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LG의 한국 시리즈 우승은 팬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 주는 그 함의가 충분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플랫폼 세기에 필요한 시대 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민주주의 정신과 부합하는 면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대비해야 할 점도 있어 보였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강한 특징을 보여왔다. 언더독은 밑에 깔린 개라는 뜻으로, 지고 있는 개를 의미한다. 지고 있는 개가 열세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기를 바라는 응원과 지지의 마음이 결집하는 현상을 언더독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밑에 깔린 개, 즉 지는 개를 무조건 응원하는 경향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되었다. 그 개는 성실하고 선한 개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구나 역량이나 실력이 있는데 제대로 이를 발휘하지 못할 때 더욱더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된다.
이를 LG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었다. 30여 년 가까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LG를 응원하는 이들이 비단 ‘찐팬’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LG를 응원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수 있는 시기에 꾸준히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각본 없는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완성 그 이상이다. 이런 면에서 세대를 초월해 팬덤을 확보하는 것은 세대 가교이자 통합의 해법을 볼 수 있다.
더구나 그 응원과 지지를 한두 번 보내는 것이었다면 덜 감동적이고 의미가 배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야구는 그 어떤 경기보다 경기에 관한 변수가 많다. 시간조차도 가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가치 부여 효과 이른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가 굉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지켜보는 일반 사람들조차도 애정을 갖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이러한 효과는 팬덤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 팝보다 더 클 수 있다. 매우 강력해 아이돌 팬덤도 요즘에는 한 그룹만 응원하지 않는다. 복수로 팬덤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그룹에 따라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구나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케이 팝 그룹도 7년을 넘기 힘들고 간혹 10년 정도면 장수 돌로 자리매김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구성원들이 교체 투입되지도 않고 멤버 소멸에 따라 사라진다. 그룹의 정체성과 세계관도 함께 소멸된다. 방탄소년단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기에 지켜봐야 할 대목이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야구팀은 정체성과 세계관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바뀔 뿐이다. 팬들도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LG 찐팬들이 한결같이 그 응원과 지지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결과와 상관없는 팬심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이는 그 구단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공유해서 하나의 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세계적인 톱 차트 빌보드의 핫 100이나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했다고 팬덤이 늘어날 수 있었지만, LG 찐팬들은 우승과 관계없이 30여 년 가까이 일관된 스탠스를 유지했다.
이렇게 케이 팝과 비교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하이퍼 텍스트나 애플리케이션을 따라서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가 찬양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LG 찐팬덤은 이해를 못할 기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이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일관되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팬들이 있었기에 한국 시리즈 응원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은 케이 팝은 물론 기업 그리고 국가의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트렌드나 이슈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흐름보다는 정체성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이에 화답하는 기업은 물론 정치가의 태도도 어느 때보다 필요한 스마트 모바일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현란함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와 실천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결국 생성형 인공지능이나 로봇도 좌우하여 긍정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요컨대, 무엇보다 모두 같이 협업을 통해 상생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 정치가와 유권자, 정부와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우승으로 LG 팬덤은 주의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버독(Overdog) 또는 탑독(Top dog)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강자나 다수의 흐름에 타려는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때일수록 찐팬들의 흔들리지 않는 활동은 물론 경기들의 ‘중꺾마’ 정신이 중요할 것이다. 비록 팬이 아닐지라도 오버독(Overdog)의 위치이지만 언더독의 미덕과 장점을 최대한 유지강화라는 흐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무리 성공한 기업이나 선거에서 이긴 정치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