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단일민족이라는 환상
[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단일민족이라는 환상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1-단일민족이라는 환상’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2.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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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우리 말의 뿌리를 연구해 보면, 2000년 전에는 적어도 만주와 한반도에 예닐곱 개의 언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 동쪽과 남쪽 바닷가에 아이누어를 쓰는 부족이 살았고, 중부 이북에는 길략어를 쓰는 민족이 주로 살았으며, 두만강을 비롯하여 한반도 북부에는 퉁구스어를 쓰는 민족이 살았습니다.(강길운, 『한국어계통론』)

여기에 고대 부족 국가의 형성기에 훈(흉노)족의 대이동이 일으킨 연쇄 반응으로, 몽골어와 터키어를 쓰는 사람들이 떼 지어 들어와서, 이들 사이에 섞이게 됩니다. 청동기와 철기로 무장한 사람들이기에 이들이 지배층을 형성하면서 나라를 만들죠. 이들의 이동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한 각종 옛 기록에 나옵니다. 주몽과 유리, 소서노와 온조 세력의 남하 같은 기록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들 몽골족과 터키족의 일파는 아이누족이 살던 경상도 남부까지 들어와서 신라 왕조를 엽니다. 반면에 남부에는 인도의 드라비다족들이 들어와서 삽니다. 이들이 가야라는 나라를 세우죠.

이후 한반도에는 이들의 서로 다른 언어가 한 언어를 향해 통합되는 방향으로 판도가 바뀝니다. 그렇게 하여 일단락되는 것이 신라의 삼국통일, 혹은 삼국통합입니다. 이렇게 통합을 이루기 전에 이 땅에 퍼져있던 언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던 시절에 국어학에서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크게 나누어 서로 다른 언어가 있었다는 가정을 합니다. 북방의 ‘원시부여어’와 남방의 ‘원시한어’라고 합니다.(이기문, 『국어사개설』) 이 언어가 신라와 고려로 계승되고 뒤이어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우리가 말하는 중세 언어인 훈민정음 체계가 들어섭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언어체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풍성한 국어사를 보여줍니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우리 말은 크게는 알타이어족에 속합니다. 알타이어족은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 그리고 우리말입니다. 물론 예벤키어를 비롯하여 지금은 소수 언어로 대륙이 주변에 흩어진 언어들도 포함됩니다. 계통이 복잡하기로 유명한 일본어도 여기에 포함되죠. 특히 우리말은 다른 말보다 더 일찍 이런 ‘조상언어’들로부터 떨어져나와서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따라서 말을 보면 우리 겨레는 5천 년의 유구한 단일민족이라는 믿음과 달리, 수많은 민족이 용광로처럼 뒤섞여서 만들어진 혼혈 겨레임을 알 수 있고, 그 증거가 우리의 말속에 또렷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외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우리끼리 뭉쳐야 한다는 의식으로 발전하였고, 그것이 소박한 민족주의를 형성한 채 오랜 세월 내려오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체할 수 없는 사상으로 자리 잡습니다. 신채호를 비롯한 초기 역사학자들이 일본의 식민사관과 맞서 싸우느라 집착한 것이 바로 이 민족주의 사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국민들을 뭉치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이런 단결 심리는 이민족에게 압박받던 시절에는 좋은 효과를 내지만, 그 압박이 사라진 순간 남에 대한 배타심으로 발전하여 오히려 평화와 세계화에 걸림돌이 됩니다. 이민자를 천시하고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성을 굳이 감추지 않는 세계 각지의 우울한 소식들이 그런 것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제 다시 외국의 언어들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다문화 가정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일어났던 다문화 융합이 다시 한번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중입니다. 이런 혼란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말을 살펴보면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북부의 초원지대와 남부의 해양으로부터 밀려드는 세력의 언어가 용광로처럼 들끓음 뒤섞이던 곳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이런 현상을 우리말에서 찾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많은 겨레가 한반도로 흘러들어 한겨레를 이루었는데, 그 증거는 우리가 쓰는 말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말은 경제성의 원칙을 지니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한 말이 있으면 그것과 똑같은 말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입니다. 예컨대, ‘팔과 손, 다리와 발’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팔이나 손이나 가리키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말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팔이라는 말을 쓰는 겨레와 손이라는 말을 쓰는 겨레가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만나 융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결합 과정에서 차별을 이루며 우리말로 흘러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동등하게 융합하지 못하고 상하로 차별을 두어 합쳐진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 말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머리
대가리

골통

우리가 보통 쓰는 말은 ‘머리’입니다. 그런데 ‘대가리’라고 하면 기분이 나쁘죠. ‘박’도 ‘골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원래 머리를 가리키는 말이 다른 피붙이 세 겨레가 살다가 뒤섞였는데, ‘머리’라는 말을 쓰는 겨레가 우두머리가 되었고 나머지가 그 밑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배층의 말이 고상하게 들린 것이고 피지배층의 말이 천한 것으로 변한 것입니다. 다음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주둥이
아가리

역시 입이라는 말을 쓰는 겨레가 주인이 되었고, 나머지 말을 쓰는 겨레가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말에서 어쩐지 천한 듯한 느낌을 주는 말들의 주인공은 바로 이런 겨레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시대로 접어들면 이런 성향은 외국어를 쓰는 일로 바뀝니다. 즉 왕실에서는 한자를 섞어 쓰게 되죠. 선진국인 중국의 언어를 쓰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쓰는 말을 달리 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어 지배자의 권위를 굳히려는 것이죠.

몽골족이 천하를 지배하던 고려 때는 고려 왕실에서도 몽골어를 지배층의 언어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직도 남은 것이 ‘마마, 마누라, 족두리, 보라매’ 같은 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몽골어에 뿌리를 둔 말입니다. 왕조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지만, 궁중 용어는 그대로 쓰여서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영어가 지배층의 권위를 담당하는 말이 되었죠. 그래서 온 백성이 영어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옛날하고 다른 점은, 나라 전체가 홍역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지배층이 어떤 말을 쓰고 어떤 짓들을 하며 살든 피지배층인 백성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일어섰다 사라지는 것이 왕조였죠. 거품 같은 그들의 세월에 영합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서 나라 전체가 영어 교육에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영어를 국가 공용어로 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니, 앞으로 우리말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습니다. 국어 문법을 보면 점차 영어 문법을 닮아갑니다. 현재진행형이니 어쩌고 하며 영어 문법의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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