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서 3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서 3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7-강길운·박시인’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12.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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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운의 한국어계통론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④ 강길운

활터에서는 남을 대접할 때 ‘접장’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지금은 일본의 츠쿠바(筑紫)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이찬우 접장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궁 관련 논문을 준비할 때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학문의 기초가 허약한데, 이상하게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엉터리가 많은 중에도 각 분야에 한 군데 정도는 정말 괜찮은 자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트를 통해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전통 활쏘기의 경우, 제가 운영하는 사이트 ‘온깍지궁사회’가 그렇고, 그래서 그곳을 통해 저를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의 활터에는 과녁 잘 맞히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과녁 맞히는 것 이외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던 중에 저는 과녁 맞히는 데는 관심 없고 해방 전후에는 어떻게 활을 쏘며 살았는가 하는 데 관심이 있어 구사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일이었죠. 하도 외로우니 몇몇이서 모여서 함께 해보자는 뜻으로 출범한 것이 온깍지궁사회였고, 2000년에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어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1980년대부터 어원에 관심 갖고 지켜봤는데,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어원사전 하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목마름을 단숨에 해결해준 분이 충남대학교에서 봉직한 강길운이었습니다. 『한국어계통론』상하라는 두툼한 책 두 권을 냈는데, 어원 연구와 공부에 차원을 달리한 책이었습니다.

당시 어원 연구는 학문의 변방이었습니다. 당연히 연구비를 지원받을 생각도 못 하고 혼자서 제 돈을 들여서 책을 냈다고 머리말에 탄식 아닌 탄식을 썼습니다. 이러더니 2010년에 『비교언어학적 어원사전』을 내고는 이듬해 돌아가셨습니다. 한참 뒤에 이 소식을 듣고, 저 혼자 눈물을 글썽이며, 생면부지였던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비교언어학은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와 연관이 있는 민족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자료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방의 초원지대를 떠돌던 민족들, 몽골 터키 퉁구스에벤키 부리야트 아이누 길략 인도 드라비다를 넘어서 아메리카 인디언까지 자료를 모아서 서로 비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오랜 연구가 되어서 그런 자료들이 남아있고, 아마도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강길운은 자신의 연구를 진행한 듯합니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무관심과 무능력을 혼자서 옴팍 뒤집어쓴 형국인 셈입니다.

강길운 교수의 책을 접한 뒤 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어어원사전』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1년 넘게 자료를 정리하여 원고를 탈고했고, 그것을 저의 책을 몇 권 내준 학민사로 보냈습니다. 학민사에서도 진지하게 원고를 검토하여 책을 내기로 했고, 편집 작업을 하던 중에, 김학민 사장이 출판을 잠시 보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몸 용어 같은 것이 해결이 안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미루었습니다. 그게 1997년의 일이었습니다.

출판 작업은 그대로 끝났습니다. 15년쯤 지난 뒤에 어원학 쪽을 돌아보니 벌써 어원사전이 몇 권 나왔더군요. 제가 손을 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 지역 신문의 칼럼 연재 제안이 들어왔고, 결국은 이렇게 어원의 뒷목 같은 허접한 글을 쓰는 중입니다.

강길운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우리말의 뿌리를 캐느라고 한 생을 보낸 분입니다. 그런 분의 노력에 견주면 이따위 허접한 연재물은 가벼운 산책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강길운의 위대한 업적이, 그 뒤로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학계의 이단아 정도로 파묻혔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어떤 학문 분야가 건전하려면, 다양한 관점이 논의되도록 허용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워낙 나라가 작아서 그런지 한 이론이 우위를 점하면 다른 이론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학문의 독과점이 우리나라처럼 심한 나라도 없을 듯합니다. 벌써 1990년에 고대사를 새롭게 볼 어원 연구가 나왔는데도, 역사학과 언어학 양쪽에서 이 위대한 성과를 묵살하여, 그 결과 고대 역사학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도는 중입니다. 만약에 이번에 제가 연재한 이 글이 역사를 바라보는 분들에게 신선하였다면, 그것은 역사학에서 크게 반성하여야 할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학이 앞으로도 자기 밥그릇을 확실히 챙기려면 저의 주장이나 글은 여전히 묵살되어야 할 것입니다.

⑤ 박시인

박시인이라는 이름은 전문가들조차도 낯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박시인은 1921년에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습니다. 1970년에 『알타이 인문 연구』라는 책을 냈습니다.

도대체 이런 학문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날에는 아주 익숙합니다. 학문간 융합과 통섭이 화두인 시대이니, 인문 과목을 모두 합쳐서 통폐합하고, 과학과도 모두 합쳐서 통폐합으로 정원을 줄이기 좋은 때죠. 성가신 교수들 모가지를 뎅겅뎅겅 날리기 좋은 시절에 이런 학문은 참 좋은 수단인데, 1970년대로 거슬러 간다면 사뭇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아시아의 지도를 펼쳐놓고 중국 북쪽을 바라보면 끝도 없이 넓은 초원지대가 열리고 그곳으로 말 탄 사람들이 내달리며 뽀얀 먼지를 일으킵니다. 그 먼지 속에서 영웅이 나타나고, 제국이 일어서고, 또 잠시 후에는 영웅이 스러지고, 제국이 사라집니다. 이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이런 과정을 더듬어 보면 일관된 한 흐름이 보입니다. 초원지대에서 일어난 영웅이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으로 성장하는 데는 그런 그들만의 풍속과 문화가 있죠. 그 문화의 일관성과 법칙성을 파악하면 우리는 지역별로 나뉜 문화권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그 문화권이 서로 교류하는 기나긴 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신라 왕릉에서 로마나 페르시아의 유리잔이 나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신라까지 왔는지를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아랍 상인이 비단길과 바닷길을 거쳐서 극동까지 온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연구자에게 남은 몫입니다.

이런 질문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답을 한 사람이 박시인입니다. 박시인은 유목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제의 형식에 주목하고, 언어와 문화가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밝혀 냅니다. 언어가 초원지대를 매개로 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상을 쫓아가고, 아랍 세계와 신라의 계림 숲에서 벌어지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의 상호 연관을 주목하고, 각국의 민족 신화에서 되풀이되는 구조를 파고듭니다. 이런 결과를 엮은 것이 위의 책 『알타이 인문 연구』입니다.

10년 뒤에는 『알타이신화』(삼중당, 1980)라는 책을 냅니다. 민족 신화의 유사성과 반복성을 찾아서 북방 민족들의 문화 행태에 나타나는 특성을 잘 정리한 책입니다. 지금까지 단순하게 옛사람들이 즐기던 설화를, 세계사의 전개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그 특성을 비교 분석하여 전파 과정과 전래 방식을 정리한 책입니다. 세계사는 농사를 기반으로 한 토착 세력과 초원지대를 배경으로 한 유목 세력의 갈등을 바탕으로 전개된다는 논리를, 위의 여러 가지 논리로 입증하려고 한 것입니다. 룩 콴텐의 『유목민족제국사』가 1990년에 번역되어 소개되고,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가 1998년에 소개된 것을 보면 박시인의 연구가 얼마나 앞선 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알타이문화사연구-한국편』(1970)를 보면 낙랑이나 현도를 난하 주변에 설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1970년대부터 꾸준히 고조선의 중국 내 존재설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한반도 내로 졸아든 고조선만을 고집하는 쪽으로 정리된 것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역사학을 하는 분들이 워낙 많은 글을 써서, 오늘날에는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으로 정리되었더군요. 이런 분류가 올바른 것인지 어떤지 역사학 바깥의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윤내현 같은 제도권 내의 학자가 있어서 일본제국주의가 뿌리고 간 식민사학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엉뚱한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박시인의 업적은 식민사학의 강고한 벽에 실금을 내고, 우리가 역사를 새롭게 보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정수일의 거대한 비교문명사 작업이 이루어져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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