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가야산 능(陵)골의 유래
[시민기자의 눈] 가야산 능(陵)골의 유래
  • 이기웅
  • 승인 2016.01.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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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웅예산 시민기자

[굿모닝충청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조선시대 덕산면 상가리는 덕산군 현내면의 지역으로서 가야골 위쪽이 되므로 위 가야골, 위 개골 또는 상가야동, 상가라 했는데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지명이다.
1753년 가야산을 여행한 예헌 이철환은 상산삼매에 1728~1740년대 후반까지 남아있던 가야산의 용연사와 남전 등 엄청난 불사에 대하여 기록한다.

수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던 마을 즉, 스님들이 사는 곳 '승가' 가동이라 부르던 것이 가얏골과 갯골과 상가로 연음화돼 불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을의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가리 일부와 사점리를 병합, 상가리라해서 예산군 덕산면에 편입되었다.

20여개 이상의 지정 및 비지정 문화유적과 180여개의 페사지가 있는 가야산 상가리는 언제부터인지 기록이 없어 정확히 모르지만 ‘능골’로 불리는 곳이 있다.
능골에 대한 유래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왕이나 왕가의 무덤이 없는 곳이다.
왜 능골인지…

마을의 동쪽 가야산 자락의 서원산 아래가 되는 곳으로 불리는 지명의 유래에 대한 아무런 구전도 전해지는 이야기는 없다.

지명에는 큰 산이나 큰 물길과 같은 자연환경과 역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가야산 곳곳을 답사하며 한 가지 역사적인 단서를 찾아보았다.

왜 능골로 볼려지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큰 무덤이 하나 있는 데 모신 분은 고려시대의 개국공신으로 공민왕을 보필한 유숙의 무덤. 이곳에서 역사적 단서를 찾아보도록 한다.
사암 유숙은 1351년 강릉대군(공민왕)을 시종해 원나라에서 4년간 보필하고 이후 고려의 1등 공신이 된다.

그러나 정치적 실세인 신돈(辛旽)의 뜻을 거스러 파직된 뒤 1365년 고향마을 가야산에서 은거하지만 다시 등용될 것을 두려워한 신돈에 의해 영광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가 보낸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후 신돈의 모함이 밝혀지고 왕은 유숙을 사후 복권시키고,  그의 원통한 죽음을 애도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전지(傳旨)를 내려 가야산의 가야동에서 예를 갖추고 장사를 치르게 한다. 1372년의 일이다.

당시 일반인들의 무덤에 비하여 왕으로부터 문희공 칭호를 받은 유숙의 무덤은 능처럼 크게 격식을 달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지명이 능골이 아닌가 한다.
사암 유숙의 무덤이 당시 민초들에게는 커다란 능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명은 자연환경이나 종교 생태와 사건 등 다양한 이유로 명명되는데 유숙 커다란 무덤은 고향마을에 능골이란 지명으로 이름이 남아 있으니 영영 잊힌 것은 아니다.
아래는 유숙이 고향 내포 가야산에 은거하며 남긴 시 ‘가야사 노스님’의 전문.
 

‘가야사 주지 노스님의 시에 차운하다’ [次伽倻寺住老詩] 
유숙(柳淑, 1324-1368)

소년 시절에 노래하고 춤추면서 화당에 취할 제는 / 少年歌舞醉華堂
한가히 운수향에 노닐 줄야 생각이나 했었으리 / 肯想淸遊雲水鄕
늙어 가매 서울 거리에 분주하기 귀찮아서 / 老去不堪趨綺陌
물러와 분수대로 평상에 앉았네 / 退來隨分坐藜床
한가한 가운데 그윽한 맛은 차 석 잔 / 閑中氣味茶三椀
꿈 속의 공명은 종이 한 장 / 夢裏功名紙一張
새 시로 내 고독을 위로함이 고마워라 / 多謝新詩慰幽獨
스님의 깊은 뜻을 어이 다 헤아리리 / 上人深意若爲量

숲 사이에 한가히 열린 녹야당 / 林下閑開綠野堂
산수 좋은 경치 벼와 물고기 마을 / 溪山勝景稻魚鄕
국화는 솔ㆍ대와 함께 세 길을 이뤘고 / 菊將松竹成三逕
거문고ㆍ도서가 모두 한 상에 놓여 있네 / 琴與圖書共一床
사귐이 지ㆍ허를 잇기 바랄 뿐 / 但願交遊繼支許
부귀로 금ㆍ장을 부러워해 무엇하리 / 何須富貴羨金張
우스워라 늦게야 돌아온 옛 사람들 / 古人可笑歸來晩
벼슬길 험한 풍파가 끝간 데를 몰라라 / 宦路風波浩莫量

물같이 흐르는 세월 빠르기도 한지고 / 流年逐水去堂堂
여생을 농사나 하려 이 마을에 부쳤네 / 農圃餘生寄此鄕
산 비가 올 때 새로운 싯구 얻고 / 山雨來時新得句
나무 그늘 짙은 데로 자주 평상 옮기네 / 樹陰深處屢移床
집이 가난하니 지닌 것은 읽을 책 몇 권 / 家貧只有書堪讀
손이 와도 깔아 놓을 돗자리도 없네 / 客至還無席可張
조만간 한가히 스님 모셔 놀면서 / 早晩飄然陪杖屨
산림의 높은 흥취 함께 논해 보려네 / 山林高趣共論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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