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이야기] 골목 산책하며 오래된 사연을 만나다
[원도심 이야기] 골목 산책하며 오래된 사연을 만나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17)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5.07.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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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골목이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골목안 추억을 만들지 못한다. 요즘의 세대들은 골목에서 비석치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를 하던 풍경을 만나지 못한다.

예전의 골목에서는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널리 퍼졌고 동네 어르신들이 평상 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사연을 간직한 골목은 하나 둘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대전의 원도심에 남아있는 좁은 골목들은 추억을 반추하기에 그만이다. 어슬렁 거리거나 기웃거리며 골목 산책길을 나서면 오래된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길 것이다.  
 

쿠스미 마사유키와 타니구치 지로가 공동작업한 ‘우연한산보’라는 만화책이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한 문구회사에 다니는 중견 영업사원 우에노하라가 거리와 골목을 산책하면서 발견하는 정겨운 풍경과 회상을 담고 있다. 일본 만화책이지만, 우리의 도시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아련한 추억과 상당 부분 닮아있어 친근감을 더해준다.

주인공은 헌책방에서 찾아낸 그림책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거나 세월을 간직한 오래된 가게를 보며 상념에 잠긴다.

여러 삽화 중에서 재개발을 앞둔 마을의 골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가이드북을 만들어 골목을 널리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자”는 주민의 말에 “이런 골목길은 가이드북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걷는 게 재미있다”는 대응의 논리는 산책의 의미를 배가시키는데 충분하다.

주인공은 걷다 보면 자기 스스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산책이 관광과 다른 점을 주목한다. 목적없이 자기 마음대로 느긋하게 걸으며 오는 기쁨이 산책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8편의 짧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는 ‘우연한 산보’는 옛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을 재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플롯 역시 산책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저자는 작품을 구상하며 세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첫째, 조사하지 않는다. 둘째, 옆길로 샌다. 셋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얼핏보면 무원칙한 규칙으로 보이나, 그는 의미없이 걷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도를 본다고 해도  재미있어 보이는 방향의 샛길로샌다는 규칙은 산책의 묘미를 증대시키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장소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작은 설렘으로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연한 산보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몇해 전 한 포털사이트에 연재된 쥬드 프라이데이의 웹툰 ‘길에서 만나다’도 ‘우연한 산보’의 주제 전달과 맞닿아 있다. 서울 남산타워에서 만난 은희수와 미키의 로드무비라는 설명처럼 웹툰에서는 골목길 산책의 소소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있다.

주인공은 남산타워에서 시내를 굽어보고 서울의 다양한 골목에 대한 단상을 펼쳐 놓는다. ‘행길은 시간을 절약하지만 골목길은 시간을 멈출 수 있다’라는 그림해설에서 산책의 묘미를 찾을 수 있다.
 

▲ 1970년초 중앙로

일본과 서울 못지않게 대전의 원도심에도 골목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옛 충남도청에서 대전역까지 좌우로 펼쳐진 골목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젊음의 기운이 풋풋하게 느껴지는 으능정이 거리, 대흥동의 갤러리와 소극장 골목들, 미로처럼 얽힌 정동 인쇄골목을 걷고 있으면 카세트 테이프를 뒤로 돌리듯 시간은 과거로 돌아간다.

저마다 골목과 거리에서 만난 에피소드를 오랜 기억으로 간직한다. 50대 초반의 한 중년은 해마다 6월이 되면 1987년 옛 충남도청 앞에서 대전역 인근까지 가득 메웠던 시위인파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당시 저녁 무렵 도청 꼭대기층 사무실 창문은 모두 열려있었다고 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등 민중 가요를 부르는 인파속으로  슈퍼마켓 주인은 아이스크림을 연거푸 던져줬고 얼마 후 불 꺼진 도청 사무실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최루탄이 날아왔다.
사람들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이 중년의 남성은 원도심 거리에서 질곡의 현대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 1970년대 중앙로

충남도청이 떠난 이후 침체된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덕분에 원도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거리 곳곳에서 문화예술행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원도심 골목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이 나온 것도 반가운 일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골목에 들어서면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중첩되면서 잊고 지냈던 꿈과 낭만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연한 산보’의 쿠스미 마사유키는 산책의 비법을 천천히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적만을 생각한 채 급하게 걸을 때 보지 못한 사실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산책을 ‘우아한 헛걸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우연한 산보’의 주인공이 도시를 바라보며 “우리는 50년 뒤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라고 남긴 독백은 오래된 골목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말이다.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에서 아련한 스토리를 떠올리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골목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 이 원고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의 칼럼을 다시 재구성해 옮긴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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