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일기] 신데렐라 새엄마
[다문화일기] 신데렐라 새엄마
  • 홍짠두
  • 승인 2015.12.1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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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홍짠두 캄보디아] 저는 한국에 온지 4년 된 캄보디아 사람 홍 짠두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만난 제 남편은 웃을 때 눈가에 보기 좋은 주름이 잡히고 자상한 표정과 말투를 쓰는, 외국인이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4년 전 제 나이 20살 때였습니다. 제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다니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 남자를 따라 머나먼 동쪽 끝 한국이라는 나라로 시집을 가겠다니 엄마는 몇날 며칠 반대하시며 제 마음을 돌리려고 애 쓰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엄격하신 대신 저희들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해 주시는 분들이셔서 마지못해 저의 결정을 따라 주셨습니다.

저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캄보디아에서 사는 것 보다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사실 엄마가 반대하신 이유는 제가 철없는 어린 나이에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것보다 제 남편이 제 나이랑 불과 서너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사춘기 큰 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딸을 둔 나이 많은 홀아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20살 철없던 저는 ‘예쁜 딸들이랑은 친구처럼 잘 지내면 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제 남편이 도둑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런데 도둑은 남편이 아니고 저였습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가 남편을 속였습니다. 29살 노처녀라고요.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제 모습에 남편이 깜빡 속은 거지요.

결혼식을 하고 한국으로 온 저는 한국어를 잘 못해서 제가 상상했던 한국생활과는 다르게 속상한 일도 많고 결혼을 후회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남편과 딸들이 잘 해주려고 애쓰는 게 느껴졌지만 서로 대화가 안 되니까 오해도 생기고 딸들과는 친구는커녕 점점 제가 투명인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활발하고 씩씩했던 초등학교에 다니던 둘째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같이 변해버렸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사춘기였던 큰딸은 말수는 없지만 자기 할일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큰딸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오히려 대하기 어려웠다면 사춘기가 된 둘째 딸은 날마다 짜증과 불평을 쏟아내고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주변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습니다.

집안의 폭탄 같은 둘째 딸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소리치고 울고 학교 안가겠다고 떼쓰고…. 둘째 딸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제 한국어 실력은 부쩍 늘었습니다. 제가 엄마니까 야단도 쳐야하고 달래주기도 하고 신경질 부리면 들어주기도 해야 했으니까요.

한국엔 중2병이 있다지요?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둘째 딸이 학교에서 사고를 쳤습니다. 친구와 크게 다퉜는데 잘 못해서 유리창을 깨뜨렸고 깨진 유리창 조각에 친구가 다친 것입니다.  딸아이 잘못이 커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온 아이에게 처음으로 매를 들었고 크게 혼을 냈습니다. 종아리에 빨간 줄이 갈 정도로요. 처음으로 크게 혼이 난 아이는 오히려 그 후로 저를 진짜 친엄마처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벌주고 야단치는 걸 들은 이웃사람들이 저를 비난했습니다. 역시 새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요. 자기 친딸이라면 친구와 싸워서 속상한 아이를 야단치고 벌까지 주겠느냐고요.

자식이 귀하다고 뭐든지 오냐오냐한다면, 그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까요? 제 마음도 모르고 단지 새엄마라는 이유로 저를 비난하는 게 억울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지만, 이웃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가 와서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습니다. 속상해 하는 저한테 미안했는지 둘째 딸이 다른 사람들 보란 듯이 밖에 나갈 땐 제 손을 꼭 잡습니다. 엄마, 엄마 큰 소리로 부르면서요.

결혼하고 나서 딸들과 잘 지내지 못할 때는 신데렐라 동화책이 제일 싫었습니다. 신데렐라를 구박하던 새엄마가 나쁜 사람이라서 저 같은 새엄마들은 모두 나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신데렐라 동화책이 제일 좋습니다. 신데렐라 새엄마는 신데렐라를 구박하고 못살게 굴었지만 새엄마가 없었다면 신데렐라가 요정도 못 만났을 테고 왕자님도 못 만났을 테니까요. 결국 신데렐라를 행복한 왕비님이 되게 했으니까요.

저는 신데렐라 새엄마가 되어서 제 두 딸들을 신데렐라처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구박과 미움 대신 사랑으로요. 감사합니다.

※‘다문화 일기’ 시리즈는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회장 박옥진, 042-825-7233)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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