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홍경석 수필가] 나는 평소 뭣 하나 잘 하는 게 없다. 심지어는 벽에 못 하나조차 잘 박지 못 한다. 그래서 아내로부터 지청구를 자초하기 일쑤다.
“당신은 잘 하는 게 대체 뭐여~?” “…글쎄, 잘 하는 건 있지. 술 잘 마시는 거. ^^;”
이달에 출간되는 나의 첫 저서 준비 차원에서 갈무리한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책에 삽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그러다가 발견한 게 지난 1984년 2월에 받은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 임용장(任用狀)이었다. 당시 내 나이는 푸릇푸릇 새파란 스물여섯이었다.
그럼 어쩌다 그처럼 ‘어린 나이’에 소장이란 직급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걸까? 더욱이 중학교라곤 문턱도 못 밟아본 무식한 무지렁이가 감히 영어교재를 판매하는 회사의 과장급 중간 간부로까지 도약할 수 있었던 말인가!
여기엔 치열(熾烈)과 열정(熱情)이란 담보(擔保)가 들어갔다. 배운 게 없었기에 판매실적만이라도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내야 했다. 또한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직원들이 오전 9시를 빡빡하게 맞춰 출근할 적에도 나는 최소한 두 시간 일찍 출근했다.
그리곤 혼자서 흡사 미친 놈처럼 고객을 만나면 어찌 설득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그 내용을 중얼중얼 암기했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전국 최고의 영업성적과 더불어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 임용이란 두 가지의 금메달을 동시에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진은 31년 전, 그러니까 내 아들이 불과 두 살일 적에 받은 소장 임용장이다. 내용의 일부가 물에 적셔져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이를 받은 뒤 고무된 내가 술을 마시곤 술을 이 임용장에 쏟았지 싶다.
하여간 이 임용장은 후일 내 사랑하는 딸이 받은 서울대 합격증 다음으로 내가 여전히 아끼는 증표(證票)다.
내가 이 임용장을 받을 당시 아들은 두 살이었다. 따라서 아들은 이 증표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내 역시 무덤덤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직원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터여서 술을 마시다가 “2차는 우리 집으로 가서 한 잔 더?”라는 나의 말에 직원들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집으로 온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와~ 소장님 사모님이 너무 미인이세요!” 예쁘다는 데 싫어하는 여자가 이 세상에 과연 있던가? 칭찬에 입이 찢어진 아내는 있는 거 없는 것까지를 죄 챙겨 술상에 올렸다.
“호호~ ^^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못 해 방황하는 청춘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 ‘그깟’ 취업을 왜 못 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