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자전거 타고 제주 한바퀴] ③남원에서 성산포까지… 마지막 여정
[임영호의 자전거 타고 제주 한바퀴] ③남원에서 성산포까지… 마지막 여정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5.10.25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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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10. 11. 제주의 보석 ‘우도’ 라이딩

세 번째 날이다. 10월 11일이다. 7시 30분에 남원읍을 출발했다.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한라산 정상 9부 능선에 구름이 몰려있다. 반지 모양으로 둥그렇게 뭉쳐있는 모양이 무엇인가 한라산에 항의하는 모양새이다.

어제 펜션 주인이 비가 온다고 우리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진 것이 떠오른다. 아마 한라산이 비가 오는 것을 간밤에 막은 모양이다. 그러니 구름이 저 야단이지. 오긴 온 것 같은데 시늉뿐이었다. 그저 먼지나 나지 말라고 조리개로 물 뿌려놓은 것 같다.

날씨는 쌀쌀했으나 상쾌했다. 햇볕도 빛났다. 도로에 나오자마자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이 자전거 타고 우리 쪽으로 오자 나는 우리와 같이 라이딩 하는 사람인 줄 알고 반가운 나머지 손을 들어 인사했다. 경찰 자전거 순찰대였다. 머쓱했다.

조금 가니 해안도로 표지판이 있어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렸다. 끝에 다다르자 해안도로는 이내 막혔다. 도로 들어왔던 가파른 길로 올라가야 한다. 한마디로 감진고래(甘盡苦來)이다.

막힌 도로에서 두 젊은이를 만났다. 스위스 사람이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안면을 익혀 나중에는 사진을 같이 찍는 사이가 되었다.

대로로 다시 와서 5분쯤 가니 영화박물관이 보였다. 입구에 동상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연인 두 사람이 우산 속에 있는 장면이다. 보는 순간 여자가 더 사랑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몸 중심이 남자에게 기울어졌다.

두 번째 해안도로로 들어갔다. 제주도 해안 중 가장 동쪽의 해안도로였다. 멋있었다. 태신해안로라고 불린다. 차도 별로 없었다. 도로 옆에는 군데군데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 있고, 그것이 끝날 쯤 되면 어류 양식장이 보였다. 거리는 정겹게 동네 사람들이 꾸몄다.

갈대가 바람에 쓰러질듯 하면 바로 일어났다. 여자의 마음을 누가 갈대로 비유했나? 갈대만이 어떤 고난이 닥쳐도 본래대로 지조를 지키며 산다. 야자수도 제법 크게 자랐다. 야자수가 여기 저기 보이니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끝없는 바다가 펼쳐지고 파도가 밀려와 부서져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 것 같다. 등대도 간간히 보였다. 거의 두개씩 서 있는 것이 외롭지 않게 배려한 것 같다.

마을 어귀에는 주차장처럼 배를 정박시키는 장소가 있었다. 입구는 좁고 큰 둠벙처럼 둥그렇게 담을 싸서 바닷물을 가두었다. 아무리 큰 태풍이 와도 감히 건들지 못할 것 같다.

1시간 이상 달리니 이제 성산으로 가는 국도가 나왔다. 오른쪽에 토산관광지구라고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아직 개발이 덜 된 곳 같다. 숙박 시설 몇 개만 보이고 해안로 조차 개설되지 않았다.

해안로를 찾다가 골목길에서 좁은 올레길이 나와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올레길이 끝날 때까지 끌고 걸었다. 끝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기차모양이었다. 여기 아이들이 보지 못한 기차를 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린 것 같다.

시계를 보니 9시. 떠난 지 한 시간 반. 표선 해안도로가 나왔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으나 가끔은 지중해식 건물이 보인다. 처마 없는 주황색 지붕에 벽은 흰색이다. 커피 생각이 났다. 생긴지 4년이 됐다는 1층은 카페, 2층은 숙소였다.

창문에는 아사히 생맥주 광고가 붙어있었고 어느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5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젊은이들이 입는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속살을 보여주는 여주인에게 이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이적 또래의 30대 가수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7080 가수인 조동진이란다.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인 이 처장은 이 사람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난 왜 몰랐을까. 나는 7080시절 직장 다니랴, 공부하랴 여유가 없던 기간이었다.

두 젊은 남녀가 의자에 푹 눌러 앉아 아무 말도 없이 커피를 마시면서 감미로운 멜로디와 넘실되는 푸른 바다에 빠져 앉아있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를 마실 때쯤 그 연인들은 오토바이 뒤 좌석에 애인인 듯한 여인을 싣고 떠났다. 부러운 시선이 생겼다. 저런 일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라고 단정하며 나를 위로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수 미터 앞에 있는 조형물을 발견했다. 온통 빨간 색깔로 칠한 문짝 위에 큰 공과 작은 공이 걸쳐 있었다. 무슨 상징물 같았다. 배를 타고 나간 아비가 높은 파도에 실종을 당하고 어미와 딸이 하염없이 바다를 향해 기다리는 모습이다.

성산읍 온정리 해안가에 비교적 높은 돌담이 잘 정리된 상태로 나타났다. 석성이었다. 여기서는 환해장성(環海長城)이라고 부른다. 고려 원종 때 강화도의 삼별초군이 항전하다 진도로 와서 성을 쌓고 끝까지 항거했는데, 다시 제주도로 올 것을 대비하여 항복한 고려왕조가 원의 지시로 쌓은 것이다. 삼별초가 제주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삼별초군이 원에 저항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많이 실망했다.

그 온정리에는 지방 문화재인 혼인지(婚姻池)도 있다. 제주 시조인 고·양·부가 세 명의 공주와 말, 소, 오곡백과가 들어있는 궤짝을 이 해안가에서 발견한 장소이다. 한마디로 제주의 출발이 된 장소이다. 이들 공주들과 결혼하여 씨족을 이루고 오늘날 제주도민의 조상이 되었다.

성산포에 도착하자마자 이른 점심을 먹었다. 라이딩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운동이다. 우리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하여 제주도 특산품인 똥돼지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기다리면서 계산해보니 숙소에서 출발하여 30km 왔다.

점심 식사 후 우도로 갔다. 우도는 가족들과 15년 전에 왔던 섬이다. 선착장에 가보니 바로 떠나는 배편이 있었다. 타자마자 내렸다. 겨우 15분 정도.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다.

우도는 약 200만 년 전 화산으로 생긴 섬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조선 태종은 대부분의 섬에 사람이 살지 않게 했다. 국방상 치안상 그렇게 했다. 이후 조선 숙종 1697년에 말을 사육하는 장소로 국가가 사용하지면서 이곳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 사람이 산지 겨우 300년이다.

15년 전에 왔던 우도는 찾기 어려웠다. 그때 우도는 그냥 섬이고 어촌이었다. 지금은 관광지 우도다. 사람도 많고 돈 벌게 하는 관광시설도 많았다. 우리는 자전거로 먼저 우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갔다. 3km 떨어진 이곳에서 바라보는 성산 일출봉은 아름다웠다. 멀리 보이는 큰 배, 작은 배들은 무슨 이유인지 꼼짝 안하고 바다위에 떠 있었다.

우도는 지하수가 나온다. 한라산맥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다고 한다. 산비탈에 빗물을 저장하는 큰 저수지가 있었다. 빗물 폭포도 있다. ‘비와사폭포’이다. 이름이 참 멋있다. 비와야 빗물이 모아져 폭포가 된다.

우리는 막 다른 곳까지 가서 되돌아가 우도 왼쪽으로 갔다. 그 끝에서 자전거를 놓고 정상에 서있는 등대로 올라갔다. 등대는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우리는 우도 특산물인 땅콩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처음 산등성이 까지는 경사가 30도로 가팔랐으나 등선에 올라타니 등허리는 완만했다. 내가 본 하얀등대는 이제 퇴물이 되어 문화재가 되었다. 그 옆에 2003년에 더 큰 등대를 설치하였다.

등대의 역사는 길다. 등대는 BC 250년 고대 알렉산드리 항구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에서 인천 앞바다 월미도에 처음 설치되었다.

2시간 이상 이 곳 저 곳을 구경하고 나서 이 섬 해녀가 잡은 전복, 소라를 한 그릇 사서 먹었다. 두 이웃 아주머니가 파는데 사이좋게 한 사람은 잡고 한 사람은 팔고 있었다. 공유경제란 표현이 맞다. 보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좋으면 전염병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옮겨진다.

여기서 돈 버는 사람은 다 외지인이라고 한다. 자기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는다고 한다. 15년 전에 왔었다고 하니 그 때 땅 사 놓았으면 큰 부자 되었을 거라고 하며 안타가운 표정을 지었다.

5시 30분이 마지막 배편이었으나 4시 반에 나왔다. 나오자마자 숙소로 가 짐을 내려놓고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3일간 수염을 깎지 않아 누가 볼까 무서웠다.

저녁에는 통돼지 오겹살을 먹었다. 술이 땡겼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이 처장은 오늘 우리가 탄 거리는 55km라고 결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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