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무심한 시간 덧없는 삶, 희망만이 강렬하다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무심한 시간 덧없는 삶, 희망만이 강렬하다
  • 이규식
  • 승인 2016.02.29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미라보 다리 사진= 이규식

무심한 시간 덧없는 삶, 희망만이 강렬하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만 간다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다

손에 손을 맞잡고 우리 얼굴을 마주하자
우리들 팔 아래로
영원한 시선의 지친 물결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다

흐르는 이 물결처럼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은 얼마나 느린가
그리고 희망은 또 얼마나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다

나날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
기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다

- 기욤 아폴리네르, 이규식 옮김, ‘미라보 다리’ 전부
 

▲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파리 센 강에 놓여있는 36개 다리 가운데 미라보 다리는 위치도 그렇고 디자인이나 색채, 주변경관 등에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다리 중의 하나였다. 20세기 초반, 시인 아폴리네르는 파리 서남부 지역 오퇴이유에 살았는데 이 미라보 다리를 건너 몽파르나스로 예술인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화가 마리 로랑생과 사랑을 속삭였고 그 사랑이 참담한 파국을 맞이할 때도 미라보 다리를 왕래하였다.

다리 밑을 흐르는 센 강 물결, 무심한 시간,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흘러갔다. 주위의 모든 것이 그러고 보니 흘러가는 것 뿐임을 시인은 새삼 확인한다. 어디 이뿐이랴 구름, 바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과 삶 자체에 이르기까지 온통 흘러가는 것 뿐인 그 숙명.

자칫 사랑을 잃은 남자의 청승맞은 엘레지풍 푸념에 그칠 수 있었던 이 작품이 세계문학사를 대문자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은 3연의 “그리고 희망은 또 얼마나 강렬한가”라는 구절에 힘입은 바 크다. 평범하지만 웅숭깊은 역동성, 곤경을 딛고 일어서는 남성적인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아폴리네르는 1차 대전 참전시 부상 후유증과 인플루엔저 합병증으로 38세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른하고 우울한 심회토로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실연의 고백, 삶에 대한 좌절은 아직 남아있는 한 줄기 희망, 가슴속 염원의 끈을 잡으면서 새롭게 소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