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또는 들꽃과 함께 노래하다
저 흰 꽃
구비 구비 걸어가는 길
글쎄, 왜 이리 환한 것인지
덜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
돌아가자고
돌아가서 편히 드러눕고 싶다고
흰 꽃, 구절초 옆에 계신
당신
- 김상우, ‘구절초’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여러 꽃 가운데 시의 소재로 특히 많이 원용되는 구절초. 이 작품에서는 꽃과 시인, 자연과 인간, 주체와 대상의 거리가 보다 지근에 있다. 꽃을 다루는 시 작품에서 흔히 구사하는 완상이나 관조 같은 차원을 넘어 보다 내밀한 소통을 이루려는 시인은 꽃 속으로 몸을 숨긴다. 김상우 시인의 성품처럼 조용하고 내향적인 자세로 꽃 안에서 세상과 인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시로 옮겨낸다. 다소 고전적이기도 하고 일견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런 자세는 가장 넓고 열린 시각을 가지고 깊게 파고들 수 있는 또 다른 미덕이 있다. 번잡스러운 현장에 발디디고서는 좀처럼 어려운 관점과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둔과 소통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이 작품에서 맛본다.
있는 듯 없는 듯
비 오면 마냥 비에 젖고
바람 불면 이슬이나 털면서
목마른 것들 끼리끼리
서로의 뿌리를 읽으며
꽃 피우나니
본 듯 만 듯
인적 드문 들녘
발길 채이는 길섶
서러운 것들 끼리끼리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며
꽃 지우나니
-김상우, ‘들꽃’ 전부
낮은 소리로 부르는 노래, 과시나 주장없이 진솔하게 피력하는 여러 생각과 느낌은 그래서 이해와 공감이 수월하다. 너나없이 목청높여 노래부르고 우격다짐으로 종용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논산에서 일하고 계룡에 사는 우리 지역 시인의 나지막한 노래에서 작은 것이 갖고 있는 가능성과 궁극의 힘을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