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시인의 금강 연가, 금강 찬가
보랏빛 새벽이
분꽃같이 너울지고
속살 마저
보석처럼 부서뜨려
알밤 터지는 소리 새로
숨쉬듯 찰싹이면
아홉 겹 명주올에
물들여진 세월
달빛 쓰개 쓰고
참빛머리 물결치듯 흐르는
내 속뜰의 비단강
- 정명희, ‘내 속뜰의 비단강’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단정하게 구성된 풍경화를 보듯 금강이라는 너른 대상을 자신만의 렌즈로 포착하여 압축하는 역량은 오래 금강(錦江)을 마주하고 소통해온 결실일 것이다. 금강은 그러므로 구체적인 강의 하나인 동시에 자연, 보금자리, 무대, 생활공간 그리고 특히 예술창작을 북돋우는 현장이라는 여러 겹의 역할에 충실하다. 금강은 무엇보다도 대화의 상대로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은 금강을 향하여 자신의 바램과 속내이야기를 토로하기도 하고 인식의 공감대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굳이 ‘금강’이라 지칭하지 않아도 그냥 ‘강’이면 그것은 곧 금강으로 인지된다. 금강이라는 고유명사는 이제 강이라는 일반명사로 자리매김하여 더 넓은 보편성을 얻게 되었다.
기산 정명희 시인이 금강을 비롯한 자연에 쏟는 관심은 남다르다. 한국화가로서의 마땅한 본분이라고도 하겠으나 그의 그림에서 때마다 새롭게 형상화되는 자연은 범상치 않다. 단순화 시키는듯 하면서도 거기에는 여러 정밀한 자연의 법칙과 조화가 따로, 또 함께 펼쳐지고 있다. 태어나 자란 자연환경의 의미로서 뿐만 아니라 그림의 대상, 성찰과 사색의 객체로서 금강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기에 금강에 침잠하고 오랜 내공을 기울여 체화한 금강이 보여주는 미세한 자연현상과 섭리, 그 순환과정에 시인은 매우 예민하다. 화가의 관찰력과 과학자의 분석력 거기에 시인의 상상력이 더해진듯 금강시편에서 시인은 거침없이 대상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그 오묘한 섭리를 해독하여 전달하려 하는 것이다.
섬이
물 위를
거미처럼
기어온다
강가에 서면
섬을 향해
물거미 가듯
내가 기어간다
물소리와 하늘 사이를 비집고 있다
-정명희, ‘강가에 서면’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