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신의 나라 ‘진국’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신의 나라 ‘진국’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0-진국'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11.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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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각의 삼국유사 영인본, 권1 박혁거세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진국(辰國)과 진한(辰韓). 이 둘이 같은 말일까요? 다른 말일까요? 다릅니다. 진한은 한반도에 있던 3한 중의 한 나라입니다. 반면에 진국은 발해만에 있던 나라인데, 지금은 완전히 잊힌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가 다른 나라임은, 삼한의 나라 이름에서 증명됩니다. 삼한은 ‘마한 변한 진한’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는 ‘마국 변국 진국’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이 3한 밑에 수많은 ‘국(國)’이 있습니다. 그러니 3한의 ‘한’은 ‘국’보다 더 높은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진수가 『삼국지』를 편찬할 때 인용한 책 중에 『위략』이 있습니다.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 ‘한전(韓傳)’이 있는데, 이곳에 붙인 주석의 내용이 바로 『위략』에 실린 것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우거가 아직 (한나라에게) 깨지지 않았을 때, 조선상 역계경은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우거가 듣지 않으므로 동쪽의 진국으로 갔는데, 그때 그를 따라간 백성들이 2,000호나 되었다. 그들은 또한 위만조선에 공납하는 번국(蕃國)들과도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진국’이 위만조선의 동쪽에 있으므로, 한반도에 있는 진한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위만조선은 한나라와 조선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위만조선과 친하게 지내는 번국들과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니, 진국은 위만조선과도 사이가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위만조선의 바로 옆에 있던 이 진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요? 만약에 위만조선이 중국의 동쪽을 전부 다스렸다면 이 내용은 모순입니다.

『위략』이라는 책은 정말 곳곳에서 다른 역사 기록과 모순을 일으키는 내용을 많이 적어놨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자료가 별로 없는 고대사에서 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최대한 존중하여 서로 맞부딪치지 않도록 해석을 해봐야죠. 게다가 『사기』에도 위만을 치는 황제의 명목이 조공 오는 다른 나라를 길목에서 막는다는 것이었는데, 진번 조선의 주위 여러 나라(衆國)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衆國이 다른 사서에는 진국(辰國)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진국이 맞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국(衆國)이 맞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이 말이 위만조선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실마리입니다. 중국 동쪽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관문이 하나 있습니다. 산해관이죠. 험한 지형에 구멍만 하나 달랑 뚫려있어서, 군사 몇 명이 지키면 백만대군도 통과할 수 없는 요지입니다. 이곳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중국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이곳에다가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버스 타고 15분만 가면, 만리장성이 바다에 들어가는 노룡두(老龍頭)가 나옵니다. 하북성 창려현입니다.

이곳을 통해야만 중국으로 들어가는데, 중국 입구의 여기 바깥을 지키는 세력이 밖에서 막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가 중국으로 가려면 이곳 산해관을 지나야 하는데, 산해관 바깥을 점령한 세력이 막으면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중국측이 위만조선에게 보인 이런 불만이 바로 위만조선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이 산해관 바깥을 통치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자리는 옛날 기자가 와서 살던 곳이었습니다. 고조선의 서쪽 끝이었죠.

이 무렵 위만조선은 중국을 등에 업고(外臣)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것인데, 진국은 아직 위만조선이 삼키지 못한 곳임은 분명합니다. 위만조선이 조선 서쪽의 기자조선을 삼켰지만, 나머지 모든 조선을 다 삼키지는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진국은 아직 위만조선에게 먹히지 않은, 조선의 나머지 조각일 것입니다.

이제 어원을 뜯어보겠습니다. 辰진은 ‘별 진’자인데, ‘신’으로도 발음이 됩니다. ‘진국’ 또는 ‘신국’을 우리말로 옮기면 ‘별나라’입니다. ‘별’은 ‘빌, 불, 발, 빛, 빝, 빗’과 같은 뿌리를 지닌 말입니다. 이 말들의 원형은 ‘붉, 밝’입니다. 적봉(赤峰), 홍산(紅山)이 이것을 적은 말이라고 앞서 설명한 적 있죠. 우리말에서 끝에 붙는 이 기역(ㄱ)은, ‘기역 곡용’이라고 합니다. 낱말이 어떤 문장에 들어갈 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놈을 말합니다.

이름씨와 이름씨가 만나 낱말을 만들 때는 시옷이 끼어들어서(시냇물) ‘사이시옷 첨가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게 토씨와 붙을 때는 갑자기 기역도 나타나고 히읗도 나타납니다. 예컨대 ‘나무’가 토씨 ‘가’를 만나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00년 전만 해도 ‘나무가’가 아니라 ‘남ᄀᆞᆫ’이 되어 갑자기 ‘남’ 뒤에 ‘ㄱ’이 달라붙습니다. 실제로 사투리에서는 나무를 ‘낭구’라고 하는 곳이 많습니다. ‘좁쌀’이나, ‘접때’의 경우에는 비읍이 갑자기 살아나죠. 그래서 세종대왕께서 ‘나ᇚ(木), ᄡᆞᆯ(米), ᄣᅢ(時)’라고 표기하신 것입니다.

‘ᄇᆞᆰ’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독립할 때는 기역을 떼어버리기도 하고, 리을을 떼어버리기도 합니다. 제 편한 대로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합니다. 얄밉습니다. 아래아(ㆍ)도 ‘ㅗ,ㅜ,ㅓ,ㅏ,ㅡ,ㅣ’로 멋대로 바뀝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쓴 걸 어찌합니까? 언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죠. ‘돍’도 그렇다고 했죠? ‘돌’로 변신할 때도 있고, ‘독’으로 변신할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기역을 떼어버리고 ‘돌’이 되는데, ‘독도’는 리을을 버리고 기역을 살린 경우입니다.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이죠. 기역을 떼어버리면 ‘밝’은 ‘불, 빌, 별’이 되고, 리을을 떼버리면 ‘박’이 됩니다. 경상도에 와서 박혁거세의 ‘밝’은 리을을 떼어버린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진국’의 ‘진’은 별을 뜻하는 한자로 표현되었지만, ‘밝(빛, 불, 해)’을 나타낸 향찰 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여 신화에 나오는 인물 ‘해모수, 해부루’의 ‘해’는 이런 것입니다. 진국은 결국 ‘빛(해)의 나라’를 뜻합니다. ‘조선’이나 ‘아사달’과 같은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국은 위만에게 아직 안 먹힌 단군의 나라를 말합니다. 아직도 제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어리석은 중생, 여러분을 위해 어퍼컷을 날려드리겠습니다.

박혁거세를 부르는 호칭은 ‘거서간’입니다. 혁거세(赫居世)를 다른 말로 불구내(弗矩內)라고도 한다고 『삼국유사』에는 각주가 달렸습니다. ‘ᄇᆞᆰᄋᆞᆫᄂᆡ’를 뜻으로 적으면 ‘혁거세’가 되고, 소리로 적으면 ‘불구내’가 됩니다. 거서간은 퉁구스어로 ‘하늘 임금’의 뜻입니다. 퉁구스어에서 ‘*kese’는 하늘이고, ‘kan’은 왕이기 때문입니다. ‘밝은뉘, 혁거세, 불구내, 거서간, kese-kan’은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2대왕 남해가 아버지가 쓰던 거서간을 쓰지 않고 ‘차차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는 분명합니다. 박혁거세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거서간’이었던 겁니다. 지금 살펴본 대로 이 다섯 가지 말은 모두 그 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직도 못 믿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한심한 중생을 위해서 이번에는 태권도의 돌려차기로 한 방 날려드리겠습니다. 말썽 많은 『위략』에 또 이상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염사착(廉斯鑡)이 진한(辰韓)의 우거수(右渠帥)가 되어 낙랑에 내항하려 하였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거수’가 나옵니다. ‘우’는 ‘좌’와 짝하는 말이니 떼어내도 됩니다. ‘거수’는 누가 봐도 ‘거서’와 같은 말입니다. 제정일치 사회의 무당이죠. 삼한은 제정이 분리된 사회이지만, 그 전의 말을 계속 쓰는 겁니다. 통치자와 제사장이 분리되면 이제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은 따로 나타나야 합니다. 뭐죠? 삼한의 소도에서 제사장은 ‘천군’이라고 불렀습니다. ‘天君’은 중국어 발음으로 ‘tianjun’인데, ‘壇君’은 ‘tanjun’이어서 거의 같습니다. 박혁거세가 ‘거서간’인데, 이 거서간은 바로 제사장을 뜻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박혁거세는 거서간이면서, 거서이고, 천군이며, 단군이고, 임금이었습니다. 제정일치 사회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이제 위만조선의 동쪽에 있으면서 아직 위만에게 먹히지 않은 원래의 조선은, 바로 진국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조선=진국’이죠. 이것이 성립하려면 ‘조선’도 빛을 뜻하는 말이고, ‘진’도 빛을 뜻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朝鮮’은 ‘아사달’이고, ‘辰’은 ‘별, 빛, 붉, 밝, 해’이니, 결국 같은 말입니다. 단군이 다스린 ‘조선’을 ‘진국’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조선’을 위만이 차지하고 나니까 그와 똑같은 말로 할 수 없어 구분하려고 이렇게 ‘진국’으로 적은 것입니다. 물론 조선을 대표할 수 없는 작아진 상태를 나타낸 말이기도 합니다. 이 단군은 조선 전체를 다스리다가, 서쪽에서 위만이 야금야금 영토를 먹어오니까 점차 동쪽으로 옮기다가 결국은 한나라의 공격이 일으킨 거대한 해일에 밀려서 한반도까지 떠내려옵니다. 그 마지막 자리가 경상도 경주의 신라입니다.

중국의 기록에 처음 나타난 조선은 『관자』의 ‘발조선’이었습니다. 이 ‘발(發)’은 앞서 말한 ‘붉, 밝, 빌, 별’의 향찰 표기입니다. 이 발조선이 한자로 번역되어 ‘진국(辰國)’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 ‘불, 발’은 ‘별’로 들린 것이고, 그것을 辰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지배층은 퉁구스어를 썼습니다. 신라의 지배층 중에서 혁거세 일파가 퉁구스어를 썼죠. 그래서 기준 왕이 한반도로 쫓겨왔을 때 삼한의 이름 중에서 자연스럽게 진한이 된 것입니다. ‘진국’의 소리가 ‘진한’으로 낙인처럼 찍힌 것이죠. 원래는 기자조선이 단군조선을 밀어내고 대중국 항전을 할 때 단군은 아사달로 돌아와(!) 신선이 되었는데, 그곳이 평양 근처 구월산이고, 구월산에는 아직도 단군의 유적과 전설이 있습니다. 구월산(九月山)은 ‘아사달’의 향찰 표기입니다. 구월(九月)은 ‘아홉 달’인데, ‘달’은 고구려어로 산을 뜻하는 말이고, ‘아사’와 ‘아홉’은 어간이 ‘아ᇫ(=앗=앟)’입니다. ‘아ᇫ’은 ‘아침, 아이’의 뜻입니다.

위만에게 패한 기자 준이 한반도로 오자 구월산의 단군은 다시 자리를 뜹니다. 요동 대륙에서 중국보다 더 큰 땅을 다스리던 거서간은 처음 기자에게 밀리고 한나라의 동쪽 공격에 밀려서 쫓기고 쫓기다가 마침내 한반도의 가장 외진 구석까지 옮겨온 것입니다. 그래서 ‘진’한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붙은 것이고, 다른 한(마한, 변한)과 달리 진한에는 ‘국’이라는 말이 절로 붙어서 ‘진국’으로도 불린 것입니다. 진한은 조선을 다스린 단군이 마지막에 자리 잡은 왕국입니다.

그렇기에 흉노의 수도 용성에서 살던 석탈해가 중국 한 무제의 흉노정벌을 피해 고구려와 백제를 따라왔다가 다시 전주와 김해를 거쳐 토함산을 넘어 천신만고 끝에 경주에 다다랐을 때, 혁거세 일파는 선뜻 그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동병상련이었던 거죠.

석탈해가 호공의 집 담장 밑에 숯을 묻어놓고서 대장장이인 제 조상의 집이라며 억지를 부려 호공의 집을 빼앗았는데, 이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바보가 그런 억지를 눈치채지 못하겠어요? 다 알면서도 내주었던 겁니다. 경주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떠돌이를 받아들일 명분을 석탈해가 만들자 호공이 그것을 모르는 체하고 받아준 것이죠. 왜냐하면 호공은 박 씨이기 때문입니다. 호공(瓠公)의 ‘호’는 조롱박을 말합니다. 애기박이죠. ‘조롱박’은 ‘졸+옹+박’의 짜임입니다. ‘졸’은 ‘졸보, 조랭이, 졸복’ 같은 말에서 보이는 말로 작다는 뜻입니다. 박혁거세의 일족으로, 새끼 박 씨였을 것입니다.

석탈해는 나중에 밀려든 흉노족 김알지 일파를 받아줍니다. 혁거세가 자신을 받아주었던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 동병상련이었을 것입니다. 흉노족의 후예 김알지는 신라에 자리 잡아서 신라 중기 후기는 김 씨가 왕위를 세습합니다. 신라 경주는 단군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축소판이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볼 때 ‘진국’은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 곧 제사장(무당)이 다스리던 신의 나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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