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탐라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탐라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3-탐라’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11.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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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추진회에서 나온 번역본 뒤에 붙은 영인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이미지 파일.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중국의 진시황은 허황된 말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중시하는 냉철한 사고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그 어지러운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위업을 세웠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마주한 운명 즉 죽음 앞에서는 그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냉철함으로 이룰 수 없는 기적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도인들을 불러모았죠. 사람이 영생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해주겠다!

전국에서 수많은 도인과 방사와 술사가 모여들었습니다. 진시황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만나서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하면 해보라고 하고, 그렇게 못하면 즉석에서 죽여버렸습니다. 까마귀 떼처럼 모여든 도인 술사들이 몇 명 죽어나가는 꼴을 보자 꽁지를 내리고 어마 뜨거라 흩어져버렸죠. 한동안 조용하던 황제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름은 서불(徐市). 황제에게 눈 똑바로 뜨고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삼만리를 가면 삼신산이 있는데, 거기에 불로초가 산다고 합니다. 신에게 동남동녀 3천을 주시면 배를 타고 가서 그 약풀을 구해오겠습니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안을 황제가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더욱 황당한 일이죠. 진시황으로서는 그 말이 아무리 황당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제안하는 것이니, 그렇게 못하면 죽이면 되므로 어차피 손해 볼 게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실제로 동남동녀 각각 3,000명을 뽑아서 거대한 배를 만들어주고 일꾼 5,000명까지 붙여서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장대한 송별 잔치까지 해줍니다. 그들은 진시황의 찬란한 배웅을 받으며 동쪽 바다로 떠납니다. 그리고 소식이 끊깁니다. 지금까지도 그 소식이 오지 않습니다. 오리무중이란 말이 이런 것을 가리키려고 만든 말일 겁니다.

동남동녀는 기준이 있습니다. 『황제내경』에 의하면 남자는 8×2=16살에 처음 몽정을 하고, 여자는 7×2=14살에 첫 달거리를 한다고 합니다. 몽정하지 않은 남자와 달거리 하지 않은 여자를 동남동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15살 전후의 풋내나는 아이들 3,000명을 데리고 서불은 어디로 갔을까요? 동쪽이라고 하니 우리는 삼신산(봉래, 방장, 영주)이 우리나라나 일본에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210년 무렵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봉래 방장 영주는 원래 어느 한 곳에 있는 산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여기는 그 어떤 곳에 있는 산에 대한 호칭일 것입니다. 진시황 때는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하여 중국의 영토를 표시하기 시작한 무렵이니, 장성 밖의 어떤 곳이고, 그곳에는 고조선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대적 중인 원수의 나라로 목숨 걸고 서불이 갔을 리는 없습니다. 가장 좋은 곳은, 5,000명의 뱃사람과 3,000명의 어린 남녀까지 모두 8,000명이 한 데 어울려 살 수 있을 만한,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곳입니다. 어디일까요? 저의 답을 보기 전에 여러분이 스스로 한 번 가늠해보시기 바랍니다.

봉래 방장 영주는, 후대에 우리나라 산 중에서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에 비정합니다. 이런 근거로 더듬어보면 대뜸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죠. 제주도 즉 탐라입니다. 제주 신화에는 갑자기 땅굴 속에서 아이들 셋이 나옵니다. 양을라, 고을라, 부을라죠. 그래서 이들이 각기 양 씨, 고 씨, 부 씨의 시조가 된다고 하죠.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상한 건, 이들이 성은 모두 다르고 이름이 같다는 것입니다. 을라(乙那).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따라서 이들 이름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보통명사였다는 증거입니다. 을라에 해당하는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아이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얼라’입니다. 이들이 구멍에서 나왔다는 것도 아이임을 뜻하죠.

이들이 제주에 다다라서 살 곳을 정하려고 한 짓이 뭐냐면 활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화살이 날아간 곳에 각기 흩어져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죠. 활이 사냥이 아니라 마을을 짓는 일에 사용된 것이니, 무기를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쓴 사례입니다. 활로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일 겁니다. 그래서 얼라를 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주 한라산의 이름이 영주산이고, 갑자기 아이들이 나타나서 활을 쏴서 살 땅을 정하여 살았으니, 도대체 이들이 누구일까요? 이런 고민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진나라를 떠난 동남동녀입니다. 제주도는 바다로 고립된 땅이니 외적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8,000명이라는 인구가 살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말의 뿌리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더 했습니다. 처음에 을라를 ‘얼라’ 즉 아이들이라고 보았는데, 동북아시아의 여러 겨레에 공통으로 쓰이는 ‘얼, 어라’가 귀인을 뜻하는 말이어서, 오히려 귀인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을지문덕의 ‘을지’, 을파소나 을소의 ‘을’, 연개소문의 ‘얼(淵)’이 모두 높은 지위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에 따르면 세 ‘얼라’는 아이라기보다는 귀인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이름이 같은 것이죠. 이름이 같다기보다는 관직이나 직위를 나타내는 말이기에 세 사람의 이름이 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에서 상상은 하면 안 될 일이나, 상상이 없으면 또 안 되는 것이 역사 특히 고대사여서, 이참에 저도 한 학설을 추가합니다. 하하하. 역사에 대하여 개나 소나 다 한마디씩 하는데, 저도 소쯤은 되니 음메 하고 한번 씨부려 봅니다. 저는 문학도이니, 아니면 말고요. 지금까지 역사가 문학을 무시해온 대로 계속 무시하시면 됩니다.

제주도 얘기를 하려다가 문학도 특유의 산만한 상상력으로 이야기가 자꾸 딴 곳에서 멍석을 까는 바람이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죠. ‘한라산’은 『고려사』에 두무악(頭無岳) 또는 원산(圓山)으로 나옵니다. ‘두무’가 둥글다는 뜻이죠. 우리말에 ‘둠’이 둥근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둥글다’의 ‘둥’도 ‘둠’과 같은 뿌리입니다. 그래서 ‘두무’를 ‘원’으로 적은 것입니다. 같은 말을 우리말과 한자로 적은 것이죠.

한 가지 착각을 바로 잡고 갑니다. ‘두무악’에 붙은 ‘악’을 한자 악(岳)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우리말입니다. ‘부뚜막(붓+둠+악)’이라는 말에서 또렷이 볼 수 있죠. 불이 흩어지지 않도록 동그랗게 모아놓는 곳을 말합니다. ‘두무악(頭無岳)’은 ‘부뚜막’의 ‘둠악’을 한자로 적은 것입니다. ‘오르막내리막’이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자 ‘악(岳)’이 뜻하는 산은, ‘바위로만 되어서 흙이 없는 산’을 가리킵니다. ‘관악산, 설악산’을 보면 알 수 있죠. 한라산은 흙산입니다. 악(岳)이 아닙니다. 그래서 ‘두무악’의 ‘악’을 ‘원산’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만약에 한라산이 ‘악’산이었다면 ‘원악(圓岳)’이라고 번역했을 것입니다.

제주도 지명에서 ‘악’은 ‘오름’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다만 크기에서 조금 더 큰 것에 ‘악’을 붙이는 경향성이 보입니다. ‘성판악, 구두악’처럼 쓰이는데, 다른 지명을 살펴보면 오름과 거의 같은 이름으로 쓰입니다. 아마도 한자말 ‘岳’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름 중에서 좀 더 큰 것에 붙이게 된 것 같습니다. ‘거문오름-拒文岳, 족은지그리오름-之其里岳, 물찻오름-水城岳, 어후오름-御後岳’ 같은 이름을 보면, 제주 토박이말에 한자를 마구잡이로 갖다 붙인 것이 환히 보입니다. 그래 놓고서는 한자 말에 따라 억지로 어원을 갖다 붙이는 민간어원설이 뒤따르죠.

‘구두악’은 개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아서 붙었다는 식입니다. ‘구두악’은 ‘굳(串)+우(매개모음)+악(山)’의 뜻입니다. ‘굳’은 ‘고지, 구지’로 뾰족한 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구멍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섭지코지’의 ‘코지’도 ‘고지, 고자’의 변형이죠. ‘섭지’의 ‘섭’은 ‘길섶, 풀섶’에서 보듯이 가장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섭지코지는 땅의 가장자리에서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지형을 나타내는 말이죠. ‘곶자왈’도 ‘곶(串)+ᄋᆞ(매개모음)+왈(田)’의 짜임으로, 길게 튀어나간 모양의 밭을 말하는 것입니다. ‘왈’은 ‘밭>왓>왈’의 과정을 거칩니다.

탐라(耽羅)도 ‘두무’를 나타낸 말입니다. ‘둠’과 ‘탐’은 똑같죠. ‘라(羅)’는 ‘나라’를 뜻하는 말. ‘둥근 나라, 둥근 땅’의 뜻입니다. 섬이 둥글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한라산이 『동국여지승람』에는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한 산’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한자 표기(漢拏)를 곧이곧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漢은 은하수를 뜻하는 한자이고 拏는 ‘잡을 나’ 자이니 그렇게 풀이한 것입니다.

‘둠, 탐라’를 한자로 번역하면 ‘제주’가 됩니다. ‘거제(巨濟)’를 보면 알 수 있죠. ‘둠, 담, 돌, 들, 둥’을 한자로 적은 것이 濟입니다. 거제는 커다란 섬이라는 뜻이겠죠? ‘주(州)’는 ‘라(羅)’를 번역한 것입니다. ‘제주=탐나=두무섬’. 한마디 더 하자면, 濟는 ‘건널 제’자입니다. 건너는 것을 ‘다리’라고 하는데, ‘달+이’의 짜임이죠. ‘달’은 앞서 본 ‘둠, 담, 돌’과 같은 뿌리입니다. 그래서 濟를 ‘담, 돌, 달’을 뜻하는 향찰 표기로 쓰는 것입니다. ‘도랑(돌+앙)’ 같은 거죠. ‘돌’은 동시에 물길을 뜻합니다. ‘울돌목(鳴梁), 손돌목(孫乭), 노돌(露梁)’이 다 그런 것입니다. 도랑은 건너라고 있은 것이니, 그런 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濟를 쓰는 것이고, 건너가도록 놓은 긴 구조물을 ‘다리(달+이)’라고 하는 겁니다. ‘달’은 ‘ᄃᆞᆯ’이기에 아래아가 상황에 따라서 ‘돌’로도 발음됩니다. 제주말에는 특히 아래아가 많습니다.

백제(百濟)는 시조의 이름이 온조(溫祚)이고, 몽골어로 100을 ‘온’이라고 한다고 보면, 백제와 온조는 같은 말이라고 앞서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온뎌’를 한자로 쓴 것입니다. ‘제’는 ‘뎌’가 구개음화를 일으켜서 바뀐 꼴입니다. 백제를 일본인들은 ‘구다라’라고 발음한 것을 보면 ‘뎌’의 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뎌’는 ‘다라’에서 받침 리을이 떨어져나간 형태임을 볼 수 있죠. ‘다라’는 ‘돌’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거제(巨濟), 제주(濟州)’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濟)가 ‘뎌, 다라’를 적은 것이고, 앞서 ‘도랑’이라는 말에서 물과 그 위를 오가게 하는 다리를 뜻하는 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에게는 ‘구다라’인 것이 백제인들에게는 ‘온다라’가 된 것인데, 몽골어에서 ‘öndör’는 높다(高)는 뜻입니다. 온조는 고주몽의 후손이니 그것을 뜻하는 말로 표기한 것입니다. 만약에 백제를 일본식으로 읽는다면 ‘구다라’이니, ‘구’는 ‘고(高)’의 자취일 것이고, 백제식으로 읽는다면 ‘온다라’가 될 것입니다. 결국 백제와 온조는 같은 말인 셈입니다.(『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 245쪽)

비교 언어학으로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볼 수 있습니다. 드라비다어로 ‘높아진 땅’을 ‘dimma’라고 합니다. ‘두무’가 이것을 적은 것이라면 한라산은 바다에서 높이 솟아오른 땅이라는 뜻입니다. ‘섬’이라는 말도 이 솟는다는 말이나 땅이라는 말과 관련이 깊습니다. ‘사래 긴 밭’이라는 시조도 있는데, ‘사래’는 ‘살, 샅, 삳, 삿’에 접미사 ‘애’가 붙은 말이어서, ‘섬’과 같은 뿌리를 지닌 말임을 알 수 있고, ‘솟다’라는 뜻이 보입니다. 또 몽골어로 땅을 ‘siroi’라고 해서 섬과 같은 계열임을 알 수 있고, 일본어 ‘sima’는 아예 우리말과 똑같습니다. ‘섬, 셤’은 땅이지만, 수평 개념에서 물보다 더 높다는 뜻이 들어있는 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라산은 원래 두무산(圓山)이었는데, 나중에 ‘한라’라는 이름이 추가된 것입니다. 한라의 어원은 몽골어에서 찾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제주도는 고려 후기 몽골 섭정기에 말을 기르던 곳으로 몽골의 관리가 파견되었던 곳입니다. 특히나 일본 정벌 때 중요한 전진기지 노릇을 한 곳이었죠. 몽골의 자취가 욕에도 남아서 제주 사람들이 제일 듣기 싫어 하는 욕이 “조주르몽골놈의새끼”라고, 관광버스 안내 기사가 말씀해주시더군요. 어째 제 귀에는 이런 욕이 더 오래도록 남는지 제 심뽀가 궁금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제주도 지역의 당신(堂神) 이름에서 ‘하로영산 백관또’, ‘올래모루 하로산’ 같은 말들을 보면 몽골어의 자취가 또렷합니다. ‘할라’가 그것이죠. 할라는 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한라산은 ‘멀리 구름 위로 우뚝 솟은 검푸른 산(동아일보 기사)’의 뜻입니다.

제주도 곳곳에 있는 작은 분화구 형의 산들은 ‘오름’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오르다’의 ‘올’에 명사화 접미사가 붙은 것이 그 하나입니다. 또 ‘올벼, 올해’에서 보듯이 이제 막 생긴 것을 나타내는 말 ‘올’에 명사화 접미사가 붙은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둘 다 해당할 것으로 봅니다만, 오름이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작다는 뜻이 더 적합할 것 같아서, 저는 두 번째가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활을 쏘다 보니, 활에 관한 얘기가 기억에 유난히 남습니다. 앞서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도 활쏘기로 자신이 살 땅을 정했다고 했는데, 그것도 활과 관련되어서 오래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활과 관련한 아주 특이한 이름이 있습니다. 솔대왓이 그것입니다. 솔대왓은 ‘솔대밭’의 음운변화를 거친 것입니다. 옛날에 간편하게 쓰던 과녁은 헝겊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솔포’라고 합니다. 헝겊으로 만들었으니 스스로는 설 수 없어 무언가에 기대야 합니다. 그래서 그걸 세울 수 있는 긴 나무를 세웠습니다. 가벼운 대나무로 많이 썼죠. 솔포를 기대는 나무라는 뜻으로 ‘솔대’라고 합니다. 밭에다가 이것을 세워놓고 연습하다가 농사지을 때는 순식간에 철거할 수 있어서 아주 편합니다. 이 솔대를 세우는 밭이라는 뜻입니다. ‘솔대밭’의 비읍이 순경음화를 거쳐서 ‘왓’으로 변한 것입니다. ‘솔대밭>솔대ᄫᅡᇀ>솔대왙>솔대왓’의 변화를 보이죠. 비읍이 순경음을 거쳐서 ‘ㅗ/ㅜ’로 변하는 것은 우리말에서 아주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추워’는 ‘춥다’의 어간 ‘춥’에 활용어미 ‘어’가 붙어서 ‘춥어>추ᄫᅥ>추워’의 변화를 보인 것입니다.

한라산 꼭대기에는 움푹 파인 호수가 있습니다. 옛날의 분화구죠. 이름이 백록담(白鹿潭)입니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이 백록담에 대한 어원은 나온 게 없습니다. 이상합니다. 이름은 대상의 모양과 특성에 따라서 붙습니다. 그렇다면 ‘백록’을 분화구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본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무리를 해서라도 시도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꼭 나중에 보면 탈을 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떫으면 네가 하세요.

‘부싯돌’이라는 말이 있죠. ‘부시+ㅅ+돌’의 짜임입니다. 불을 일으키는 돌을 말합니다. 돌과 돌을 부딪히면 불꽃이 일어나고 불쏘시개를 대어 불을 내는데, 거기에 쓰이는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부시’는 ‘불’이겠죠? ‘붓, 붖, 붇, 불, 붛’로 나타납니다. 시옷은 우리말끼리 만날 때 끼어드는 사이시옷이고요. 제주는 화산으로 큰불을 게우던 섬입니다. 이런 섬에 불을 뜻하는 이름이 붙지 않았다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신기한 정도를 지나서 정말 이상스럽죠. 그래서 자꾸 백록담이라도 불과 연관지어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보면 ‘불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옛말로 바꾸면 ‘부ᄉᆞ셤’이 되겠죠. ‘붓(火)+ᄋᆞ(매개모음)+셤(島)’의 짜임입니다. 이것을 본 옛 선비가 한자로 옮기려면 어떤 글자를 꺼낼까요? 저라면 딱 하나가 떠오릅니다. ‘불+ᄉᆞ셤’의 짜임으로 보고 ‘백록(白鹿)’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불’이 왜 백(白)이냐고요? ‘불’의 옛 모습은 ‘밝’이기 때문입니다. 그 밝섬 꼭대기에 빗물이 잠시 고이면 ‘백록담’이 되는 것이죠. 저절로 신선이 떠오르는 것은 덤입니다.

제주가 ‘부시섬’이라는 증거는 뜻밖에도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의 후지산(富士山)이 그것입니다. 사과 이름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하죠. ‘부사 사과’. 일본어와 우리말에서 비읍과 히읗은 서로 넘나듭니다. 그래서 같은 한자를 놓고 우리는 ‘부사’라고 읽고, 일본은 ‘후지’라고 읽는 겁니다. ‘후지’는 우리말에서 ‘부지’로 발음되고, 이것은 ‘부싯돌’의 ‘부시’와 같습니다. 후지산은 ‘부시뫼’로 불을 뿜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후지산, 들판처럼 너른 바다에 우뚝 솟은 한라산은, 어쩐지 비슷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둘 다 불을 뿜던 화산이죠. 이 바다 양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같은 겨레였다면 똑같은 이름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들은 언어도 같습니다. 그 주인공은 아이누인이죠.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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