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서 1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서 1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5-신채호’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12.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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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사에서 나온 조선상고사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이제부터는 제가 이 연재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책에 관해서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이 연재 글에서 제가 따로 출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연재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이 참에 제가 많이 살펴본 책으로 출전을 밝히고자 합니다.

① 신채호

아마도 젊은 날 우리 세대 사람 중에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읽으며, 가슴 울컥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2가지 까닭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이토록 조리 정연하고 재미있는 것이 역사란 말인가 하는 감탄과 감동. 두 번째는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가 제도권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실망감과 분노.

사실, 제가 무엇이 되었든 20살 무렵에 읽은 이 책은 제 삶의 자취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저는 국어를 전공하여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채호가 준 이 영감을 끊임없이 저의 일에 활용했습니다. 신채호는 저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열어주었고, 자료를 분석하는 냉철한 논리를 알려주었고, 사실에 집중하여 관념을 걷어내는 정신을 길러주었습니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죠. 제가 국어를 전공하고, 시를 쓰고, 문학을 가르치면서, 어원에 관심을 갖고, 역사에도 조금은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모두 문공사의 700원짜리 문고판 『조선상고사』 한 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고백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 사실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한 차례 큰 부메랑을 겪었습니다. 제도권 역사가 일제강점기의 실증사학에 매여 글과 유물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이하는 동안, 재야 사학에서는 엄청난 책들이 쏟아져나오며, 강단 사학자들이 하지 못한 다양한 상상을 펼쳤고,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의 업적에 대항하느라 서울대 학파에서 낸 연간지가 『한국사시민강좌』라는 얄팍한 책이었습니다. 단군에 관한 기록을 다룬 책에서는, 이게 재야 사학자들의 이론을 딴지 걸자는 건지, 자신의 무능력을 합리화하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궁색한 논리로 가득 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재야 사학이 신채호의 짐을 지고 민족주의를 넘어 국수주의까지 치달으면서 스스로 궤멸하여, 다행히 강단 사학이 이제사 한숨을 돌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적어도 랑케에서 출발한 실증주의의 한계를 버리지 못하는 한, 1980년대 재야 사학의 부메랑 같은 해일은 언제든지 제도권 사학을 휩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졌습니다. 이 점은 언어학을 전공하고 우리 어원을 40년째 파고든 저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겠지만, 어쨌든 경고를 하기는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먼 세월이 흐른 뒤에 이 시대에도 언어로 역사학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불장난을 한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는 자취가 남아 혹시 저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동의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보고 위안 삼을 계기를 마련해보는 것입니다. 하하하.

역사학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신화 같은 문학 류에서 역사 속의 사실을 읽어내려는 짓입니다. 하지만 문학을 전공하고 보니, 문학이야말로 역사보다 더 정확히 역사를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역사학도들이 제 말에 동의할까요? 하거나 말거나죠.

신채호가 윷놀이에서 부여 사회의 사출도를 보고 그것을 입증하려고 한 것은, 역사학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저는 지금, 이 순간도 확신합니다.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윷말의 ‘도, 개, 윷, 모’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보고서 어찌 우리의 민속놀이가 역사와 무관하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역사와 문화와 문학은 한 덩어리의 다면입니다. 각기 사람의 그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죠.

20살에 읽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40년도 더 지나 환갑 진갑 다 겪은 늙은이가 되어 책꽂이에서 다시 꺼냈습니다. 문공사판 손바닥만한 문고본 책은 누렇게 빛바래 넘길 때마다 묵은 종이책 특유의 냄새를 저의 콧구멍으로 솔솔 뿌려줍니다. 그 냄새를 맡으며 40년 전에 가슴 두근거리던 저를 떠올리자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절반쯤 읽으며 신채호가 독립투쟁하겠다고 중국에서 떠도느라 10년째 『삼국유사』를 구해보지 못했다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습니다.

태평세월이 되었는데도 역사학, 특히 고대 역사학은 단재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현실을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저 같은 문외한이 역사 어쩌고 하며 떠드는 것이 더욱 허망하고 민망해졌습니다.

단재가 맞닥뜨린 역사 자료도 언어의 문제였습니다. 의문투성이인 말들과 그 말들이 어떤 사실을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이두 문을 비롯하여 한자와는 다른 문자 체계까지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거운 학구열과 그것을 혼자 감당하느라 신채호가 맞닥뜨렸을 벽은, 어쩌면 식민지의 현실보다 더 크고 암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낯선 용어들을 우리식으로 해석하려고 든 신채호의 신선한 발상과 과감한 도전은 청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사건이고, 두고두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재 신채호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0년이 가깝습니다. 이 태평성대에 어학을 전공한 제 눈에는 분명한 한계가 보이는 용어해석이지만, 그런 접근법이 역사를 향해 열어놓은 가능성 때문에 제가 오늘 입방아를 찧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재의 업적에 비하면 제가 저지르는 일들은 그저 찌끄러기 뒷목 같은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신채호가 사마천의 『사기』에서 흉노전과 조선전을 구별하지 않고 기록했음을 비판한 시각입니다. 사실 중국에서 북적과 동이로 구분하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은 원래 남만이나 서융과는 다르게 한 덩어리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피붙이가 뒤엉켜 산 것이 동북아시아의 초원지대입니다. 거기서 북쪽과 동쪽을 나눈다는 것은 바다에다가 금을 그어놓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죠. 실제로 흉노의 3구역 통치체제(좌현왕-선우-우현왕)는 동이족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기자조선의 뒷물인 삼한이 그렇게 짜였습니다. 흉노와 삼한 사이에 있던 조선이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뿐더러, 오히려 조선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논리하에 ‘발조선-신조선-번조선’으로 나눈 단재의 통찰력은, 100년 뒤의 제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날 만큼 뛰어납니다.

물증이 산적한 중세와 근세의 역사는 상상력이 금물이지만, 있는 거라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덤이나 패총 또는 남의 책에 기록된 글자 쪼가리 몇 개뿐인 상고사에서는 상상력과 통찰력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한국 상고사를 다루는 모든 학자의 글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나의 상상력만이 정답이라고 우겨야 하는 곳이 바로 한국 상고사의 영역이죠.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의 상고사 연구자들은 제 것만이 정답이라는 똥고집을 피우고 그것을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 ‘국사 열등감 국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싫습니다. 그냥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10대에 배운 1970년대 개발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만들었고, 그때 받은 지식의 오류를 홀로 수정해야만 하는 삶을 평생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로 바꾸지도 못한 채 삶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우리 자식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역사의 옆구리를 훑어보며 떠올라 한 마디 적습니다. 저는 나중에 이렇게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정진명이 신채호를 만나 옆구리로 알을 낳았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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