo)입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지금은 보잘것 없는 다리이지만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시멘트를 섞어서 만든 다리 같지만, 시멘트 없던 시절에 어떻게 만들었나 참 궁금합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여기는 6월에 들어서면 주말마다 축제가 열립니다. 마침 과거 기사 복장을 한 지역민을 만났습니다. 멀리 돈키호테에 나오는 로시난테, 당나귀 같은 작은 말도 보입니다. 세르반테스는 여기서 《돈키호테》의 모티브를 끌어냈다고 합니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귀부인은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둘시네아입니다. 옛날 이곳에 사는 어느 순정파 기사가 사랑의 표시로 목에 칼을 두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힘들어서 얼마간 지나 중단하였고, 언약대로 300명의 기사와 결투를 하여 이 약속을 지켰다는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우리는 돈키호테를 엉뚱한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그 엉뚱함 속에는 온전히 타인을 위한 행동이 있고, 우스꽝스러운 갑옷과 비루한 음식에 개의치 않는 겸허한 마음이 있습니다.

《돈키호테》에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선한 지를 보여줍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오리비고에서 주위의 경관을 보면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거리도 한적하고 차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도로 건너편에 축구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옵니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보통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세계 제일의 인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합니다. 경제나 기술 같은 지적인 것보다는 가족과 친구 관계 같은 주제로 인간관계를 학습합니다. 아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배우게 할 것입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비포장도로는 계속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톳길이지만 마지막 고개인지 멀리 바라보니 아스토르가가 보입니다. 지난 번 이 고갯길을 왔을 때는 가을이라 과일 노점상이 이 길에 있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내고 싶은 대로 내라고 말한 마음 따뜻한 착한 영혼을 가진 그 상인이 생각납니다. 이번에는 이 고개에서 순례자 여권에 기념 스탬프를 파서 찍어주는 사람이 금장(金匠)으로 피카소 그림을 흉내 내고 있었습니다. 

아스토르가는 만 명 조금 넘는 도시로 2000년 전 로마시대부터 생겨났습니다. 도시 중심지에 가기 전 뱅글뱅글 도는 기다란 육교를 건넜습니다. 나는 내려서 끌고 갔지만 세 사람은 곡예사처럼 잘도 탔습니다. 난 아직도 운전 능력은 초보입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오후 4시쯤 여유 있게 아스토르가에 도착한 우리는 지역 박물관으로 일부 사용하는 대성당과 가우디가 건축한 주교 궁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대성당 구석구석을 살피고, 신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 지상의 유일한 거처라는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유럽 도시의 광장에는 의례 시청 건물이 있습니다. 1시간마다 시청 꼭대기에서 남녀 두 인형이 나와 종을 치는 데 오늘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예약한 식당은 8시 반에 영업을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나 너무 늦다는 생각뿐입니다. 스페인의 식사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식사시간에 적응할 때쯤이면 아마 스페인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많이 먹고, 저녁에는 간단하게 식사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밤 11시가 주문이 끝나는 시간입니다.

[굿모닝충청] 사진제공=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오늘은 프리미엄 스페인 돼지고기 이베리코(ibérico)를 먹기로 하였습니다. 이베리코는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르는 돼지 품종으로 우리나라의 한 돈(韓豚)과 같은 토종 브랜드입니다. 야생 방목하여 풀과 도토리를 먹여 키우는 스페인 흑돼지는 도토리에 함유된 독특한 풍미를 내는 올레 산(oleic 酸)이 들어 있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이 식당은 그동안 먹었던 바(bar)수준 과는 달랐습니다. 직원들은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전문 요리사들로 성심껏 손님을 접대했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어울려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스토르가 지명처럼 오랜만에 화려한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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