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풍경 속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시간의 풍경 속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30)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2.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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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한 달에 한 번은 싱싱한 토마토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란처럼 실제로 토마토의 정체성을 두고 설왕설래 하던 시절이 있었다. 논란이 되자 법원이 결정을 내렸다. 1890년대 미국 연방대법원은 토마토를 채소로 판결을 했다. 당시 미국 관세법에 따르면 과일인지 채소인지에 따라 관세가 달랐는데, 과일로 분류되던 토마토에 세금이 부과되자 과일업자가 소송을 했다는 것이다.

토마토가 과일이든 채소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릴 적에는 토마토에 설탕을 가득 뿌려 먹었다. 일명 설탕토마토의 달달한 맛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을 생각해 올리브 기름을 팬 위에 두르고 익혀 먹는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핫도그의 화룡점정은 캐첩이다. 쓰임새를 조금만 살펴봐도 우리 주위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게 바로 토마토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인이 가장 많이 먹는 채소로 토마토가 선정됐다고 한다. 토마토가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인이 즐겨먹는 토마토를 잡지 이름으로 지은 것은 선견지명이다. 토마토를 즐겨먹는 것처럼 잡지<토마토>를 많이 읽기를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어느새 100호를 넘겼다. 대전의 원도심을 지키며 한 달에 한 번 싱싱한 토마토를 만드는 이용원 편집국장은 창간의 주역이다.

“월간 토마토는 2007년 2월 예비호를 시작으로 2007년 5월 창간호를 발행했어요. 재밌고 행복한 삶이 무언지 고민하다 잡지를 만든 건데요. 행복한 삶은 함께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잡지를 창간해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죠. 공간과 사람 그리고 기록을 주요테마로 설정해 지금까지 105호를 발행했습니다. 문화예술 잡지를 표방하며 사람을 만나고, 모으고, 재미있는 일들을 도모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는 데는 문화예술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잡지를 만드는 토마토가 이제는 지역출판이라는 어려운 길에 나섰다. 그는 일상적인 감동이 넘치는 도시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가치를 담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 나온 책이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이다. 월간 토마토의 단행본 출판사업의 첫 결정체다. 이 책에는 도시민들의 공간과 그들의 이야기를 일상의 르포로 담았다. 문화의 불모와 같은 지역에서 일상적 재미와 감동을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월간 토마토>를 창간한 이용원 대표. 그의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글과 사진이 ‘도시살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젊은 기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글과 사진들은 시간의 흔적들을 새로운 의미로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토마토 껍질을 벗기고 풍경에 뛰어들다
경쟁과 소비라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익명성에 매몰되며 소비의 주체로만 취급당한다. <소비를 그만두다>를 펴낸 히라카와 가쓰미는 익명성을 원하는 소비자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익명의 소비자가 탄생하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그 점은 1990년대 중반에 인터넷이 확산되고 2000년대에 소셜 미디어가 출현했을 때 나타난 움직임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인터넷 공간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드는 움직임을 타고 등장했는데, 이때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이 없는 익명적 개인이라는 지위를 자진해서 선택했다”

익명의 존재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소비의 과정에서 세상은 사람이 사는 지평이라는 개념보다는, 시장이라는 경제적 개념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간 토마토가 시간의 풍경을 담은 것은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들이 10년 가까이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며 도시민을 만나고,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과정은 숨은 가치를 다시 불러내는 과정이었다. 도시민의 삶과 공간의 이야기를 모아낸 이 책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의 불안에 시달리는 이 사회에서 ‘숨결’과 ‘온기’를 복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있다. 책의 서문의 일부를 보면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생성하고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전파하는 일련의 행위는 본능적이다. 당대 삶의 지혜를 후대에 전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식이다. ‘이야기’를 공유하며 우리가 지녀야 할 중요한 가치에 관해 합의하고 선대의 지혜를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유대와 연대를 구체적인 ‘무엇’으로 인식할 수 있다. 도시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에는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 삶의 태도가 놓여 있다. 자본과 법,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함이다. 이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라져버린 이야기를 복원해야 한다. 이야기가 품은 숨결을 공유해야 한다.”

이 책 속의 사람들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가만히 뒷자리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이들이다. 알고 보면 그 묵묵함이 우리를 키워왔고 이 사회를 이루는 힘의 원천이다.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 속에서 서서히 스러져가겠지만, 이들을 이곳에 다시 불러내는 순간, 그들은 이 삭막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풍경의 시침과 이야기의 분침으로 시계는 돌아간다
대창이용원, 세일주조장, 성심양복점 …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김삿갓 다방, 동화극장…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도시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공간들의 의미를 물었다. 중앙시장, 대흥동 공영주차장, 보링공업사, 고물상…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한 컷들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이 모두가 삭막한 도시를 물들이는 따뜻한 숨결들이다.

6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대창이용원의 이종완 이발사, 하루 종일 차들이 오가는 공영주차장의 작은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이희탁 씨,  다친 손목이 회복되기도 전에 깁스를 깨고 칼을 갈러 나가는 칼갈이 김덕호 씨, 이들은 평범하지만 그들의 삶은 제각각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임시숙소로 옛 모습을 잃어가는 만화방, 단관극장으로 한때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성인전용극장으로 전락한 동화극장 등 사라져가지만 소중한 기억을 담은 공간들이 이 도시에서 이야기와 온기를 품고 여전히 남아 있다.

“나무 전신주는 처마를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검은 칠은 세월에 흘러내리고 씻겼지만 온몸으로 빨아들인 먹색은 화선지 위에 엷은 먹빛처럼 은은하다. 볕이 잘 닿지 않는 둥근 전신주 한쪽 면에는 녹색 이끼가 피어올랐다.” (손끝은 아직 무디어지지 않았다-대창이용원 이종완 씨)

“세일주조장의 발효실은 마당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달큰하고 구수하고 아릿한 누룩향이 훅 끼친다. 발효실 안에는 가슴께까지 오는 커다란 옹기 여남은 개가 각자 맡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옛날에는 북적북적 재밌었지-세일주조장 박환서 씨)

“성심양복점의 쇼케이스는 34년 동안 햇빛을 견딘 만큼 빛이 바랬다. 그러나 ‘성심양복점’이라는 파란색 다섯 글자는 갓 색을 입힌 듯 여전히 또렷하다.”(내가 만들어도 100프로 만족은 없어-성심양복점 장무식 씨)

“지역 태생형 극장들이 대기업의 대형화된 멀티플렉스에 밀려 하나둘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사이, 동화극장은 성격을 달리해 그 명맥만을 유지해오고 있다.”(영화관으로서의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동화극장)

▲ 월간토마토 이용원 국장

이용원 국장에게 단행본 발간의 의미를 물었다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하면서 출판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오랫동안 잡지를 발행하며 흘러가 버리고 만 이야기를 다시 모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번 단행본은 그동안 월간 토마토가 만나 온, 평범함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사람 그리고 공간을 엮은 것인데요. 앞으로 다양한 출판물과 함께 사회적 콘텐츠로 많은 사람과 소통하길 바라고 있죠”

소주만병만주소, 오시오와 같이 거꾸로 불러도 똑같은 문장이나 낱말을 말하는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 토마토 역시 빠지지 않았다.  누군가 대전의 원도심에서 열리는 토마토가 싱싱한 채소인지 과일인지 다시 한 번 논란을 제기해도 좋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싸우며 토마토를 삶고 볶고 지지는 가운데. 색다른 맛은 대전 도심에 넓게 퍼지지 않을까. 거꾸러 불러도 대답하는 토마토가 있어, 맛의 풍취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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