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방법론이 있어야 학문이다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방법론이 있어야 학문이다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72-학문과 방법론’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2.01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진명의 고려침경 영추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정말 많이 망설이다가, 말할 기회가 따로 올 것 같지 않아서 여기서 한마디 합니다. 똥독 안에 뭐가 들었나 막대를 대고 휘휘 저으면 똥 냄새만 퍼지고 똥물만 튀깁니다. 차라리 안 건드리는 게 낫습니다.

하나 마나 한 얘기이겠지만, 인터넷에 도배된 이상한 역사 관련 글들을 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상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상식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쑤시지 않아도 될 똥통을 휘저을 수밖에 없는, 저의 신세가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학문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대학에서 전문가 과정을 거쳐서 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자료에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독점하는 집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치 마피아 집단과 같죠. 역사도 그랬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몇 안 되는 스승 밑에서 철옹성을 쌓아서 일반인들이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죠.

이런 불만이 1980년대 민족주의 사학으로 화산처럼 터져 오를 때, 학자들의 철옹성 밖에다 엄청난 담론의 마당을 마련해준 것이 바로 인터넷입니다. 예상대로 제도권 밖의 담론이 그동안 듣지 못한 신비하고 시원한 이야기로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철옹성은 옹색한 제 밥그릇 지키기로 전락했습니다.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역사학의 불길은 제도권의 강단 사학이 위기를 느낄 만큼 거셌습니다. 특히 자료가 별로 없는 고대사에서는 소설 같은 주장들이 어둠 속에서 현란하게 불춤을 추며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제도권에서 반박을 시작한 것이 『한국사시민강좌』입니다. 특히 1988년에는 ‘고조선 특집’으로 꾸며, 불타오르는 민족주의 사학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한 20~30년 동안 이런 공방이 이어지다가, 양쪽에서 더는 새로운 자료와 이론이 나오지 않자, 지금은 소강상태가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을 저는 국어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았습니다. 계간지 『역사비평』을 구독한 것도 이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민족주의 사학은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터넷을 도배한 이상한 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으면 사료가 조작됐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제가 1980~90년대 국수주의자들을 만나서 얘기할 때도 느끼는 답답한 점인데,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물으면 ‘심리주의’로 귀결합니다. 자기 마음이 답이고 제 생각이 참입니다. 참, 간편하고 속 편합니다.

세종대왕이 자신의 문자 창제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 전의 자료를 없애고 조작했다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한글은 가림토 문자에서 왔고, 그것은 1만 년도 더 된 우리의 전통 문자라고 우깁니다. 마치 세종대왕의 마음을 다 알고, 마치 그 현장에서 세종대왕이 하는 짓을 다 지켜봤다는 듯이 말합니다. 자기 맘에 안 들면 누군가 조작한 겁니다.

가림토 문자가 사실이든 아니든 세종의 훈민정음 작업은 그 안에 엄정한 논리가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허파에서 나오는 바람이 입 안의 어딘가에 부딪힐 때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형상화하여 닿소리(자음)을 만든 다음에, 그것을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하여 조합과 운용 방법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만든 제자 원리를 세종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게 『훈민정음 해례』입니다. 이런 원리 설명은 뉴턴이 공간을 계산하기 위하여 미적분학을 만든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그 이전에는 전혀 없던 일입니다. 오로지 세종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사실이고, 그 바탕에는 음양오행이라는 철학과 원리가 있습니다. 바로 이 방법론 때문에 그 이전의 유사한 형태와는 전혀 다른 업적이고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외형상의 간단한 유사성에 의존하여 그 이전의 어떤 문자에다가 갖다 붙여 해설하려 드니,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이 옆에서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죠. 사실을 몰라서 답답한 게 아니라 한심해서 답답한 겁니다. 역사상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모든 견해가 이렇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총독부가 조작했고, 조선의 사관이나 관리가 조작했고, 역사 편찬자들이 글자를 바꾸었다는 식입니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그럴 만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근거 없이 자기 생각에 안 맞으면 조작 운운하는 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글 조작은 옛날에 실제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송나라 때 교정의서국이 있었습니다. 그 전의 오랜 전란으로 의학책이 많이 불타자, 주변의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서적 같은 자료를 요구했고, 고려에서 많은 서책을 송나라에 보내줍니다. 그중에 『침경』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동양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입니다. 『황제내경』은 ‘소문’과 ‘영추’ 두 가지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영추’가 바로 고려에서 진상한 책(『고려침경』)입니다. 고려로부터 받은 이 책을 송의 교정의서국에서는 『황제내경』으로 편입시키고 책을 출판하여 전국에 뿌립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보는 『황제내경』입니다. 고려에서 왔다는 말은 당연히 빠졌죠. 심지어 편집자인 사숭(史崧)은 자기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책이라고 사기 쳤습니다.

옛 시대의 관행은 책의 편집자들이 자신의 관점으로 편집한 뒤에 그 전의 자료를 모조리 불태우는 겁니다. 이런 것은 그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에 벌어진 조작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들은 조작의 근거가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맥이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변화나 조작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고려침경 영추』)

그러나 인터넷에서 조작 운운한 사람들의 주장은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근거라고는 달랑 자기 생각 하나입니다. 역사 연구에서 자료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큰 밑그림이 있습니다. 그 밑그림을 전제로 해서 역사를 꿰어맞추려고 하다 보면 도저히 맞지 않는 구석이 나타납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이랬으면!’ 하는 마음이 발작하는 것이죠. 이것은 강단 사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병도는 자료 해석을 하다가 자신의 주장과 맞지 않으면 틀렸다며 고칩니다. 강물의 방향도 바꾸고 『삼국사기』 원전의 글자도 고칩니다. 신라 기록에서 대부(大部)를 육부(六部)의 오타라며 고치는 작태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삼국사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고대사에 자료가 없다고 해서 새로운 자료를 만들고 자기에게 불편한 사료를 조작됐다고 꾸며서 인터넷을 쓰레기 바다로 만들면, 실상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자료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심정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설입니다.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직 자기만이 자료가 조작된 사실을 찾아낼 능력이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죠. 딴 사람들은 그런 조작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무능력자입니다. 무능력한 대중 위에 자신만 우뚝 솟아서 어리석은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이죠. 이 말을 뒤집으면 저만 홀로 자료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오만에 휩싸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 자료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제가 읽는 것이 바로 역사의 진실이고, 당대의 ‘사실’이라고 여깁니다. 마치 저만이 역사의 진실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세상 사람은 모르는데 저만 홀로 안다는 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쉽게 말해 미친놈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그렇습니다. 종교인들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믿음’이기에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없는 것은 자연법의 이치인데, 기독교에서는 죽은 예수가 살아났다고 가르치고 실제로 신도들은 그렇게 믿습니다. 신도가 아닌 사람들은 그렇게 믿을 필요가 없고, 기독교도가 아닌 저는 그런 주장을 안 믿습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을 과학 교과서에서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역사 기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싶거든, 역사라는 가면을 쓰지 말고, 차라리 나는 무슨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정체를 밝히십시오. 그러면 그런 주장을 읽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적어도 믿음과 사실이 뒤범벅되지는 않겠죠. 그래도 인터넷에다가 홍수 범람하듯이 뿌려대는 것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합니다. 그런 엉터리 자료에 가려 진짜 자료를 찾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학문에는 신이 필요 없습니다. 타임머신도 필요 없습니다. 만약에 살수대첩을 발표하는 역사학회 세미나 현장에 강감찬이 나타나서 “헛소리하지 말아라. 그때 나는 이렇게 했다.”라고 한마디 하신다면 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모든 역사학자가 직업을 잃게 될 겁니다. 인공 지능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과 4:1로 승리한 뒤 바둑계를 은퇴했듯이, 역사의 신들께서는 제발 은퇴해 주십시오. 역사학에는 신이 필요 없습니다.

역사 기록 조작론 못지않은 것이 또 말장난입니다. 저는 지금 언어학에 근거를 두고 저의 주장을 펼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짓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인터넷에 많습니다. 학문의 검증 없는 말장난으로 세상을 어지럽혀 인터넷을 쓰레기통으로 만듭니다. 저는 대학에서 국어를 전공했기에 우리말의 흐름을 배워서 우리 언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대충 압니다. 제가 배운 그 내용들은 학계에서 보고된 연구 결과물을 재구성하여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친 그것입니다. 저는 학문으로 그런 내용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이런 학문의 검증 과정이 생략된 채, 우리 말이 갑자기 세계 언어의 조상언어로 자리 잡아버렸습니다. 그 근거는 간단합니다. ‘음성 유사’입니다. 우리말과 발음이 비슷하면 세계의 모든 언어는 우리 말에서 갈라져 나갔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음성 유사 하나로 우리말이 갑자기 세계의 가장 오래된 언어가 되는 것이죠. 이런 몰상식과 무지를 마치 자랑하듯이 인터넷에 도배하여 정작 필요한 자료를 찾는 저 같은 사람을 엿 먹입니다. ‘엿’은 먹는 엿이 아닙니다. ‘엿보다’의 ‘엿’이고, 드라비다에서 온 말이니, 인터넷에서 잘난 체하는 여러분이 스스로 알아보십시오. 이젠 상대하기도 귀찮습니다.

음성 유사만으로 학문이 성립하면, 이 세상에 고민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음성 유사는 언어학의 기초이지만, 그것으로 학문이 성립하지는 않으며, 그것만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언어학에 음운 변천 과정의 법칙이 있음은, 수학에 공식이 있고 그 공식을 적용하여야 답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말에는 음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음성 유사가 확인되면 뜻이 일치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복잡합니다. 민족마다 국가마다 언어마다 오랜 세월 동안 변화해 온 과정이 있기에 그 과정이 확인되지 않으면 음성 유사가 확인되어도 같은 말이라고 결론 낼 수 없습니다.

단기(單騎)를 뜻하는 만주어는 ‘kaidu’이고, 몽골어로는 ‘haidak’입니다. 여기서도 k와 h의 음운 교체 현상이 보입니다. 우리말에서는 ‘홑(單)’이 이 ‘ka, hai’의 자취입니다. ‘du’와 ‘dak’의 자취는 ‘닫다, 내닫다, 치닫다(走)’같은 말에서 볼 수 있죠. 우리말에는 이 말(單騎)을 직접 가리키는 낱말이 없지만, 이들과 같은 알타이어족이기에 그 어근이 이처럼 따로 살아서 우리말에 적절히 쓰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어떤 소리로 변하는 데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만주와 몽골의 ‘k, h’ 음운 교체가 그런 것입니다. 그 법칙에 따라서 음운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변화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음운학입니다. 그러니 음성 유사만으로 어떤 결론을 짓는 것은, 한쪽 다리만을 보고서 짝다리인지 정상인지 구분하겠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짝다리는 두 발을 비교할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인터넷에 도배된 이런 어이없는 주장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음성 유사만 있지, 의미 변천 과정에서 나타난 음운학의 검증이 없습니다. 검증 없는 답을 맹신하면 공식 없이 수학 문제의 답을 찾았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그건 우연이지 검증이 아닙니다. 왜 이런 짓을 자꾸 벌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감정’이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에 세상 사람들이 동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그러나 방법이 없는 그런 개인 생각은 학문에 독입니다. 학문에서 방법 없는 주장은 망나니짓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학문을 방해하고 학문의 발전을 후퇴시킵니다. 이런 것을 어원학에서는 ‘민간어원설, 통속어원설’이라고 합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죠. 어원 연구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통속어원설입니다. 황새가 많이 살아서 ‘황새울’이라고 한다느니, 가재가 많이 살아서 ‘가재울’라고 한다느니 하는 지명 관련 주장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한 마디로 쓰레기죠.

인생은 짧습니다. 제발 그런 어리석은 장난에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장난은 남에게 피해를 안 줄 때 장난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건 장난이 아니라 테러입니다. 제발 학문하는 마당에서 테러를 자행하여 학문이 뒷걸음질 치고 좀 좋은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헛물켜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저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학문할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원 연구는 한강의 모래톱에서 바늘을 찾는 일이기에 일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그 잘난 생각과 뜨거운 열정을 엉뚱한 곳에 탕진하지 말고 우리 겨레와 이 세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람직하게 쓰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면 지금 인터넷에 올려놓은 그 똥 무더기부터 치워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