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즈음은 웬 일인지 짜증이 많이 나고 남편이나 자식이나 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네요. 그 동안 살아온 것이 후회되기도 하구요.” 옆에 있던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내가 싫은 것은 그렇다고 해도 저녁때만 되면 덥다고 문을 열어 놓는 통에 추워 죽겠어요.” “그러면 부부관계도 원만하지 않으시겠네요?” 질문을 하자마자 “네, 집사람도 그렇겠지만 저도 요즈음은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만사가 자신이 없고 성에 대한 생각도 거의 없네요.” “생각보다 능력이 안 되는 거겠죠.” 비수 같은 부인의 한마디가 날아온다.
외래에서 흔히 만나는 전형적인 폐경 증상을 나타내는 여성환자다. 더불어 이 부부는 부인의 폐경에 따른 문제뿐만이 아니고 남성도 갱년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수명이 길지 않고 먹고 살기가 바쁘던 시절에는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갔지만 의학의 발달과 생활방식의 변화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갱년기 이후 삶의 비중이 커지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45세 전후로 서서히 나타나
피로·안면홍조·식욕저하 등 증상은 여성과 비슷
걷줄넘기 등 유산소 운동해야
나이가 들어 생식기능이 노화하는 여성은 신체 변화로 인해 난소에서 공급되던 몸 안의 에스트로겐이 감소하게 된다. 여성에게 있어 에스트로겐은 혈관세포, 뼈, 피부, 자궁, 유방조직, 질과 요로 계통, 그리고 뇌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감소함으로써 신체에 매우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것이 폐경기 증후군이다.
여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갱년기가 실제로 남성에게도 나타난다. 남성 갱년기의 특징은 여성과 달리 폐경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증상이 발병하지 않는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45세 전후부터 남성호르몬이 점차 감소하여 갱년기 증상과 노화증상이 서서히 유발된다. 남성갱년기의 증상은 첫째 신체적 증상으로 피로, 식욕저하, 불면, 피부위축, 골다공증, 근력감소 등이 있고, 둘째 건망증이 심해지고, 집중력 저하, 불안, 우울증상, 자신감 결여, 활력감소가 나타나며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식은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더불어 성적욕구와 흥미감소, 성욕저하, 발기장애 등이 나타나게 된다.
역시 남성 갱년기의 원인도 노화에 따른 남성 호르몬 감소가 원인이며, 개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과도한 음주, 흡연,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과 고혈압, 당뇨, 간질환 등 신체적 요인이 악화시킬 수 있다. 2011년 남성갱년기학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60대보다도 50대에서 호르몬이 더 감소하는 것으로 보아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커다란 요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치료의 가장 기본은 남성 및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이다. 더불어 증세에 따라 치료를 병행한다. 이러한 호르몬 대체요법은 모자라는 성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으로 남녀 모두 경구용 약, 패치 및 주사제가 있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한때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과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는 내용 때문에 폐경기 여성들이 호르몬 대체요법을 꺼린 적도 있다. 그러나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한 호르몬 대체요법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호르몬 대체요법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안전한 사용을 위해 사용 전이나 중간에 적절한 검사가 필요하다.
호르몬 대체요법 이외에도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걷기, 등산, 조깅, 테니스, 자전거 타기, 줄넘기, 에어로빅 같은 유산소 운동으로 활력을 찾도록 한다. 이와 함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부부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많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어려움을 헤아려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이나 남성의 갱년기는 늙어가는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 예방과 치료를 통해 치유하고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부부는 밝은 얼굴로 외래를 방문하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함께. “요즈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