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6월 5일, 오늘은 사리아 알퐁소 호텔을 떠나 목적지 산티아고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Santiago)으로 갑니다.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100km 조금 더 남았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발행하는 100km 이상 걸은 자에게 나오는 완주했다는 증명서도 이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가려면 구름이 걸쳐있는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직선코스로 해발 1,000m 되는 숲속 산길입니다.
점차 같은 방향으로 가는 순례객이 많아집니다. 때로는 자전거로 가기에 좁은 자갈길, 돌길을 이리저리 운전하면서 순례객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온 신경을 길을 찾고 안전에 신경 쓰다 보니 100km 표지석을 지나쳤습니다.


강원도 고지대처럼 생긴 넓은 초원은 온통 사료용 초지이고 목초를 깎는 트랙터 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렸습니다. 소들도 자주 보이고 여기저기 축사가 있는 곳에서 인분 냄새가 납니다. 계속 산속 숲으로 들어가니 구름 위를 타는 기분이지만 제일 후미에 있는 나는 일행을 놓칠까봐 걱정이었습니다.

임 주임이나 유 주임은 생각보다 훨 씬 잘 탑니다. 특히 임 주임은 왕년의 오토바이 탄 솜씨를 이 꼬불꼬불 어려운 산길에서 제대로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갔을까 숲속을 벗어난 길가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자기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만 피곤에 지친 순례객에게 뜻밖의 선물입니다. 그분도 타인에게 본인이 뭔가를 줌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산길을 거의 내려올 때쯤 멀리 포르토마린을 볼 수 있는 바(bar)가 나타났습니다. 순례객들의 표정은 아주 밝았습니다. 이제 순례객들도 적어도 1주일 이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여유 있는 마음 덕분인지 그들의 목소리는 크고 유쾌하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스페인에서 마신 맥주는 두 종류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에스텔라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또 하나는 1907이라는 숫자가 있는 맥주입니다. 맥주를 많이 마셔본 유 주임은 숫자가 들어있는 맥주는 잘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맥주를 있는 대로 주는 대로 마셨고, 임 주임은 포도주를, 이 처장은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조금만 달리면 미뇨강이 흐르는 포르토마린에 도착합니다. 미뇨강은 꽤 큰 강입니다. 이제까지 건넜던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타면서 동네를 홍보하는지 벽면에 큰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오래된 종탑이 이상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제는 목적지까지 100km 이내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시 시골길로 들어서면 구릉지대의 넓은 목초지가 나타납니다. 지난번에 숙소였던 농촌의 작은 마을 리바디소(Ribadiso)를 거쳐 멜리네에 도착하여 기대했던 갈라시아 지방의 명물 뽈뽀(Pulpo) 요리 전문점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는 화이트 와인과 뽈뽀를 시켜 점심을 먹었는데, 놀랍게도 포도주 잔이 우리 막걸리 잔처럼 사기로 된 잔이었습니다. 이 유명한 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났어도 손님으로 붐볐습니다. 서울의 문어요리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우리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멜리데에’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나타내는 십자가에 매달린 십자고상(十字苦像)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으로 한쪽 팔이 빠져있는 예수님 상입니다. 어떤 신자가 같은 잘못으로 계속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때마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그는 죄를 다시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서면 다시 죄를 짓는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신부가 그 신자의 뉘우침에 진정성이 있나 의심하여 용서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오른손을 빼내서 직접 성호를 긋고 용서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이 해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머리를 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잽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자식이기에 인정받기 위하여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1시간 가량 인근 성당을 뒤졌지만 결국은 십자고상을 찾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몹시 아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순례객은 점점 많아집니다. 스페인 학생들이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온 것 같습니다. 떠들썩하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은 우리만큼이나 목소리가 큽니다. 그만큼 열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적지 40km를 남겨두고 아리수아에서 숙소를 정했습니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저녁입니다. 길가 숙소이지만 한 발짝만 들어가면 여전히 농촌과 같은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 꽃들과 마을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둥실 떠 있는 구름은 화가가 실제로 그린 것처럼 아주 입체적인 모양새입니다.


길가에 있는 여러 색깔의 시설물은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순례길 표지석만은 자기 의무를 다할 것처럼 의롭게 서 있습니다. 아리수아 성당에 저녁 7시 미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습니다.



처음 출발했을 때 초승달이었던 달이 이제는 보름달이 되었습니다. 벌써 10일 이상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내일 늦어도 11시 전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야 합니다. 일찍 잠을 재촉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동짓날처럼 긴긴밤이었습니다. 동트기 한참 전에 눈을 떴습니다.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길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카메라에 담긴
사진만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까지 담겨져
더더욱 갈망하게 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