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보호수를 찾아다니다 보면 다른 나무와 떨어져 ‘덩그러니’ 살아가는 나무를 참 많이 만난다.
짧게는 100여 년, 길게는 500년 이상을 살아온 나무이기에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어내며 자연스럽게 홀로 남겨졌을 테지만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올 때가 있다.
혹자는 삶이 원래 외로운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을이 끝나는 길가에서 자라고 있는 316년 수령의 염창리 팽나무는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있지만,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나무다.
좁다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느티나무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 자라는 팽나무와 팽나무를 향해 가지를 더 길게 뻗어낸 느티나무는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가지 끝을 맞닿은 채 살아간다.
잎이 무성한 여름이면 온전한 하나의 그늘을 커다랗게 만들어 낼만큼 둘은 정답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삶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며 오래도록 함께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관계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면서 시작된다.
팽나무가 느티나무 쪽으로 몸을 기울인 것처럼 타인을 만났을 때 누군가 한 사람은 손을 내밀어야 연(緣)이 시작된다.
만약 팽나무가 느티나무가 반대쪽으로 기울었다면 하나의 그늘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두 나무가 붙어서 자라났다면 지금처럼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양분과 햇빛을 나눠 가져야 하는 나무의 특성상 적당한 거리는 서로의 품을 더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셋째, 각자의 속도를 지켜간다.
팽나무와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자목이지만 차이가 분명하다.
생김은 물론이고 수명도 예외는 아닌데 느티나무는 천년을 사는 반면 팽나무의 수명은 그 절반인 500년이다.

마음이 크다는 이유로 상대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썼다면 되려 오래도록 서로의 곁을 지키지 못하지 않았을까?
대수롭지 않지만, 사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인연을 이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칭하는 사람인(人)이라는 한자는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 산71-5 팽나무 316년 (2023년)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 565-1 느티나무 416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