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기] 6월 3일, 자연에 대한 신의 섭리를 느꼈습니다.
[임영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기] 6월 3일, 자연에 대한 신의 섭리를 느꼈습니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3.10.23 09: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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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6월 3일, 아스토르가에서 비야프랑카(Villa Blanca)로 가는 날입니다. 출발은 7시이지만 아직 밖은 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하고, 가로등만이 깨어 있습니다. 하늘에 회색뿐입니다. 도보로 가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일찍 출발하고 오후에 여유 있게 도착하여 숙소도 정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느긋한 시간을 마련합니다. 

막 출발했는지 힘차게 개와 함께 가는 사람이 시원스럽게 보입니다. 개는 인간에게 참 다정합니다. 그 많은 동물 중에서 인간과 가까이 교류하는 동물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적자생존론(適者生存論)보다는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힘이 살아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립니다. 그림자도 앞쪽으로 길게 만들어져 갑니다. 10km 달리다 보면 엘 칸소(El Ganso)가 나옵니다. 엘 칸소는 돌이 많은 지역으로 돌담이 우리 것처럼 정겹게 눈에 밟힙니다.

우리는 아침을 해결하기 위하여 길가의 알베르게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한두 사람의 순례자들이 커피를 들고 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깔끔하고 부지런한 인상입니다. 혼자 일하지만 꽃들도 사람의 손으로 여기저기 곱게 피어있고, 가게의 물품들도 보기 좋게 아주 잘 진열돼 있습니다. 뒤 곁 텃밭에 아침 밥상에 놓일 만큼 신선한 야채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랜만에 듣는 앤 마리(Anne Marie)의 노래처럼 경쾌하고 청량감있는 어느 가수의 아름다운 소리에 잠시 행복했습니다.

비포장 황톳길을 다시 한참 가다 보니 아직도 이른 오전이라  순례자를 위한 노점을 준비하는 자들도 보입니다. 앞으로 계속 오르막으로 20km 이상은 더 가야 꼭대기에 있는 철 십자가 탑(Cruz de Ferro)에 도착합니다. 

엘 칸소부터 오르막은 계속됩니다. 870m에서 1450m까지 올라갑니다. 제주도의 도깨비 도로처럼 착시현상으로 내려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금씩 올라가는 길입니다. 산 중턱에서는 영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습니다. 타이어가 펑크 난 것이 아닌가 불안했습니다. 

정상에 오르기전 순례객들은 정상 바로 아래 폰세바돈(Foncebadon) 길 옆 바(bar)에서 지친 몸을 달래고, 다시 마음을 다잡기 위하여 쉬고 있었습니다. 주점 출입문에 메뉴 가격표가 장식처럼 붙어있습니다. 종업원인지 주인인지 모르지만 그의 호의로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온 한 쌍의 부부가 오랜만에 만난 성당 식구처럼 다정하게 우리를 환대했습니다. 부인의 다리가 온전하지 않아 컨디션에 따라 걷기도 머물기도 한다고 합니다. 남편은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분이라 우리의 자전거 여행에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지만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사랑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철 십자가상에서 우리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순례자들의 기도가 돌무덤처럼 쌓여있습니다. 

사람이 앞을 내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좌절도 있고 실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자보다 
지은 죄를 회개하며 아파하는 자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해발 500m 수준까지 거의 20km 내려갑니다. 가는 길에 무당집처럼 꾸민 곳도 있습니다. 내려오는 경관은 일품입니다. 길가에 노란 꽃들이 피어있고 멀리 산머리에 걸쳐있는 구름도 어쩌면 이렇게 멋있는지 보기에 참 좋습니다. 진짜 귀중한 풍경들입니다. 한마디로 숭고하기까지 한 감정입니다. 이런 아름다움이 자연에 대한 신의 섭리를 느끼게 하고,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와 같은 사랑의 시를 잉태하게 합니다.
 
사랑이 어떻게 네게로 왔니? 
햇살처럼 왔는가, 
꽃눈발처럼 왔는가, 
기도처럼 왔는가 말해다오

한참 내려가니 로마시대 오래된 다리가 있는 몰리나세카(Molinaseca)가 보입니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려면 2시간 이상 필요합니다. 우리는 폰페라다(Ponferrada)에 있는 템플기사단 (Knights Templar) 성에서 점심을 할 계획으로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템플기사단 성 길가 바(bar)에 들어가서 주인을 찾아 자리를 잡으려 하니 아직 영업개시 전으로 오후 1시 30분에 오픈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아직도 우리 식으로 정오 12시인 줄 알고있습니다. 식당이 오픈할 때까지 템플기사단 성을 관람하기로 하였습니다.

템플기사단은 중세 십자군 전쟁 때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1118년에 설립된 기사 수도회로서 그들은 흰백 옷에 붉은색 십자가를 표시한 복장을 합니다.

템플기사단 성은 강변 바로 동쪽에 자리 잡아 경계와 방어에 아주 적지처럼 보였습니다. 한때는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수만 명을 거느린 국제적인 조직이었으나 후에는 교황의 경계심이 발동, 의도적인 모함으로 해체되었습니다. 토사구팽(兔死狗烹)을 당한 격입니다.

이제 비야브랑카는 20km 정도 가면 됩니다. 어느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오나 수로에는 힘차게 물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곳에 밭작물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감자와 파, 고추, 양상추를 먹을 만큼 짓고 있었습니다. 감자의 생육 크기가 우리 밭에 감자와 같습니다. 막 감자꽃을 피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비야브랑카는 해발 540m 고지에 건설된 도시로 거의 1500m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형태입니다. 그 도시로 가는 길에 여기저기 큰 포도밭이 있습니다. 곧 비가 올 듯합니다. 눈에 띄게 검은 구름이 몰려옵니다. 

이제 도착한 순례객들은 여장을 풀고 도시 중심지 한곳에 모여 저녁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모두 기쁜 표정으로 들떠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한 자들일 것입니다.

비야블랑카 거리에는 순례자 동상이 있습니다. 조형물에 도마뱀이 그려져 있지만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도마뱀은 산티아고 기사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순례자들을 자기들이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숙소는 번화한 중심거리와는 거리가 있는 변두리이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하얀 예쁜 집입니다. 여기저기 체리 나무에 체리가 널려있습니다. 입구에 한자로 산(山)을 정문 앞에 붙여 놓은 것을 보면 꽤 동양세계를 이해하고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저녁 10시 가까워지자 비가 주룩 주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임 주임이 센티한 탓인지 먼저 제안하여 가방 속 마시다 남은 소주를 꺼냈습니다. 가방 속에서 1주일 이상 뒹글던 먹다남은 육포는 어제 눈을 질근깜고 버렸습니다. 

살던 곳과 다른 새로움과 차이점이 여행의 매력일지라도 집을 떠나온 지 일주일 지났으니 향수병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비까지 내리니 술시(酒時)만은 딱입니다. 베란다에 앉아 빗소리를 안주 삼아 마신 이 날의 술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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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2023-10-26 22:49:31
이국 만리의 그림같은 풍경을
편안하게 만끽하다니 눈이 호강합니다.

구구절절 느껴지는 고된 여정도
아주 멋져 보입니다.
건강함으로 뭉쳐진 酒時의 여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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