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있는 ‘차 없는 거리’를 걷다
차 있는 ‘차 없는 거리’를 걷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27)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5.12.31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150505 어린이날-중앙로 차없는 거리

[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올해 원도심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차 없는 거리’이다. 지난 9월 19일, 전격적으로 시행된 차 없는 거리는 평균 한 달에 한번 꼴로 열리고 있으며 시민들의 많은 호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행사가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는 말을 쓸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도심에 난 큰 길들은 대개 차를 위한 길이다. 더 많은 차량이 빨리 통과할 수 있도록 넓은 도로를 만들었다고 볼 때, 이 길에 차가 들지 못하게 막고 온전히 걷는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일에는 적지 않은 고민이 앞섰을 것이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교통 문제를 비롯해 많은 도시기능의 흐름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전격적인 변화는 차 없는 거리가 만들어진 구간이다. 대전 원도심의 척추격인 옛 충남도청에서 대전역에 이르는 큰길 전체를 비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참 시원한 결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차 없는 거리는 세 구간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먼저 옛 충남도청에서 중앙로 네거리에 이르는 문화·축제의 거리이다. 두 번째는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중앙로네거리에서 목척교 구간이고 세 번째는 목척교에서 대전역까지로 이 거리는 만남의 거리라고 이름 지어졌다.

포근한 겨울날을 촉촉하게 적시던 비가 개자 거리도 하늘을 담고 있었다. 차 없는 거리가 시행되는 날 만날 수 있는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수많은 공연과 프리마켓, 문화행사와 여러 흥미로운 부스들은 비록 없지만 오늘은 그저 그 거리의 여기저기를 그냥 한번 어슬렁거리기로 작정했다. 이야기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쌓인 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그냥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볼 요량이었다.
 

   
 
 
 

중구청에서 옛 충남도청을 향해 길을 건너려면 지하상가의 초입을 맛보아야 한다. 몇 개의 생필품점을 지나자 중고 옷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타로점을 보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하에서 올라오자마자 옛 충남도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출입구를 만난다. 지하도 출입구 바로 앞의 벽을 헐고 작은 출입구를 만든 것이다. 

먼저 서서 건물을 바라본다. 요즘 지어지는 현대식 건물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처음 지어진 1930년대 당시, 식민의 땅을 견디고 있던 민초들에게는 저 거대한 서양식 건물은 얼마나 위압적으로 다가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근현대사 전시관, 도지사 집무실, 시민대학 그리고 대전의 원도심을 살리려 노력하는 대전시 도시재생본부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시민들과 친근한 기관들이다. 건물의 내부는 의외로 트여있다. 높은 천정과 ‘ㄷ’자의 아기자기한 구조는 고풍스럽되 답답하지 않은 분위기로 다가온다. 
 

1층의 근현대사 전시관을 둘러보고 2층에 있는 옛 도지사실에 들러 간단하게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 도지사실에 있는 금고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강철 금고인데 무엇을 넣어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도지사가 애지중지했던 모양이다. 이 금고를 원래 도청이 있던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는 일이 상당히 큰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쌀 두 가마니를 살 수 있는 돈인 20원을 트럭 운전사에게 상여금으로 주었다니 말이다.

건물을 나서는 길, 다시 돌아본 이 80년이 넘은 건물은 더 친근해져 있었다. 시민대학을 찾는 많은 시민들이 부산하다.

다시 중앙로 지하상가로 들어간다. 먼저 사주나 타로점을 보는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난다. 열린 문 사이로 어두운 방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그저 불확실한 미래를 이야기꺼리로 수다를 떠는 이들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고 또 듣는 일 자체로 서로를 치유한다. 아무 곳이나 문을 밀치고 들어가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은 충동을 누르면서 지난다.

지금 여기, 옛 충남도청에서 목척교까지 이어진 중앙로 지하상가는 1990년에 개통되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이 땅속 거리는 화려하고 감각적이다. 삼삼오오, 젊은 여성들의 발걸음 사이로 작은 바퀴가 달린 보드들이 달린다. 사람도 상품도 모두 바쁘게 움직인다.

오래전부터 운영되었던 본래의 지하상가는 목척교의 동쪽에서 대전역 사이의 ‘역전 지하도 상가’이다. 이곳은 70~80년대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던 뜨거운 곳이었으며 대전에 도착한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오기 위해서 제일 먼저 거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대전으로 이어진 통행로이자 중심가요 번화가였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대전역 광장 시계탑에서 만나 지하상가를 지나 에펠제과와 태극당, 은모래커피숍, 중앙극장, 아카데미극장, 신도극장에서 데이트를 즐겼다는, 그래서 주말에 지하상가에 들어서면 대전 시민들 다 만날 수 있었다는.
 

지하의 길은 계룡문고로 이어진다. 요즘 찾기 어려운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었다. 책을 가슴으로 직접 느껴보는 곳이었고 돈 들이지 않고 사람을 기다리는 장소였으며 또 살 수 없는 책을 들고 서서 끝까지 읽어내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서점은 더 반갑다.

계룡문고는 ‘책 읽어주는 서점’이다. 한편에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드러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놓았으며 대표와 직원들이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준다.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 맘껏 보라는 서점의 배려이다. 책 읽는 일이야말로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표의 신념은 이 거리에서 서점의 가치를 웅변하고 있다.

길을 건너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로 들어선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소극장 ‘핫도그’이다. 2009년에 개관한 이 극장은 극단 ‘놀자’의 아지트이자 수많은 연극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다. 흥행보다는 작품성 위주의 공연활동을 추구하면서 정통 연극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영상물들과 디지털 미디어에 밀려 연극이 소수만의 문화로 밀려난 듯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배우들의 생생한 눈빛과 숨소리, 몸짓을 직접 느끼고 나면 연극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런 연극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또 이곳 원도심이기도 하다.

대흥동 여기저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극장의 대부는 1972년 개관한 대전 가톨릭문화회관이다. 2008년 공연기획사 아신아트컴퍼니가 연극전용소극장으로 재개관해 예술 작품은 물론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상상아트홀, 금강, 고도, 드림, 마당 등 8개의 소극장 무대 위에는 오늘도 누군가의 인생이 펼쳐지고 있다. 

또 대흥동에는 이어지는 골목 따라 20여 개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피어있다. 말 그대로 자신의 향기를 가진 예술의 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비움으로써’ 라는 뜻을 가진 이공갤러리는 1999년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500회의 전시를 열어온 지역 화랑이다.

원도심의 역사와 함께 한 지역문화예술의 산실이다. 한 쌍의 잉어를 뜻하는 ‘쌍리’는 커피향 가득한 카페 갤러리이다. ‘문화공간 주차’는 주차공간이 갤러리가 된 신기한 경우이다. 쓰레기만 넘치던 모텔의 반지하 주차장을 아담하고 싱그러운 전시공간으로 재창조한 사람은 바로 박석신 화백이다.

다시 중앙로로 나와 은행동 파출소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본다. 대도시의 도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래된 목조건물 하나가 거기에 가만히 앉아있다. 1961년 대전시청의 부속창고에서 문을 연 후, 55년째 복싱 꿈나무들을 기르고 있는 한밭복싱도장이다. 다가가면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라운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공소리가 3분 간격으로 울리고 있다. 낡은 마룻바닥과 청테이프로 보강한 링의 모습에서 오래된 연륜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챔피언 염동균을 비롯해 많은 프로선수와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유명 인사들, 그렇게 2만 명의 제자를 길러낸 이수남 관장이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도로가 말라가는 대신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사람들이 살 부비며 이야기를 만들 공간.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왔을 때 추억으로 맞을 거리, 아이들이 젊은이가 되어 사랑을 나눌 골목들 모두 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