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22)
[연재소설] 설화(雪花) (22)
  • 유석
  • 승인 2015.07.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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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문득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헛된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오자 온 몸이 땅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재혼의 이름 뒤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나머지 인생길에서도 또 다른 시험이 따라 붙는다는 사실도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그 무서운 음모에 다 닳아빠진 생의 딱지들이 하나 둘 씩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느껴지자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한시적인 시련의 도가니가 아니고 끝없이 펼쳐진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 구겨졌던 자화상이 하나 둘 씩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오고 있는 듯 했다.

그 순간 지난날의 추억들이 속삭이며 빛바랜 홍실의 타래에서 여전히 반짝이며 가냘프게 들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어린 다희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방황의 옷깃을 접어 내려야만 했다.
다 닳아빠진 사랑의 심지가 식어져 냉기가 돌고 있어도 딸에게 어릴 적 잘 못된 부모의 기억을 더 이상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엄마에 대한 부족한 사랑은 그렇다 치더라도 먼 훗날 최선을 대했다는 아빠의 사랑을 어린 딸이 꼭 기억 할 수 있도록 각인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탈출할 곳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뼈가 으스러져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 밖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운명이 자신에게 놓아 준 마지막 굴레에서 살아남으라는 무언의 멧시지로서 최후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훗날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차후 문제였다. 다만 악처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현실의 급선무다보니 필연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허구한 날들에 피어나던 정글의 가시 꽃도 꽃이라 했던가.

그 꽃자리에서 쉴 새 없이 씨방에 열매를 맺느라 분주한 시기가 다가올 무렵이었다.
질식의 틈바구니에서 꿈틀거리는 몸뚱아리를 이끌며 가지마다 독이 올라 염탐해대는 둥지의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가시지 않아 근심에 젖어 들고 있었다.
그때 찌든 삶에 그 어떤 힘이 되어 줄 구명정이 되어 줄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아도 결코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기어오르고 있었다.

분명한 변화였다. 그것은 지난 날 시달렸던 상처들이 진토가 되어 다시금 메마른 뿌리를 적시며 새로운 싹이 터 오르는 것과도 같은 푸른 희망이었다.
그 끝자락에 이르자 타고난 운명대로 살고자 하는 생각이 더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운명에 끌려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찾아 누리고 싶은 사랑의 자유를 위해 하루빨리 대립으로 치닫는 악마의 도가니에서 벗어나고만 싶을 뿐이었다. 

며칠이 또 훌쩍 지나갔다. 때때로 알 수 없는 오기가 발동 하자 그것이 혹시 새 봄의 온기를 따라 행복의 여신이 보내주는 희망의 전갈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온 몸에 둘러 처진 허상의 거미줄을 제치고 투명한 알껍데기의 포자를 다시 들여다보아도 여전히 자신의 몸은 처절한 벌거숭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 시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나 날마다 주어진 생을 욕질해가는 과정에서 오로지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날 시도 때도 없이 창을 들고 달려오는 검은 전갈 앞에 무릎 꿇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하는 처절한 자괴감에 포로가 되었을 때마다 가까스로  생의 페이지를 어떻게 넘어왔는지에 대한 회한에 젖어 들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지금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자신의 운명 앞에 굴복당하지 않고 오히려 운명이 그의 앞에 굴복하기를 바랐던 강한 내면의 굳센 심지가 자신을 지켜준 등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두가 시련의 도가니에서 연마된 진주 같은 삶이 낳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삶의 지배자가 조종해가며 그의 주어진 생의 완성을 위해 비틀거리는 의지를 용서해 준 관용의 꽃봉오리가 척박한 땅에서 피워 올린 인내의 결과였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아 강철 같은 그의 영혼이 빚어 낸 삶의 연금술이 분명했다.
앞으로 그 댓가를 보상받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 결과 지금 보다 더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화해하며 헤쳐 나가기로 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소중한 사랑을 모독한 나머지 제자식을 팔아먹겠다는 ‘인면수심’ 의 악처를 가둘 곳만 있다면 당장 집어 처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찰떡 같이 믿었던 사랑이 ‘부메랑’으로 날아와 난간위에 걸려 있는 자신을 흔들어 강물로 빠트리게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마저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가운데 또 하나 껄끌럽게 가시지 않는 것은 역시 사랑하고픈 미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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