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다, 잊어버렸다
하릴없이 꾸역꾸역 먹은 나이도
때때로 거추장스러웠던 얼굴도
까맣게, 잊었다
부뚜막에 걸터앉아
물에 퉁퉁 불은 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심장에 욱여넣었던 이름까지도
새까맣게, 잊었다

파릇하던 청춘의 한낮,
그 뜨겁던 순간이
이토록 아득해질 줄 알았더라면
흙먼지 대신 분가루 흩날리며
한번은 피어 볼 것을
뿌연 연기 폴폴 날리며 홀연히 사라지던
파란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어디로든 떠나보고 싶었다

목포의 눈물이 흐르는 다방에 앉아
계란 노른자 동동 뜬 커피를 마시며
한 계절쯤 청춘을 만끽하고 싶었다
느리게 걷고
늘어지게 자고
멍하니 세상을 응시하며
함부로 나태해지고 싶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식솔이
나이테를 하나씩 이을 때마다
싶었다, 로 끝나던 과거형은 늘어 갔다
탈각하는 살갗과 함께
툭툭-
떨어져 나가던 기억은
어느 순간 까마득해졌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 남았다

보호수에 새겨진 이야기를 찾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분명 누군가는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 하나쯤 아는 이가 있을 듯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는 자료가 없다.
남곡동 팽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280여 년을 지켜온 나무의 생이 ‘공백’일 리 없는데 말이다. 더구나 오랜 세월 묵묵히 생을 지켜온 이에게 시간은 곧 인생일 텐데....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삶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보령시 남곡동 1166-1 팽나무 281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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