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56] 허송세월…보령시 남곡동 팽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56] 허송세월…보령시 남곡동 팽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3.11.10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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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다, 잊어버렸다

하릴없이 꾸역꾸역 먹은 나이도

때때로 거추장스러웠던 얼굴도

까맣게, 잊었다

부뚜막에 걸터앉아

물에 퉁퉁 불은 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심장에 욱여넣었던 이름까지도

새까맣게, 잊었다

파릇하던 청춘의 한낮,

그 뜨겁던 순간이

이토록 아득해질 줄 알았더라면

흙먼지 대신 분가루 흩날리며

한번은 피어 볼 것을

뿌연 연기 폴폴 날리며 홀연히 사라지던

파란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어디로든 떠나보고 싶었다

목포의 눈물이 흐르는 다방에 앉아

계란 노른자 동동 뜬 커피를 마시며

한 계절쯤 청춘을 만끽하고 싶었다

느리게 걷고

늘어지게 자고

멍하니 세상을 응시하며

함부로 나태해지고 싶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식솔이

나이테를 하나씩 이을 때마다

싶었다, 로 끝나던 과거형은 늘어 갔다

탈각하는 살갗과 함께

툭툭-

떨어져 나가던 기억은

어느 순간 까마득해졌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 남았다

보호수에 새겨진 이야기를 찾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분명 누군가는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 하나쯤 아는 이가 있을 듯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는 자료가 없다.

남곡동 팽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280여 년을 지켜온 나무의 생이 ‘공백’일 리 없는데 말이다. 더구나 오랜 세월 묵묵히 생을 지켜온 이에게 시간은 곧 인생일 텐데....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삶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보령시 남곡동 1166-1 팽나무 281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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