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기] 6월 4일, 마지막 고통의 길입니다
[임영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기] 6월 4일, 마지막 고통의 길입니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3.10.30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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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6월 4일 비야브랑카에서 사리아(Sarria)까지입니다. 이번 구간이 순례자에게는 마지막 고통이면서 환희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ᆢ 하나의 큰 산을 넘어 내려가는 일입니다. 아침 공기는 어제 저녁에 한차례 퍼붓고 간 비에 씻겼는지 굉장히 산뜻합니다.  

새벽에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닭 울음소리를 타국에서 들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제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이 눈에 보일 듯합니다. 도보 순례객들은 거의 한 달이 되도록 걸었습니다. 우리도 10일이 되어갑니다.

우리는 비야블랑카를 떠나기 전 여기에 있는 산티아고 성당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산티아고 성당이 또 있다니 무엇이 잘못되었나 잠시 당황했습니다. 숙소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산티아고 성당에는 용서의 문이 있습니다. 교황 칼릭스토 3세가 교서(敎書)로 병들거나 사정이 있어 순례를 못 하는 경우 순례자가 이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과 동일하다고 인정한 문입니다. 

이 성당 바로 옆에 이 마을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유교 세계보다는 저쪽 세계를 강조하는 기독교 문화는 삶과 죽음의 차이가 그다지 큰 것 같지 않습니다. 비문에 무슨 내용이있을까 갑자기 궁금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의미 있는 삶을 말했을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을 하라구. 
그래야 후회가 없네”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하여 4km 정도 가서 커피와 약간의 요기를 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점점 늘어간다는 인상입니다. 여기서도 십여 명을 만났습니다. 자전거로 가는 순례객들과 도보로 가는 순례객들이 숨바꼭질하듯이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계속 산 쪽으로 올라갑니다. 

10km 정도 가다가 오 세브레이로(O`Cebreiro)를 오르기 전에 한 번 더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전에 올 때도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간 기억이 있습니다. 대부분 알베르게는 1층에 커피와 약간의 먹을 것을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가만히 보니 임 주임이 헬멧을 쓰지 않고 헬멧 속 모자만 쓰고 있었습니다. 헬멧은 생각보다 가벼워서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한참을 그곳에서 찾았으나 알베르게 주인이 CCTV를 찾아보고 여기에 쓰지 않고 들어왔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쓰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면 분명한 것은 첫 번째 쉬었던 곳에 두고 온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찾아오는 것을 포기했지만 나중에 깊이 깊히 후회했습니다.

이제 오 세브레이로(O`Cebreiro)까지는 10km 정도. 계속 올라가는 길이라 얼마나 걸릴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지난번에는 5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전기 자전거일지라도 1시간 이상은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올라가면서 그 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봅니다. 힘들었지만 고생 값을 치르고도 남음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고개로 통하는 언덕길에도 여전히 봄은 봄입니다. 각종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이 고갯길을 더 가면 오 세브레이로가 나옵니다.

오 세브레이로 마을에는 버스로 이동했는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농사를 짓나 트랙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산꼭대기에 있는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고색창연한 성당, 산타 마리아 라 레알(Santa Maria La Real)성당입니다. 

유 주임은 잔돈을 꺼내서 초 10개에 불을 붙여 봉헌했습니다. 그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라이딩을 함께 할 때 언제나 미사시간에 동참을 했고, 기도도 함께 열심히 합니다. 신앙심하면 임 주임인데 요즘 임 주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성당에는 아름다운 미담이 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 신자가 추운 겨울 눈보라를 뚫고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오만한 사제는 행색을 보고 멸시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순간 사제가 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했습니다. 

하느님의 기준은 믿음의 크기가 척도입니다. 오랫동안 앉아 묵상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번잡한 소리가 깊은 사유를 방해합니다.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카페같은 식당들이 드문드문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가을이라 쌀쌀해서 뜨거운 수프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납니다. 

여행은 먹는 것도 중요한 몫을 차지합니다. 시간을 들여 맛집을 찾아서 식사하는 즐거움은 상당합니다. 이는 순전히 이 친구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거의 20km 정도로 길고 긴 길입니다. 자전거의 특성은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자전거는 올라갈 때 어려우면 그만큼 내려갈 때 쉽습니다. 그러나 사고는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갈 때 납니다.  

제일 선두 이 처장이 이 기나긴 길의 중간쯤을 내려가다 꺾어지는 길목에서 회오리바람이 불어 모자가 벗겨지려고 하자 모자를 잡으려는 과정에서 자전거 차체가 흔들려 결국 넘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도 얼굴에 찰과상을 입은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지원 차량을 불러 태우고 병원에 보냈습니다. 

유럽의 교육과 의료는 나라별 복지정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거의 무료에 가깝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여는 병원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마침 공립병원이 진료를 하고 있고 서비스 또한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내려오다가 길옆에 순례자상이 서 있었습니다. 모진 비바람에 기진맥진하는 순례자의 고통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도보 순례자들은 산등성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서 골짜기의 밤나무와 떡갈나무 숲속에서 더 많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전거 순례의 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나도 걸어서 한번 해볼까 하는 공상도 합니다. 

해발 61m의 인구 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사리아(Sarria)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숙소는 우리의 일성급 관광호텔 수준의 알폰소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오늘은 스페인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일요일로 저녁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성당에는 생각보다 미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어는 알지 못하지만 미사 전례는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오랜만에 갖는 감사 미사였습니다. 작은 사고는 있었으나 다행히도 지금까지 큰 부상 없는 것도 정말 감사드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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